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일병 구하기'에 실패한 트럼프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간츠, "부패한 네타냐후와는 함께 정치 못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중 업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를 좋게 이어나간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곤 한다. 최근에도 트럼프는 "나는 적어도 3년 동안 이 나라에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은 내가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김정은 사이를 가로막던 대북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쫓은 뒤에 나온 말이라 더 실감이 난다. 트럼프의 생각대로 김정은-트럼프 둘 사이가 좋다는 것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서도 반길 일이다.

트럼프의 두 '친구', 김정은과 네타냐후

트럼프에겐 또 하나의 '좋은' 친구가 있다. 이스라엘의 최장기 총리기록을 세운 베냐민 네타냐후다(70세, 1996년 1차 총리 재임, 1999년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났다가 10년 뒤인 2009년 총선으로 총리에 올랐고, 이어 2013년, 2015년 총선으로 총리 3선 연임).

미-이스라엘 동맹의 끈끈한 연결고리인 두 사람 사이는 얼핏 들으면 입에 발린 립 서비스 수준처럼 여겨지는 트럼프-김정은의 '매우 좋은' 관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네타냐후 사이는 립 서비스와는 차원이 너무나 다른, 그야말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끈끈한 유착 관계다.

문제는 그러한 유착이 트럼프가 말하는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처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바람직한 관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네타냐후 사이의 유착이 깊어질수록 중동의 하늘은 먹구름이 끼고 중동 평화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는 2017년 초 미 대통령 자리에 오른 뒤 거듭 네타냐후를 즐겁게 하는 정책을 펴왔다.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고(2018년 5월) △이스라엘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유네스코(UNESCO)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탈퇴했다(2019년1월). 이 모두 중동 현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반미정서를 더하는 정책들이다.

총선 코앞에서 네타냐후 지원사격


트럼프가 보여준 가장 최근의 친(親) 네타냐후 행보는 9.17 총선 사흘을 앞두고 나온 '미-이스라엘 상호방위조약'이다. 총리 5선에 도전하는 네타냐후는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등 각종 부패 스캔들에 얽혀 있다. 따라서 그가 총선에서 패할 경우 기소돼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위기의 남자' 네타냐후를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트럼프가 내민 카드는 상호방위조약이다. 트위터로 밝힌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오늘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두 나라(미-이스라엘) 사이의 상호방위조약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이는 두 나라의 엄청난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줄 것이다. 총선 이후에도 이러한 논의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란다"

이에 화답하듯이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TV 채널12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스라엘에게 오랫동안 안전을 제공할 방위조약을 미국과 체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표가 필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친구'를 구하려는 트럼프의 힘을 빌려, 이스라엘 극우-종교-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굳히고 중도우파 유권자들을 네타냐후 지지 쪽으로 돌아서게 하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동맹조약 없는 '인지적 동맹' 관계

지난날 냉전 시절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이른바 '동맹국'들과 '상호방위조약'이란 이름 아래 군사동맹 관계를 맺어왔다. 유럽의 집단 방위체제를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주요 군사동맹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미국은 이스라엘과는 그런 군사동맹 조약을 맺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세계 동맹국 가운데 가장 열심히 챙겨온 나라다.

트럼프는 걸핏하면 동맹국들이 돈을 쓰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댔다. 필요할 때는 한국을 '혈맹'이라 부르면서, 주한 미군 주둔비용을 4~5배 올리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 미국이 해마다 30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주는 이스라엘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원조액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없다.

사실상의 최우선 동맹이 이스라엘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동맹조약을 맺지 않았는데도 미-이스라엘이 보여온 특수한 유착관계를 가리켜 '인지적 동맹'(cognitive alliance)라 부르기도 한다. 결국 여기서 국가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동맹'임을 나타내는 형식적인 문서(조약)나 '혈맹'이라는 립 서비스가 아니라, 관계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트럼프와 간츠는 성격, 노선에서 차이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그렇게 네타냐후를 열심히 돕는 것일까. 4.9 총선과 9.17총선에서 네타냐후의 맞수로 나선 베니 간츠 청백당 당수(60세, 전 이스라엘 참모총장)의 패배를 바란 까닭은 무엇일까.

간츠와 트럼프는 성격 면에서 친해지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 이스라엘 참모총장을 지냈고 2018년 말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군인 출신인 간츠는 진중한 성격을 지녔다. 그렇기에 트럼프로서는 쉽게 친해지기 어렵고 편하지가 않다. 네타냐후가 독선적이고 허풍이 많다는 점은 트럼프의 성격과 비슷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 베니 간츠 청백당 당수가 19일(현지 시각)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네타냐후의 정적 간츠의 지지자들은 이스라엘 중도와 좌파를 아우르는 세력이다. 간츠는 네타냐후에 견주어 온건파에 속하는 정치적 성향을 지녔다. 지난 2005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철군했던 사례를 꼽으면서 간츠는 서안지구에서 군 병력을 철수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우리는 다른 민족을 통제하지 않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말과 함께였다.

간츠는 이스라엘의 안보와 이익에 결정적으로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서 팔레스타인과 평화 공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다. 올해 들어 거듭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에 합병하겠다"는 강성발언으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뿌리째 흔들어댄 네타냐후나, 이를 묵인함으로써 사실상 지지를 보낸 트럼프와는 큰 차이가 보인다.

장사꾼 트럼프의 손익 계산

장사꾼 출신으로 손익 계산이 누구보다 빠른 트럼프라면 그 나름의 셈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2020년 11월 3일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포석이다. 트럼프에게는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표와 더불어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를 비롯해 미국 안에서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강력한 유대인 로비 집단과 유대인 지지자들의 돈(정치지원금)과 영향력 △극성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친이스라엘 유대인들의 단결력(조직력)이 중요한 정치 자산으로 꼽힌다.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이겼던 2016년 미 대선에서 미국의 유대인 유권자들은 29%만이 트럼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들 29%의 유대인들은 힐러리에게 투표한 71%의 유대인들보다 돈과 영향력, 조직력에서 훨씬 앞선다. 막강한 이스라엘 로비 단체인 AIPAC가 대표적인 보기다. 미 전국총기협회(NRA)는 총기 규제 여론에 맞서 무기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강력한 조직이다. AIPAC는 정치권을 상대로 엄청난 로비자금을 뿌려온 NRA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달러를 뿌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네타냐후는 미국에 갈 때마다 AIPAC에 들려 연설을 하곤 했다. 네타냐후의 정적인 베니 간츠도 올해 3월25일 워싱턴의 AIPAC 대회의장에 섰다. 그는 연설에서 "네타냐후만이 이스라엘의 대안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 정치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바로 그날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로켓을 마구 쏘아댔다. 간츠의 AIPAC 연설 비중을 미디어에서 낮추려는 네타냐후의 꼼수에서 비롯된 포격이 아니냐는 비판이 따랐다.

'위기의 남자'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네타냐후에게 노골적인 지원사격을 한 것은 이번 9.17 총선 때만이 아니다. 지난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는 국제법상 시리아 영토인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골란고원은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이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를 불법 점령으로 못 박아 왔다.

트럼프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문제를 꺼내든 것은 코앞으로 다가온 이스라엘 총선에서 네타냐후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의 적극적인 지원 사격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는 4.9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기는커녕 연립내각 구성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끝내 5개월 뒤인 9월 17일 다시 총선을 치러야 했다.

문제는 올해 두 번씩이나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트럼프의 노골적인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가 받아든 성적표가 초라하다는 것이다. 9.17 총선에선 그가 당수로 있는 리쿠드 당의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석수가 4.9 총선 때보다 4석이나 줄어들었다.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해온 우파연합 의석을 다 합쳐도 과반수엔 턱없이 모자란다.

9.17 총선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정치 지형은 △네타냐후를 리더로 한 우파-종교연합이 55석(리쿠드 31석, 샤스 9석, 토라유대주의연합 8석, 야미나 7석), △간츠를 리더로 한 중도좌파 44석(청백당 33석, 노동당 6석, 민주동맹 5석) △아랍계 정파연합인 공동연합 13석 △극우파정당인 이스라엘 베이테누 8석으로 나뉘어진다. 제1당은 간츠의 청백당이지만, 세력에선 네타냐후가 앞선다.

네타냐후가 의회 과반수 지분을 차지하려면 극우파 정당 이스라엘 베이테누의 리더인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전 국방부 장관과 손을 잡아야 하지만, 일이 간단치 않다. 지난번 4.9 총선 뒤에 리에베르만은 "초정통파 유대교도인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지도록 해야만 연립내각에 함께 하겠다"며 네타냐후의 발목을 잡았고, 끝내 9월에 총선을 다시 치르게 만들었다. 하레디를 군대에 보내려면 연립내각에 참여한 다른 유대교 정당의 반발을 살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에 네타냐후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부패 혐의자와는 함께 정치 못해"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총선 뒤 다수당 지도자가 대통령으로부터 지명을 받아 내각을 구성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네타냐후는 지난 10년 동안 늘 그래왔던 대로 극우-보수-종교 정파들과 손을 잡으려 하지만 연립내각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네타냐후는 간츠에게 연립내각을 구성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우리 청백당이 리쿠드당보다 2석이나 많다. 더구나 부패 혐의가 있는 네타냐후와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싸늘한 대꾸만 들었다. 간츠가 이끄는 청백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리쿠드당과 같은 35석을 확보했지만, 득표율에서 소수점 차이로 1당 지위를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에게 내줬다. 이번 9.17 총선에선 2석 앞선다. 하지만 의회내 지지기반은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친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간츠나 네타냐후 둘 가운데 하나를 총리 후보로 곧 지명할 것이다. 문제는 둘 다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게 뻔하다. 벌써부터 지금 이스라엘 정치권에선 총선을 한 번 더 치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고 쑤군댄다. 1948년 건국 이래로 이스라엘 정치사에서 한 해에 두 번씩이나 총선이 치러진 일이 없었다. 혹시나 또 총선을 치른다면? 세계 정치사에 1년 동안에 총선을 세 번 치르는 신기록이 이스라엘에서 세워지는 셈이다.

▲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로 합병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다. 사진은 서안지구에 주둔하는 이스라엘군 Ⓒ김재명

세 번째 총선을 치르지 않고 네타냐후가 총리에 오르는 길이 있긴 하다. △네타냐후가 간츠에게 제안했듯이 2대 정당(리쿠드, 청백)이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길 △네타냐후의 발목을 잡았던 리에베르만이 고집을 꺾고 우파-종교 연합내각에 참여하는 길 △13석을 지닌 아랍계 정파연합인 공동연합이 네타냐후와 손을 잡고 우파-종교 연립내각에 참여하는 길 등이다.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기에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 보인다.

'네타냐후 일병' 구하지 못한 트럼프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네타냐후 일병 구하기'에 실패했다. 백악관의 정책 참모진은 지금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9.17총선 뒤 발표하기로 한 미국의 중동평화안은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트럼프의 사위(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가 다듬은 그 중동평화안에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공식화하는 등 네타냐후를 기쁘게 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들어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등의 네타냐후 챙겨주기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시리아 골란고원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유대인정착촌을 이스라엘로 합병하겠다는 네타냐후를 비판은커녕 노골적으로 밀어온 트럼프의 태도는 중동 평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휘발성 높은 중동지역에서 트럼프가 네타냐후를 일방 지원함으로써 비롯되는 부작용은 중동 유혈분쟁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라 높아지는 반미 정서는 결국 미국에게 반사 불이익으로 돌아갈 것이 틀림없다. 식민지 피지배 상태인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이란, 예멘,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최근 긴장 상황이 말해주듯 중동지역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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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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