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택정책, 건설은 성공했으나 분배는 실패했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주택체제를 전환하자

얼마전 분양가 상한제가 다시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신축아파트 가격을 주변 시세의 70% 수준으로 낮출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전망이다. 그러나 분양 가격 중심의 접근이 아닌, 임대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의 주택정책은 한마디로 '성공한 건설정책, 실패한 분배정책'이다. 건설 측면에서는 세계사적으로도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었으나, 분배 측면에서는 소유, 주거비, 주택 품질의 3가지 측면의 양극화로 귀결되었다. 공공임대주택도 도입한지 30년이 되었지만, 정부가 바뀔 때 마다 새로운 ‘브랜드’의 주택 유형이 추가될 뿐, 주택체제론적 시각에서의 접근은 미비했다.


주거는 교육, 보건, 사회보장과 함께 '복지국가의 4대 기둥'이라 보고, '단일임대시장'의 성격을 강화하여 주거복지의 '잔여모델'으로부터 '대중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3가지 정책의 순환체계가 필요하다. 먼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수평적, 수직적 형평성을 구현하기 위해 주거보조비 지급 범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로 인한 임대료 인상을 막기 위한 임대료 체계가 민간주택, 공공주택에 동일한 조건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서의 공급이 위축되기 마련이므로, 공공주택 및 비영리 민간주택, 이른바 사회주택 공급이 원활하도록 각종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공공주택의 유형이 복잡해져서 신청하기도 힘들고, 공공정책의 혜택이 운이 좋은 몇몇에게만 돌아가는 현재의 난맥상을 해결하고, '주거복지의 대중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이다. (필자)

지난 8월 12일 정부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이라면 민간택지에서 짓는 주택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통해 초기 가격을 잡고, 전매제한 기한을 연장하여 단기 시세차익 실현을 막겠다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2007년 도입되어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014년 민간 아파트는 대상에서 제외하였으며, 이후 집값이 급상승했다. 이번 조치로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 대비 70~80%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시뮬레이션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들, 우리는 집을 살 수 있을까. 20억 하는 아파트의 70%라면 14억이다. 매달 이백 만원 씩 저축하면 60년쯤 걸리겠다. 그 사이에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현실적으로 5억 하는 아파트의 70%라면 3억 5천, 매달 백 만원 씩 저축하면 30년 쯤 걸린다. 그러니 초기 목돈이 좀 있고 대출을 좀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닌 다음에야,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어 시세의 70%에 살 수 있다 해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언제쯤엔가 전체적으로 집값이 안정화 되면 ‘실수요자’들도 실제로 먹을 수 있는 현실의 떡이 될까.

공급을 많이 하고 전매 제한으로 투기를 잡으면 그렇게 되겠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부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치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 변화를 축적의 위기와 정당성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파악했던 오코너(O‘Connor)를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축적의 위기'에는 규제를 풀어 자본의 순환을 활성화하려 하고, 그러다가 집값이 올라 힘들다고 여론이 아우성치는 '정당성의 위기' 국면에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분양가와 관련한 것만 해도 1977년의 일률 규제, 1980년의 자유화, 1983년의 규제, 1989년의 원가연동 방식 규제, 1998년의 자율화, 2005년의 규제, 2010년대의 일련의 완화, 이번의 규제 등 8번의 변화가 있었다. 십년 전 자료지만, 2007년 국정브리칭 특별기획팀의 책을 보면, 1967년부터 40년간 발표된 부동산 및 주거 정책 59건은 규제 강화가 31건, 완화가 17건, 주거복지는 11건이었다.

부동산 정책이 이렇게 냉온탕을 오가는 동안에도 그 바탕의 기조로 변함없었던 것은 '내 집 마련'이다. 전후 복구와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며 '집 없는 설움'을 겪은 많은 이들의 열망도 이를 뒷받침했다. "여보야~ 이번 임투에는 주택수당 따냅시다, 영원한 우리 집 만들어봅시다"는 민중가요 「달동네의 부푼 꿈」의 후렴구다. 전투적 노동운동의 구호에서도 보이는 이 내 집 마련의 꿈, '1가구 1주택'의 구호는 진보정당을 포함한 많은 정당들의 핵심 슬로건이었고, 다주택 보유를 규제하며 많이 지으면 결국 ‘필터링 효과’를 통해 자가소유율은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성공한 건설정책, 실패한 분배정책


한국 주택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평가한다면 ‘성공한 건설정책, 실패한 분배정책’이라 하겠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이 정도 기간에 전반적인 품질을 달성하면서 이 정도 물량을 지어낸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건설 측면에서는 대단한 성취를 보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분배 정책은 실패다. 주거 소유의 양극화, 주거비용의 양극화, 주거 품질의 양극화를 보건대 그렇다.

1970년대 이후 이촌향도의 도시화 과정에서야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게 당연하다. 도시화 이후 어떨까? 최근 수치를 보자.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집을 가진 사람은 줄고(59.2%→55.5%) 세입자는 늘어났다. 그런데 자가소유계층이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와중에 다주택자들은 오히려 2배 이상 늘었다(6.6%→15%). 이른바 ‘실소유자’ 혹은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1가구 1주택 집단은 50.5%로 무려 12.1%나 줄어들었다. 주거 소유의 양극화다.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비(PIR)가 전국은 4.2배에서 4.7배로, 수도권에서는 5.7배에서 6.9배로 증가한 것은 주거소유 양극화와 동전의 양면이겠다.

세입자가 늘어났지만 주거비용이 줄어들었다면, 딱히 상황이 나빠진 것이라 하긴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이 영역도 양극화라는 것이다. 월 소득내 주거비 비중(RIR)로 나타는 주거비 부담이 전 계층에 걸쳐 증가하였다(전국 18.7%→20.3%, 수도권 19.9%→21.6%). 전 계층의 평균 수치는 완만하게 증가한 편이긴 하다. 그런데 월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써야 하는 집단(RIR 30% 이상의 계층)의 비중이 늘어난 것이 문제다 (그래프). 전반적으로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는 와중에도 '가장 형편이 어려운 사람의 비중은 좀 줄어들었다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른 이른바 ‘최소-극대화의 원칙’이나마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주로 ‘형편이 어려울수록 주거비 부담도 늘어나는’, 즉 ‘최소-최소화’가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다른 말로 빈익빈 부익부다.

수치출처: 통계청, <2015 한국의 사회지표>

이 집단 안에서 보면, 청년의 비중은 26.1%에서 33.2%로 늘어났다. 노년가구의 경우 60% 이상이 RIR 30% 이상인데, 애초에 소득과 기타 소비규모가 적은 점을 감안한다 해도 걱정스러운 수치이다. 주택금융, 주택공급, 공공임대주택 정책에서 1인가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소외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고려해보자. 원했던 원치 않았던, 다들 예전보다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면, 세상에 공짜가 없는 바, 돈을 좀 더 내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주거 품질마저 양극화다. 쪽방, 비닐하우스, 고시원 거주 및 노숙인 집단은 4.3%에서 5.9%로 늘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고시원이나 비닐하우스 같은 '비주택'은 빠진, '주택'에 대한 통계다. 그러니 ‘주택’에 들어간 이들의 처지는 나아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대열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18년의 고시원 화재사건에 이르면 이는 생존권을 넘어 생명권의 문제가 되었다.


소유의 양극화는 필연일까

열심히 주택을 공급한 결과가 왜 이럴까. ‘분양가격’이라는 표현은 팔기 위한 상품이라는 말이고, 상품은 누군가 사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공급자인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초기자금과 상품의 가격을 치룰 소비자가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는 노릇이다. 선분양 제도는 당장 투입해야 할 자금이 필요한 공급자를 위한 썩 괜찮은 금융지원 정책으로 작용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누군가 돈을 주고 사줘야 한다. ‘실수요자’인지 ‘투기꾼’인지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집은 원래가 비싼 상품이다. 소비자 입자에서는 반값아파트라고 해도 몇년 저축해서 현금을 주고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신용이나 담보를 바탕으로 한 대출을 통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담보로 제일 좋은 것이 부동산이니, 이미 집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다. 세입자에게는 강제저축의 효과도 있는 전세 제도는 집주인 편에서는 투자에 '레버리지' 효과를 더했다. '갭투자'는 최근의 유행어이지만, ‘전세를 끼고 집을 산다’는 건 오래전부터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는 유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월세 보다는 나은 처지에 만족하는 사이, 내 전세 보증금으로 다주택자만 늘어나는 형국이었다.

소비자를 위한 주택금융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그 결과가 과연 다주택자가 아닌 ‘실수요자’에게 유리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담보가 없다면 대출이 가능한 신용이 있어야 할 텐데, 비정규직에게 이런 신용 대출은 힘들터다. 노동시장이 유연화 될수록 주거불안은 심화되고 주택 소유가 양극화 되는 것은 필연이다. 소비자를 위한 주택금융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그 결과가 과연 다주택자가 아닌 '실수요자'에게 유리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마냥 대출을 통해 자가 소유를 장려할 수도 없다. 십여 년 전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바로 그래서 생긴 일이다. 대출 규제는 투기 방지용이기도 하지만 경제의 파국을 막는 방편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다주택자에게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주택금융이 발달하기 전의 상황이란, 공급자에겐 집을 사줄 사람이 필요했고, 당장 집을 구매할 만큼의 돈이 없는 소비자에겐 전세나 월세로 집을 임대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 말이다. 일종의 공급자 지원 금융인 선분양 제도를 통해 돈을 조달해서 건물을 지으면, 다주택자가 은행돈을 빌려 사고, 신용이나 담보가 없는 이들은 이 다주택자의 집에 세 들어 사는 형국이었다. 직접 집을 지을 돈이나 시간이 없는 이들이 당장 세라도 들어 살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는, 다주택자들의 공이 크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임차인이 세를 안 내면 임대인으로서도 벽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감사하면서 지내면 좋겠는데, 시장에서 꼭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법이 없는지라, 불리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원성이 높아져 갔다. 이른바 시장의 한계 혹은 ‘시장실패’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공공주택이다. 다주택자가 아니라 공공이 나서서 집을 지어 팔거나 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계획적 차원이나 사회경제적 차원, 주거문화의 차원에서 공공임대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자라났다. 관리의 비효율 같은 문제라면 ‘공공실패’라고 할 수 있겠으나, ‘휴거(휴*** 사는 거지)’와 같은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이런 저런 비판이 있다보니, 정부가 바뀌면 새로운 브랜드의 공공주택을 선보였다. 대개 분양전환의 시점이나 기준을 바꾸거나, 대상집단을 좀 더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전문가들도 헷갈리는 복잡한 공공임대주택의 유형이 생겨났다. 이번 정부는 이러한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유형 통합’을 공약으로 걸었고 국토부에서는 연구과제로도 진행중이다. 더 이상 복잡해지기 전에 언젠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 글의 주제는 “주택 브랜드(의 통합)”가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주거복지 대중모델의 ‘주택체제(혹은 주거레짐) 구축”이기 때문이다.

주거레짐의 시각

흔히들 인간 생존의 필수 요소로 '의식주'를 꼽는다. 간혹 ‘의’와 ‘식’에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데, 왜 ‘주’에는 개입하느냐는 방임주의적 주장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케메니(Kemeny) 등이 이야기하는 ‘복지국가의 4대 기둥’이라는 표현도 있다(표). 교육, 보건, 사회보장과 함께 주거를 현대 국가에서 집합적 서비스로서 해결을 해야할 과제로 보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는 주거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체제론적으로, ‘주거레짐’으로 파악한다.

▲ <표1>, 복지국가의 네 가지 기둥의 비교

이러한 관점에서는 분양전환 임대주택의 임대기간이나 분양 조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없애기 위해서 새로운 브랜드명을 공모하지도 않는다. 주택에 대해 국가 혹은 사회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취급하느냐, 상품이냐 혹은 기둥이냐, 소유부문과 임대부문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체제론적 관점에서 나라마다의 주거체제의 성격을 구분한 것을 살펴보면, 대중모델, 잔여모델, 협동조합 모델로 구분하거나,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 모델, 임대부문에 중점을 두고서는 단일임대 (단일 모델), 이중임대(이원 모델)로 나누어 파악하는 시각이 있다.


대중모델은 급식이나 여타 복지서비스와는 달리 ‘보편복지’차원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힘든 주택의 특성상, 중산층 정도까지 포괄하는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이 대표적이다. 제한적인 소수 계층에 한정적으로 공급하는 경우인 잔여(residual) 모델은 몇 년전의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현재 한국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협동조합 모델은 자발적인 결사체들이 상향적 협동원리로 주택을 공급 및 운영하는 경우가 활발한 모델이다. 주로 스웨덴을 통해 소개되고 있으며, 201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이지만 의미있는 사례들이 출현하고 있다.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에스핑-엔더슨의 복지자본주의 유형을 주거레짐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주거레짐은 ‘복지’적 성격이 미약하며, 자유주의와 조합주의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 임대부문을 설명하는 단일 모델과 이원 모델은 각각 앞서의 대중모델과 잔여모델에 조응한다고 할 수 있다. 임대부문에서 격리나 분리가 발생하지 않으며 영리와 비영리가 결과로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소비자와 경쟁하며, 공급주체도 다양하다.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는 현상을 놓고 파악한 이념적 성격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저마다의 정견에 따라 지지하는 모델이 다를 수 있겠다. 그러나 사회통합과 주거권을 고려한다면, 가능한 한 임대부문의 성격이 단일모델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자가점유율을 보면 이른바 복지국가들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대개 55-60% 사이다. 복지국가의 관건은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세입자들도 마음편히 살아서’이다. 위의 대중 모델, 단일모델의 성격이 강할수록 세입자들도 마음 편히 사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주택이 아니라 체제가 중요하다는 말은, 정부가 바뀔 때 마다 기존의 체제는 그대로 두고 새로운 주택 브랜드를 하나 두 개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대중모델, 단일 모델로 전환하자는 말이다. 다행히 국토부는 현재 ‘공공주택 유형통합’을 주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 마다 새로 내놓는 여러 브랜드의 공공주택은 금융구조도 다르고 입주자격, 임대료체계가 모두 다르다. 따라서 같은 형편의 사람도 어디에 당첨되느냐에 따라 다른 임대료를 내게 되며 이 체계가 정말 복잡해지고 있다. 더 이상 복잡해지기전에 공공주택 내에서라도 유형을 통합하게 되는 것은 한국의 주거레짐 변화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공/사회주택의 공급만으로는 안된다. 주거보조비, 임대료 통제의 싸이클이 완성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수평적 형평성, 수직적 형평성을 달성하고, 투기 근절 외에도 실질적으로 '주택 구매 여력'이 없는 40% 정도의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자.


주거보조비를 통한 형평성의 확보, 그러나 부작용

100억의 돈과 만 명의 정책대상자가 있고, 집 한 채 공급에 드는 돈이 1억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돈으로 집을 지으면 100명에게만 혜택이 간다. 같은 처지로 같은 입주 자격이 있다고 해도 99,900명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해야 하는 수평적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 집에 들어가게 된 100명의 경우에도 형편이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같은 임대료를 내게 된다면,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해야 하는 수직적 형평성에도 위배된다.

100억의 돈으로 집을 짓지 않고 돈으로 나누어 줄 경우를 가정해 보자.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십만명이든 공평하게 나누어 줄 수 있다. 나눈 금액이 실제 주거비 절감에 효과적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누구에게만 주고 누구에겐 안 주고 하게 될 이유는 없다. 수평적 형평성이 달성된다. 형편에 따라 차등지급하게 되면, 수직적 형평성도 달성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전반적인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군인 월급이 오르자 군부대 앞 모텔과 피씨방의 이용료가 인상되었다. 왜 요금을 인상했냐는 질문에 업주들은 원가 인상을 이유로 든 것이 아니라 “군인 월급이 올랐으니까”라도 답했다. 단순히 "수요 증가→수요공급 곡선상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위수지역'의 공급자들이 소비자의 처지를 악용한 사례다.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뉴스를 보면, 주택에 관한 한 거의 대한민국 전역이 '위수지역'이다. 공공재원이 결국 임대인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임대료 규제와 임대료 체계

해외 사례를 보면 임대료 규제 제도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주택에 대해 정부가 일일이 가격을 고시하지는 않더라도, 인상률을 규제할 수도 있고, 아예 주택을 품질에 따라 점수화하여 해당 점수에 임대료 상한을 대응시키기도 한다. 주거보조비 제도와 연동시키기도 한다. 임대료 규제 제도안에 등록된 집에서 살 경우에만 주거보조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기능을 왜곡시켜 공급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타당하다. 그래서 공공주택, 사회주택이 필요한 것이다. 임대료 규제 하에서 시장에서 위축되는 공급 물량 혹은 그 이상을 공급하는 이 주거보조비-임대료 규제 – 사회주택/공공주택 공급의 3단 연계 작동 사이클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그 동안 우리나라에는 이것들이 제각각 소개되는 상황이었다.

▲ <그림 2>, 주거복지 대중모델을 위한 3단 사이클

임대료 규제 제도의 경우 실제로 모든 주택에 적용할 필요는 없다. 네덜란드의 경우 일정 점수와 임대료(2019.8 현재 약 720유로)까지만 규제 대상이고 그 이상부터는 시장에서 사인 대 사인 간의 계약을 존중하는 가이드라인 정도의 기능만 한다. 주거보조비 역시 이 기준선 이하의 주택에만 지급하며, 그 이상의 주택에서 사는 것은 능력있는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하여 주거보조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임대료 체계의 장점은 수평적 형평성과 수직적 형평성의 조화를 임차인 뿐만 아니라 임대인 차원에서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차인 측면에서는 '같은 집에는 같은 임대료'를 내게 되며, '다른 처지에는 다른 주거비'를 지출하게 된다. 좋은 집에는 그만큼의 많은 임대료를 내야 하지만, 소득이나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주거비는 달리 지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임대료와 주거비를 분리해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임대인 측면에서도, 같은 품질의 집에 대해서는 임차인이 누구든 간에 같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공급자로서는 타당한 일이다. 주거복지 차원에서 ‘주거비’를 조절하는 것은, (같은 부서이든 아니든) 주거보조비를 지급하는 부서와 예산의 책임이 된다.

특히나 임대인이 다양한 경우에는 더욱 긴요한 제도이다. 전국의 주택을 LH 혼자서 공급한다면, 같은 품질의 집이라 해도 임차인의 처지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화해서 받는 게 큰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LH의 바구니에 들어온 돈이니 그 안에서 교차보조가 이루어지는 셈이 된다. 그러나 SH 등 지자체 공기업이나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등이 짓는 사회주택의 경우에도 임차인의 처지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화하게 되면, 누구는 더 어려운 사람을 받아서 적은 임대료를 받아야 하고, 누구는 덜 어려운 사람을 받아서 더 많은 임대료를 받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다양한 공급자들 사이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도다. 따라서 임대료 체계는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주거비에 대해서 차등지원 할 수 있는 주거보조비 제도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공주택 유형 통합 방안’은 그래서 올바른 방향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운에 따라 임대료나 주거비를 달리 내게 되고 그 유형도 복잡한 체계가, 선거 때 마다 새로운 유형이 추가되며 더 이상 복잡해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주거복지의 한국형 대중 모델을 위하여

주택은 보편복지-선별(잔여)복지 논쟁을 촉발했던 급식과는 산업의 특성이 현격히 다르다. '복지국가의 4대 기둥론'에서도 주택은 자본집약도가 매우 높은 특성을 주목하여 좀 특별히 다룬다. 시장부문과의 공존 내지는 경쟁관계에 있는 주거'부문'은 '복지국가의 불안정한 기둥'으로 볼수도 있고, 기둥 정도가 아니라 주춧돌이나 근간(원문은 초석Cornerstone)이라고 볼수도 있다.

주거 부문에서의 보편복지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임대시장의 잔여적 성격을 줄이는 단일임대 모델의 성격이 강해질수록, 전체적으로는 보편 모델 정도의 체제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주거보조비-임대료규제-사회/공공주택 공급의 3단 사이클이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 나라들로부터 배울 것은, ‘또 하나의 특이한 브랜드나 프로그램의 추가’가 아니라 ‘주택체제론적 시각에서의 접근’이다. 그리고 주거를 ‘시장의 상품’이 아닌 ‘복지국가의 4대기둥’으로 보는 시각이다. 사실 이 4가지 기둥론도 이미 1970년대부터의 이야기이다. 21세기 한국형 복지국가는 여기에 교통, 인터넷, 에너지를 더해 7개의 기둥으로 세울 수 있다면 더욱 진취적일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이명박 서울시장은 당시 버스체계의 난맥상을 개선하여 지금의 통합체계를 만들어냈다. 현재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이전과 비교하면 불가능하다 싶었던 것을 해 낸 셈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주택문제에 대해서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성취를 보이는 것도 가능하고, 또 마땅하지 않을까.


<프레시안>의 편집 방침상 이 글의 참고문헌을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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