사람 사는 동네에 '빈집' 딱지...재건축에 밀려 목숨 끊다

세입자 대책위 "비극적 사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 세워야"

"추석 즈음부터 A씨가 보이지 않더라고. 평소 빵집에 들러 1200원짜리 빵이랑 800원짜리 우유로 아침을 해결을 하더라고. 저녁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우던 분인데.... 그래서 오고 가며 자주 봤지.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기자를 만난 주민 ㄱ씨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지난 4일 화곡동 재건축 지역의 반지하 방에 혼자 살던 50대 남성 세입자 A씨가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A씨 유서에는 "힘들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9월 말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장을 받은 상태였다. 지상 3층, 지하 1층인 해당 건물에는 A씨 외에 한 가구만 남고 모두 이주한 상황이었다.

기자가 직접 찾은 화곡동 재건축 지역의 상당수 건물에는 '이주로 인한 빈 집임을 알린다'는 노란 알림장이 붙어 있었다. 주택의 경우, 두 집 걸러 한 집 꼴로 이 알림장이 붙어있었다. 화곡동 재건축 지역 50여개의 상가 중 40여 개 상가에도 노란 알림장이 붙어 있었다. 이주가 상당 부분 진행된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수없이 많은 건물에 노란 알림장이 붙은 동네에도 A씨 처럼 오갈데 없는 세입자들은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 화곡 재건축 지구. 상당수 건물에 빈 집 알림장과 X자형 테이프가 붙어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재건축 지역 세입자에 대한 이주 보상은 없다

화곡동 재건축 사업은 2017년 3월 조합설립인가를, 그해 9월 13일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2년여 만인 지난 4월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나왔다.

관리처분계획은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 사업 이후 분양되는 대지 또는 건축시설 등에 대한 권리 배분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계획이다.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나오면, 조합원은 물론 세입자도 해당 구역의 부동산에 대한 사용수익권을 잃는다. 이에 따라 재개발조합은 세입자에게 부동산 인도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법적으로 조합에서 세입자에게 나가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 화곡동 재건축 사업 주민들에게도 명도소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화곡동 재건축 사업은오는 11월 준공을 예정하고 있다.

문제는 도시정비법상 특정 구역의 건물을 다시 짓는 재건축 사업의 경우 도시 기반 시설을 함께 정비하는 재개발 사업과 달리 세입자에 대한 보상책이 없다는 것이다. 재개발 사업이 공공성 사업인 반면, 재건축 사업은 민간 이익을 위한 사업이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세입자 입장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야 한다는 점은 똑같다.

2018년 12월 아현2구역 재건축 과정에서 3번의 강제집행을 당한 끝에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전전하다 한강에서 투신한 박준경 씨 사건 이후,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2월과 3월 각각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건축 구역 세입자에 대해서도 재개발 구역 세입자에 준하는 이주정착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 2월, 서울시도 법 개정까지의 공백을 메우겠다며 '단독주택재건축 세입자 대책'을 마련했다. 재건축 사업 때 건축사업 시행자가 세입자에게 재개발에 준하여 손실보상을 하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 화곡 재건축 지구. 취재 당일에도 이사를 나가는 집이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예견된 죽음, 또 다른 죽음 막기 위한 대책 세워야"

화곡동 재건축 지역 상가 세입자들은 2018년 말 세입자 대책위를 꾸렸다. 지난 2월에서 3월 사이에는 도시정비 조례에 따라 조합과 시공사, 세입자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협의체가 열렸다.

협의체에서 조합과 시공사는 세입자 보상 대책을 거부했다. 세입자 대책위 관계자 ㄷ씨는 "조합이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며 "'공항이 가깝고 암반 지역이기 때문에 지하 지반 공사가 어려워 건물을 더 높일 수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서울시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행자가 세입자 이주 대책을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대책위는 이후에도 협의체 재개 및 세입자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서울시청, 강서구청, 해당 지역구 의원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다. 8월 23일에는 서울시에 '세입자들이 하나 둘 쫓겨나고 있으며 생계난 등으로 인한 인사 사고가 우려된다'는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원만한 이주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등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재건축 준공 예정일을 한달여 앞둔 10월 4일, 재건축 지역 세입자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A씨가 살던 반지하방. ⓒ프레시안(최형락)


대책위 관계자 ㄹ씨는 "명도소장이 계속 날아오는 상황인데 소송에 휘말리면 힘들다는 생각에 주민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빈 집 알림장이 붙거나 문 앞에 출입금지가 적힌 테이프로 X자가 쳐지는 집이 늘어나는 것도 퇴거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ㄹ씨는 A씨의 죽음에 대해 "예견된 부분이었고, 그런 분들이 지금 그 분뿐만 아니라 또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분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해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재개발 조합의 한 관계자는 세입자 보상 대책을 세울 의사가 없냐는 질문에 "이 지역은 고도 제한 때문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을 부분이 없다"고 답했다. A씨의 죽음에 대해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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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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