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내몰린 '은범이들'의 눈물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 3-②

이른바 '배달 산업'은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며 연간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노동자들의 희생이 감춰져 있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은 지난 수개월간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겪는 사건사고와 안전실태를 취재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배달 중 숨진 18살 김은범 군의 죽음을 통해, 청년 라이더들이 처한 비참한 노동현실과 비정상적인 법체계를 고발한다.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은 4차례에 거쳐 연재된다. 매편의 ①번 기사는 주요 취재내용을, ②번 기사는 취재기를 담고 있다.('배달 죽음' 다큐 바로가기 클릭) 편집자


3-① 죽음의 청년산업... 18~24세 산재 사망 1위 ‘배달’
3-② 벼랑에 내몰린 '은범이들'의 눈물

'배달 죽음'은 넉 달 가까이 준비한 기획이다. 지난해 스물넷 김용균 씨의 사고 이후 청년 산재에 관심을 두던 중 2018년 산업재해 발생현황 보고서가 발표됐다. 18세에서 24세 연령층의 산업재해 사망률을 뜯어봤더니 그해 모두 30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숨졌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다가, 어떻게 죽은 걸까. 이 의문이 취재로 이어졌다.

ⓒ공동취재진

서른 명은 어떻게 죽은 걸까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전체 노동자의 사망자수, 그리고 이들이 어떤 업종(건설업, 제조업 등)에서 일했는지, 어떤 이유(끼임, 떨어짐, 낙하 등)로 사망했는지 등이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즉 연령대별 사망원인과 사망업종 등은 없었다. 좀더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했다.

노동부에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했다. 최근 3년(2016년~2018년)간 18세~24세 노동자의 산재 사망 관련해서 사고개요, 즉 이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받은 자료는 취재진이 알고 있던 일반적 산업재해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산업재해는 업종별로는 건설업-제조업 순으로 사망자가 많다. 이 두 업종만 합쳐도 전체 산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18년의 경우, 이 두 업종에서만 702명(72%)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그런데 18세~24세 산재사망 표는 사뭇 달랐다. 2018년 한해 사망한 30명 중, 건설업(3명)과 제조업(8명)을 합친 숫자보다 '기타의 사업' 분야에서 더 많은 노동자들(15명)이 사망했다. 다른 연령층에서는 볼 수 없는 수치였다.

'5인 미만 사업장' 즉 영세한 사업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2018년(30명 중 13명), 2017년(13명 중 4명), 2016년(21명 중 10명) 자료에서 다수 사망자 1위 사업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이 역시도 전체연령대에서 가장 많이 사망하는 '5인 이상 49인 미만'(2018년 기준 423명, 43.6%)과는 다른 통계다.


사망발생형태, 즉 어떻게 죽었는지를 살펴보면, 이 역시도 다른 연령층과는 이질적인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부분 노동자들은 떨어져서, 끼어서 죽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18세~24세에서는 끼임(5명)과 떨어짐(7명)보다 '사업장외 교통사고'(12명)로 죽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흐름은 2016년, 그리고 2017년 자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들 죽음의 이면에는 기존 산업재해 공식과는 다른 코드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 배달사고로 죽은 26명


다시 노동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다른 연령층에서는 도드라지지 않았던 ‘사업장외 교통사고’에 대한 사건 개요를 요구했다. 다른 연령대에서 볼 수 없는 수치가 나온 원인이 궁금했다.

그렇게 받아본 자료에서 취재진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사업장외 교통사고’로 사망한 27명의 사망자 중 1명을 제외한 나머지 26명이 모두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사망했다는 점이었다. 피자, 치킨, 족발을 배달하다 트럭, 가로수, 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하지만 정보공개자료는 육하원칙에 맞춰 단순 사건 개요만이 적혀 있었다.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단 몇 줄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단순 육하원칙으로 설명된 죽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취재진이 알고 있기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으면,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업장 조사를 진행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렇게 조사한 내용으로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자료를 요청한 이유다. 이 자료를 보면, 오토바이 배달 사고가 청년들에게 몰리는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3년 간 노동부에서 작성한 중대재해보고서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작성한 재해조사서를 살펴보고자 했다. 산재를 인정받았으면 이 조사서는 존재한다. 국회의원 한정애 의원실의 도움으로 26명의 조사서를 받았다.

이 자료를 받고 당황스러웠던 점은, 죽은 이들의 일한 시점과 사망재해 시점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을 시작한 당일에 죽은 이들이 3명이나 됐고, 이틀째에 죽은 이들도 마찬가지로 3명이나 됐다. 그렇게 일한 지 보름도 안 돼 죽은 노동자가 전체 26명 중 절반에 가까운 11명(42%)이나 됐다. 모두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청년들이었다.

산업재해는 대체로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발생한다. 낯선 장비와 작업현장에서는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신입에게 수습기간 내지는 교육기간이 필요한 이유다. 안전교육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오토바이 배달에서는 이러한 기간이 전무하다. 어느 오토바이 브레이크가 잘 안 든다든지, 어느 길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를 조심해야 한다든지, 이런 식의 조언 내지 교육도 없다. '헬멧 쓰고 천천히 운전해라' 이런 말 몇 마디 듣고는 바로 업무에 투입되는 식이다.

영세사업장에서 그런 체계적인 안전교육 내지는 수습기간을 두기란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도 한 몫 한다. 18세~24세 사망자 사업장의 대다수가 '5인 미만 사업장'이 이유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게 맞는 걸까.

ⓒ공동취재진

청년에 몰리는 오토바이 배달사고

'배달 죽음' 취재를 통해 취재진은 여러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청년층에 몰리는 오토바이 배달 사망사고. 그 안에는 영세 사업장, 그리고 제대로 된 수습 기간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일에 투입되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에는 노동부의 책임 방기도 한 몫 했다.

"노동부가 위반 사항을 조사하고 처벌하도록 하는 건, 사업주가 바짝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 배달 사망사고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안 해도 되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노동부가 산업재해의 관점에서 조사는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지 알아야 사후대처라도 하지 않겠어요.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처벌의 목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지만, 구조의 문제를 살펴보는 조사도 진행해야 합니다."(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2년 전 트럭이 버스를 들이받아 버스 승객 2명이 사망한 사건을 언급했다. 한국의 경우, 경찰이 도로교통법으로 조사해 트럭 운전수를 처벌하면 그만이다. 일본은 달랐다.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트럭 운전수의 피로 과다가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강 교수는 노동자가 낸 교통사고 관련해서 일본처럼 조사하는 사례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렇기에 단순 육하원칙에 따른 사망 원인만이 공개될 뿐이다. 원인을 알지 못하니, 대책 마련도 요원하다. 그 속에서 청년 배달 노동자들은 아스팔트를 질주하다 죽거나 다치는 식이다.

얇은 곳이 먼저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취약 계층일수록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그리고 사회는 그런 계층에 무관심하다. ‘스펙을 갖추지 못했으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구조다. 사회는 물론, 당사자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책임은 작고 개인의 책임만 가중되다보니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지도, 개설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삶의 영역 모든 곳에는 오토바이로 배달하다 사망한 은범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전히 길거리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가득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또다른 '은범이들'이 겪는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 조건은 '은범이들'의 노력 부족이 낳은 결과로 치부된다. 그리고 '은범이들'을 둘러싼 노동환경은 더욱 취약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강혜인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한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린 18살 은범이의 죽음
1-② “친구 목숨이 30만 원으로 끝났어요”
2-① 손 놓은 노동청...법 밖에 있는 '라이더'
2-② 영세 가게에서 배달하다 죽으면 노동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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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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