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의 분노가 터진 '무정부청사'

[홍콩시위 연대기] ① 입법회를 점거하다

재개발과 철거,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청년세대의 경제적 어려움과 문화적 척박함 등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공통 현상이다. '송환법'으로 시작된 홍콩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그런 맥락 위에 있다. 홍콩 시위는 한국사회에, 그리고 한국 청년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나. 이를 살펴보는 '홍콩시위 연대기'를 연재를 진행한다. 지난 7월 1일 열린 홍콩시위에 직접 참여한 상현 활동가가 총 3회의 글을 보내왔다.

지난 4월, 필자는 홍콩의 친구로부터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해 들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시위대와 경찰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홍콩인들도 나서 한국인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홍콩의 민주화 요구와 이를 탄압하는 홍콩 경찰, 정부의 심각한 폭력행위 소식이 연일 들려왔다. 시위가 격화된 6월, 시위 참가자는 100만을 넘겼다. 인구 700만의 홍콩에서 100만이 거리에 나온 것이다. 캐리람 행정장관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송환법을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홍콩의 친구에게 '축하할 일이 아니냐'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전혀 아니다. 그는 철회한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라는 시니컬한 답변이 왔다. 홍콩에선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던 것일까.

때마침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가 홍콩 연대 방문을 제안했다. 7월 1일에 홍콩의 중국반환기념일을 맞아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것이니 함께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홍콩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생애 첫 홍콩 방문 - 코인로커에 짐을 넣고 바로 코즈웨이베이 행진 출발점으로

7월 1일 오후 2시 쯤 필자는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생애 홍콩 첫 방문이었다. 공항이 있는 츠례자오 섬에서 남중국해 연안을 건너 홍콩 섬으로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산지에 둘러싸인 도시와 초고층빌딩들이 들어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홍콩역에 도착하자마자 코인로커에 짐을 넣고 코즈웨이베이 지역으로 향했다.

코즈웨이베이는 완차이, 애드머럴티 등과 함께 시위가 일어나는 홍콩 내 주요 지역 중 하나다. 이날 코즈웨이베이에서는 중국반환기념일을 맞아 정부청사로 향하는 대규모 송환법 반대 행진이 예정돼 있었다. 필자는 집회 현장에서 현지인 메이 차오와 그의 친구들 그룹과 함께 행진에 참여하기로 했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 행진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코즈웨이베이에서 검은 옷을 입고 행진을 준비 중인 사람들 ⓒ상현

전날 송환법 철폐를 요구하며 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난 터라(송환법으로 일어난 세 번째 인명 피해였다), 사람들은 추모의 의미로 흰 백합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여름 열기를 가득 담은 찌는 듯한 공기가 무거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시위의 드레스코드였다. 홍콩 시위의 큰 특징은 주최하는 사람도, 단체도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텔레그램 같이 추적이 어려운 해외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다. 물론 유명한 리더들도 있다. 서구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조슈아 웡도 리더 중 한명이다. 대표 격인 리더는 '지미 샴'으로 홍콩의 48개 시민사회운동 조직들이 연합해 만든 민간인권전선의 소집권자다. 특이한 점은 1988년생, 한국 나이로 32살 밖에 안된 한국 정치에선 보기 드문 진짜 '청년'이다. 그리고 동성애자인권운동가다. 한국에서는 부문운동 활동가로 머물렀겠지만 그는 부문만이 아니라 전체 운동을 대표하고 있고, 전체 투쟁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자 악기를 두드리는 풍악단이 앞장서고 그 뒤를 어마어마한 인파의 물결이 따랐다. 코즈웨이베이에서 애드머럴티로 이어지는 행진 루트를 따라 시민단체와 정당, 언론사 등의 부스가 끊임없이 늘어서 있었다. 현수막이 걸린 육교 위에는 행진 대열을 응원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행진 루트 양 옆에는 여러 정당과 시민단체, 언론 등의 부스가 차려져 있었다. 이 부스는 2014년 우산혁명을 주도했던 아그네스 초우와 조슈아 웡 등이 속한 데모시스토당의 부스. 우산혁명의 또 다른 주역인 네이선 로가 시위대를 향해 연설 중이다. 네이선 로는 2016년, 23세의 나이로 입법회 의원에 당선된 '최연소 의원'이다. ⓒ상현

고층 빌딩 틈틈이 홍콩 특유의 '닭장 아파트'라 불리는 주거단지가 보였다. 닭장 아파트는 1.35평에 불과한 매우 좁은 쪽방이다. 한 칸 주차공간에도 미치지 못할 그 쪽방의 월세는 한 달 50만원이 넘는다. 그 닭장 아파트의 평균 시세는 우리 돈으로 4억 정도라 한다. 반면 홍콩의 최저시급은 약 5800원 정도. 인구의 5분의 1이 빈곤층이다. 좁은 면적에 높은 인구밀도, 그러나 홍콩 도심을 둘러싼 산지는 곳곳에 부유층을 위한 골프장이 만들어져 있다. 홍콩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실감케 하는 모습이었다.

행진은 지루할 정도로 매우 평화로웠지만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씩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이 있은 후였다.

▲도로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행렬 ⓒ상현

평화롭던 행진은 경찰본부, 입법회 등 정부청사가 있는 센트럴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란 헬멧, 마스크 등 안전장비를 착용한 젊은이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사진을 찍는 데 매우 민감했다. 무심코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하자 카메라를 치우라는 날선 외침이 들려왔다.


동행한 홍콩인 친구 메이 차오(가명)는 위장경찰의 채증, 불법 신원조회 등 감시와 탄압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진촬영에 매우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홍콩 경찰의 개인정보 수집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은 2017년부터 3억 개에 달하는 감시카메라, 안면인식 기술을 결합해 전국의 CCTV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감시사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시위대는 CCTV에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7월 1일 시위 후 홍콩 경찰은 지문과 유전자 정보(DNA) 등을 수집해 시위 참가자 수십 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체포했다. 차오는 홍콩의 철도회사 중 하나인 MTR철도의 지하철은 공공연히 홍콩 경찰에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줬다. MTR을 이용해 이동한 시위대의 정보를 경찰에 제공하는 식이다.

입법회 건물은 시위대에 둘러 싸여 점거 중이었다. 입법회 건물 벽은 송환법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레넌 월'이 됐다. 추모의 꽃송이들과 함께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시위대는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여장을 한 사복경찰(로 짐작되는 사람)이 시위대에 붙잡혀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입법회 건물 외벽에는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사진은 입법회 점거 다음날 찍은 것이다. ⓒ상현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입법회 앞을 가득 메웠다. ⓒ상현

홍콩 입법회 점거에 함께하다
입법회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젊은 시위대들과 현장을 한참 둘러보다가 홍콩역 코인로커에 넣어둔 짐을 숙소에 맡기러 갔다. 홍콩 시위 참여를 제안한 친구를 만나 근처 술자리에 동석했다. 그 자리에서 문화예술 창작 일을 하며 송환법 반대 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홍콩인 친구 로 청(가명)도 함께였다.

로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이주하신 분들이라고 했다. 청은 홍콩에 사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문화대혁명 등 중국 본토의 복잡한 정치 상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들의 친인척들은 중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로는 이런 '가장 평범한' 홍콩인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홍콩에 느끼는 큰 불만 중 하나는, 중국에서 이민 오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는데 이들은 홍콩의 언어나 문화적 정체성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날 그의 제안으로 함께 홍콩 역사박물관을 함께 둘러봤다. 전시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축하하는 영상 상영으로 끝나는데, 그는 그것을 무척이나 못마땅해했다.

술자리 도중에 우리는 '시위대가 입법회에 진입했다. 그리고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흥분했다.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다시 입법회로 향했다. 마침 개찰구가 열려 있어서 홍콩의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를 태그하지 않아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것을 홍콩 철도회사가 시위대에 협조한다는 의미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사는 경찰 편이라고 했다. 그 때 개찰구가 왜 개방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 입법회 앞 현장 분위기는 매우 긴박했다. 경찰이 곧 들이닥칠 거라는 얘기가 들렸다. 입법회 앞에서 외신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는 시위 지도부들은 계속 그 곳을 점거하면서 연행을 각오하고 버틸지, 아니면 경찰이 들어오기 전에 모두 빠져 버릴지 논의하고 있었다.

입법회 앞 공간을 가득 메운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들은 진압에 대비하며 노란 안전모, 고글, 마스크, 피부를 감쌀 비닐랩 등 각종 안전 용구들을 나누고 있었다. 경찰의 진압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입법회의 출입구 유리는 깨지고 건물 벽 곳곳에는 검은 스프레이로 '반송중'(反送中, 송환법에 반대한다), '캐리 람 퇴진'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입법회에 진입한 우리는 형광조끼를 입은 <SBS> 취재진을 발견하고 따라붙었다. 사진 촬영에 굉장히 민감한 상황에, 취재진과 함께라면 시위대도 안심할 것이고 또 아시아 각지에서 홍콩사태를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현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판단은 적중했고 우리는 취재진을 뒤따르며 라이브 영상으로 입법회 점거 현장을 전했다. 오성홍기에 칠해진 검은색 스프레이, 엉망진창으로 내던져진 집기들, 온 사방 벽에 휘갈겨 쓰인 스프레이 문구들 등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가 이 정부,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해 얼마나 격렬한 분노와 저항감을 느끼고 분출하고 있는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시위대가 점거한 입법회 내부. 집기가 널부러져 있고 유리창은 깨져있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벽면엔 캐리 람 장관 욕설이 써 있다. ⓒ상현

▲시위대가 점거한 입법회 내부 ⓒ상현

건물 밖에는 바리케이드를 친 전선을 중심으로 시위대가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어림잡아 1000여 명은 모인 것 같았다. 이들은 무대나 마이크 없이 이들은 바디랭귀지를 통해 소통하며 안전용구를 전달하고 있었다. 대열 어딘가에서 헬멧 공급이 필요하다면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모자를 쓰는 시늉을 한다. 앞선 사람들이 쭉 모자 쓰는 시늉을 따라하면 대열 앞에서 이를 보고 헬멧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필자와 친구들도 이런 방식으로 노란 헬멧과 고글, 마스크를 전달받아 착용할 수 있었다.

약 5분 후 진압경찰이 들이닥칠 것이란 소식이 들렸다. 곧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도로 저 편에서 헬멧을 쓰고 곤봉을 장착한 경찰들이 느릿한 속도로 시위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시위대는 퇴각하기 시작했다. 아마 지도부가 단 한 명도 이 현장에서 연행되지 않도록, 버티는 대신 퇴각하자고 결정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전철역 감시 카메라를 피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TV를 켜니 뉴스에 입법회 현장이 생방송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아까 그 경찰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장총이 눈에 들어왔다. 섬뜩했다.

다시 유유히 나부끼는 오성홍기와 홍콩깃발

다음 날, 필자는 점거했던 입법회의 현장을 다시 보고 싶어서 정부 청사 앞으로 향했다. 전날 누군가가 '정부청사'를 안내하는 도로표지판 글씨 맨 앞에 '없을 무(無)'자를 써놓은 것이 기억에 남았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정부 청사 앞 레넌 월부터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시위대와 시민이 남긴 수많은 포스트잇과, 선전물, 시위 문구 등의 흔적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했다.

밤 사이 많은 것이 치워졌다. 육교에 붙어 있었던 현수막과 길 곳곳에 붙어있던 선전물 등 많은 것들이 이미 청소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흔적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검은 스프레이로 도로와 외벽에 휘갈겨 쓴 글씨가 선연했다. 입구 유리문이 산산조각난 입법회 앞에서 여러 국적의 기자들이 취재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쭉 눈에 담으면서 홍콩 섬 연안 쪽 큰 도로 표지판-꼭 다시 보고 싶었던, 무無정부청사 표지판-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글자도 이미 지워진 후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정부 청사 옆 인민해방군 건물로 향하는 길로 발길을 돌렸다.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의 건물인데, 외벽에 '일국양제'라는 글귀가 크게 쓰여 있었다. 지금의 이 사태를 초래한 바로 그 일국양제였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일국양제, 즉 '한 나라 두 체제'라는 정치체제를 선택했다. 자유시장경제가 자리 잡은 홍콩을 두고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인 중국이 내린 타협안이었다. 그러나 '양제'를 기대한 홍콩과 달리 중국 정부의 관심은 '일국'에 있었다.

인민해방군 건물까지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정부 청사 앞 국기대에는 어제 시위대가 끌어내렸던 오성홍기와 홍콩 깃발이 다시 걸렸다. 마치 밤 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유유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의 배경

홍콩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는 범죄인 인도법, 일명 '송환법'이다. 홍콩 외의 지역에서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홍콩으로 숨어든 용의자를 중국 본토로 강제 송환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인데, 반정부체제 인사들에게 가졌던 중국 정부의 탄압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게 홍콩 시민의 생각이다. 홍콩은 과거 2015년에도 '서점상 실종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공산당 비판 서적을 판매한 서점상 5을 중국 당국이 납치해 조사한 것이다. 이후에도 홍콩의 출판인, 기업인 등의 납치·실종사건이 잇따랐다. 많은 홍콩 시민은 이를 중국 당국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홍콩의 독립성과 자치는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홍콩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친중 인사다. 홍콩 입법회 역시 친중국파가 우세하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총 70석 중 홍콩시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의석은 35석에 불과하다. 그조차도 선거권을 행사하려면 돈을 내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등록해야 한다. 나머지 35석은 직능단체 대표와 지역의회 추천자로 나뉘어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되는데 이 후보자들을 사실상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정한다.

지난 2014년, 홍콩 시민은 '양제'를 보장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시스템인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와 '직능비례 의석 폐지'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일으켰다. 서구 언론이 '우산혁명'이라고 이름붙인 그 저항운동이다. 당시에 수많은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우산혁명을 이끌었다. 죠수아 웡, 아그네스 초우(중국체제의 우월함을 주입시키는 국민교육에 반대해 '학민사조'라는 청소년 운동 그룹에 참여하다 우산혁명에 나섰다. 이후 2016년 데모시스토 당을 창당했다)를 비롯, 우산혁명에서 형성된 운동 주체들은 올해 홍콩 시위에도 중요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산혁명의 주축이 된 학생그룹이 성장해 소셜미디어와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2019년 반송시위의 주축이 되었다. 미완으로 끝났던 우산혁명의 불씨가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필자 소개

서울의 동쪽 지역에서 청년 커뮤니티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대만의 지역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국제교류 행사를 열었다가 홍콩 동북부 재개발을 반대해 구속된 운동가들을 만났다. 이들과의 교류를 시작으로 재개발과 철거,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경제적 어려움과 문화적 척박함 등이 국경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공통 현상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2016년부터 국제 청년 네트워크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 사는 청년 활동가들과 각자 지역의 문제를 공유하고 연대해왔다. 도쿄의 젠트리피케이션·상업지구 재개발 반대 데모에 참여해 연대발언을 했고, 주일한국대사관에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하고 해외로 이전한 콜텍의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공장에 방문해 항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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