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볼리·렉스턴이 인도로 간 까닭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이익은 마힌드라가, 비용은 쌍용차가?

파완 쿠마르 고엔카. 1993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6년 동안 인도 마힌드라 그룹 자동차사업 전반을 지휘해온 그가 이달에 인생 첫 차를 장만했다. 수많은 자동차를 연구·개발·출시하고 몰아보기도 한 그이지만, 그동안은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 회사가 제공한 차를 타고 다녔던 모양이다.

인도인 쌍용차 회장의 인생 첫 차 티볼리


그가 자기 이름으로 소유하게 된 첫 차의 사진을 가족과 함께 트위터에 공개했다.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도 축하 메시지를 남기며 리트윗을 했다. 그 차의 이름은 마힌드라 XUV300. 이 사실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저 차가 바로 쌍용차가 개발한 ‘티볼리(Tivoli)’의 인도 판매명칭이다.

고엔카는 인도에서 마힌드라 그룹의 자동차 담당 임원만이 아니라 한국 자회사인 쌍용차 이사회 의장 즉 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그래서 쌍용차가 개발한 차량의 구매자가 된 것일까? 고엔카 회장의 티볼리를 구매하기 꼭 3주 전에 쌍용차가 ‘비상경영’을 선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인도의 모기업과 한국의 자회사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놀랄 뿐이다.

인도시장에서 쌍용차 대박을 터뜨린 마힌드라

그런데 쌍용차에서 개발한 차량을 왜 인도에서 사는 걸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모기업에서 자회사가 개발한 차량을 가져다 파는 게 문제 될 리가 없잖은가. 그런데 그저 팔기만 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름을 바꿔 XUV300으로 출시된 티볼리는 인도 내수시장에서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XUV300은 올해 2월부터 인도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마루티스즈키·포드·혼다 등이 내놓은 경쟁 모델을 제쳐버렸다. 올해 8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3만304대, 월 평균 4330대를 팔아치운 것. 그 전까지 1위를 달리던 타타의 넥슨이 기록한 누적 판매량 3만4345대, 월 평균 4293대 판매량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다시 말해 고엔카 회장의 XUV300 구매는 쌍용차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사의 베스트셀링 카를 더 많이 팔기 위한 판촉활동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인도에서 팔리는 쌍용차는 티볼리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렉스턴 4G도 인도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차량도 인도 현지에서 판매되는 이름이 다르다. 마힌드라 알투라스 G4.


마힌드라 알투라스 G4는 작년 11월 인도시장에 출시되자마자 폭스바겐 티구안과 현대차 투싼을 제치며 동급 차종 중 3위로 올라섰다. 물론 1~2위를 달리는 토요타 포츄너나 포드 인데버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판매량이지만, 마힌드라는 이 정도 판매량에도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덕에 완벽해지는 마힌드라 라인업

왜일까? 그건 마힌드라가 인도 내수시장에서 판매 중인 차량 라인업을 들여다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나름 SUV 전문업체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마힌드라가 보유한 중소형 SUV(볼레로, 스콜피오, 타르 등)는 오히려 짚차에 더 가까운 형태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전형적인 크로스오버나 유틸리티 차량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최근 세계시장 트렌드는 승용차와 SUV의 강점을 모두 살린 소형 크로스오버, 그리고 중대형 부문에서는 프리미엄급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마힌드라가 보유하지 못한 라인업이 바로 이런 차종들이었고, 그 빈자리를 쌍용차의 티볼리(마힌드라 XUV300)와 렉스턴 4G(마힌드라 Alturas G4)가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티볼리의 경우 이미 3만 대, 아마도 연말까지 5만 대 가량의 기록적인 판매량이 예상되며 마힌드라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주고 있다. 반대로 렉스턴 4G의 경우 SUV 전문업체라면 당연히 보유해야 할 프리미엄 SUV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힌드라의 다른 차량들에 비해 렉스턴 4G 가격은 무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기존 라인업에서 가장 비싼 XUV500 가격은 123만 루피인 반면, 렉스턴 4G 가격은 277만 루피 수준.) 그만큼 마힌드라의 다른 차종과 월등히 비교되는 고급 SUV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힌드라 입장에서는 판매량이 높지 않아도 렉스턴의 존재감만으로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쌍용차는 왜?


자회사 제품으로 모기업은 본국에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데, 그 훌륭한 제품을 출시하고 제공해온 쌍용차는 ‘비상경영’을 선포한 상태이다. 대체 왜 이런 불균형이 생기는 걸까? 모기업이 실질적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자회사의 알짜만 쪽쪽 빨아먹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설명해내기 어렵다.

우선 인도 시장에서 대박을 친 XUV300(티볼리)과 Alturas G4(렉스턴4G)는 쌍용차 한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아니다. 모두 인도 현지공장에서 생산되어 판매가 이뤄진다. Alturas G4의 경우 한국에서 CKD(Complete Knock-Down) 수출, 즉 최종 조립 전 부품 포장 형태로 수출되기에 쌍용차 매출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XUV300의 경우에는 CKD 수출 없이 부품도 모두 현지에서 조달하여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아마 연말이 되면 XUV300의 경우 판매량이 5만 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쌍용차 연간 판매량의 무려 1/3에 달하는 수치이다. 즉, 이 차량이 한국에서 수출되었다면 쌍용차가 비상경영을 선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모기업-자회사 관계라 하더라도 자회사가 개발한 차량을 자국으로 가져가 판매할 경우 로열티를 비롯한 비용을 지급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맞다. 아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티볼리와 렉스턴 G4에 투입된 연구개발 비용과 땀값에 걸맞는 비용, 제값을 받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쌍용차'의 흔적을 지워버리다

"한국에서 연구개발과 생산되고 있는 차량들을 우리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쌍용 브랜드를 굳이 인도에 들여올 필요는 없다고 본다."

2018년 11월에 파완 고엔카 쌍용차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밝힌 얘기이다. 한국 제품을 인도 시장에 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에도 렉스턴을 인도 시장에서 판매한 바 있는데, 그때에는 ‘마힌드라-쌍용 렉스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이뤄진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인도에서 판매되는 쌍용차의 이름들은 한국 이름과 아무런 연관을 찾을 수가 없다. 티볼리는 XUV300이라는 이름으로 마힌드라의 XUV 시리즈에 편입되었고, 렉스턴 4G는 Alturas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쌍용’이라는 이름도, 그리고 한국에서 사용된 이름들도 모조리 지워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쌍용차가 연구·개발한 차량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모기업 마힌드라는, 자회사인 쌍용차에게는 어떤 지원을 해주고 있을까? 쌍용차 인수 후 2014년에 800억의 유상증자, 그리고 최근에 500억의 유상증자 등 2차례의 자금 지원이 있었을 뿐이다. 쌍용차 제품으로 인도 내수시장 대박을 낸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인색한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익은 마힌드라에게, 비용은 쌍용차에게?

쌍용차가 연구·개발해 마힌드라가 대박을 터뜨린 차량들에 대한 개발 비용은 누가 부담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7월 인도를 방문했을 때 모두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한국에 3~4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했고 이게 언론에 대서특필 된 바 있다.

박근혜 정권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권 역시 아난드 회장의 말을 아무런 검증도 없이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주어’가 빠졌다. 3~4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는 한다. 그런데 대체 누가? 모기업인 마힌드라가? 아니다. 이 개발비용은 모조리 자회사인 쌍용차가 부담한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인도 방문 후 언론이 1조 3천억 투자를 대서특필 해대자, 쌍용차 사측이 현장에 유인물을 발행해 이 투자금은 쌍용차가 벌어서 충당해야 하는 것으로 "마힌드라가 신규자금을 직접 출자해 투자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해설까지 해야 했다.


1년 매출이 3조 5000억 안팎인 쌍용차가 앞으로 3~4년 동안 신차 출시를 위해 무려 1조 3천억의 투자비용을 집행한다? 총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 투자에 쏟아붓겠다는 얘기인데, 세상 어느 나라 완성차업체가 이토록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지출한단 말인가? 게다가 모기업도 아닌 자회사의 연구개발 관련 비용인데 말이다. 저렇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이익이 남는다면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비용을 부담해 개발한 차량이 인도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올해 8월 쌍용차 ‘비상경영’ 선언이었다. 최근 쌍용차 사측 요구로 노사협의가 벌어져 각종 복지 중단이 결정되었다. 비상경영 선포된지 3주만인 9월 2일, 쌍용차 회장 고엔카는 26년 만에 자차를 구입했다며 ‘티볼리’가 아닌 ‘마힌드라 XUV300' 사진을 트윗에 공개했다. 그 사진을 쳐다보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마힌드라는 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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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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