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에서 야구경기는 미친 짓인데, 왜 일본은 조용할까?

[인터뷰·③·끝]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 소장

한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시민 사회에도 국가주의의 힘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아베 정부 지지율이 '한국 때리기'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문재인 정부 또한 한때 지지율 반전의 계기를 얻었다.

일본이 이처럼 강경하게 한국을 공격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프레시안>은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 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앞선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 홍 소장은 일본의 현 움직임을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의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과 일본 지배계층의 독특함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인터뷰①: 지구적 관점에서 본 일본은, 끝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인터뷰②: 일본보수 방류, '아베류'의 70년 야욕의 정체)

마지막 인터뷰에서 홍 소장은 앞선 인터뷰에서 다루지 않은 두 가지 주제를 거론한다. 앞선 두 인터뷰가 현 상황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번 인터뷰 주제는 보다 근본적 차원의 일본을 대상으로 한다.

홍 소장은 일본 지배계급이 에도시대 이후 교체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이 같은 특징을 면밀히 짚는 '일본학의 부재'가 문제라고 전했다. 일본을 무작정 악마화하는 여론, 일본을 무작정 좋게 보는 여론이 한국에 있지만, 일본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일본학'의 계보가 매우 취약해, 한국이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홍 소장은 지적했다. 이를 위해 홍 소장은 일본을 바라볼 틀의 하나로 대략적인 일본학사를 정리했다.

아울러 홍 소장은 현 상황에서 일반 시민 사회가 일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생각도 전했다. 일본산 상품 불매 운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며 무작정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반 시민 여론보다 더 강경하게 '반일' 목소리를 내는 계층도 있다. 홍 소장은 두 입장 모두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의 주장을 잘 전달하기 위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기사 형식 대신, 강의 형식으로 풀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칼폴라니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으며, 이후 전화 인터뷰와 이메일 인터뷰로 내용을 보강했다.

▲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관점③: 한국에는 비판적 일본학 토양이 부족하다

앞서 한일 갈등의 주요 두 가지 쟁점을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변화 차원에서, 그리고 일본 역내 문제인 개헌 문제를 바라보며 아베 정권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차원에서 이야기했다. 일본의 영원한 이웃인 한국에는 이 같은 사건 못잖게 '일본' 자체를 제대로 조명하는 노력도 필요한 듯하다.

일본은 이웃 한국인 입장에서도 조금 독특한 나라다. 다른 나라 연구자들도 그렇게 보는 듯하다. 버텔 올만(Bertell Ollman)이란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본을 '야쿠자 국가'로 설명한 논문을 내기도 했다. 국가가 자신이 해야 할 일 중 더러운 일을 야쿠자에게 사실상 외주하는, 국가와 야쿠자가 한 집단인 독특한 국가라는 뜻이다. 그는 야쿠자도 일본 정치 시스템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일본 사회를 보면 나도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많다. 저 지경에서 올림픽을 강행하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쿄전력이 여러 은폐를 하는 걸 보라. 한국 전력 회사도 은폐에 능하다지만, 일단 한국에서는 후쿠시마와 같은 참사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저런 참사가 발생했다면 도쿄전력은 최순실 이상으로 여론상 능지처참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미X 놈들'하고 넘어가는 건 학술이 아니다. 다각적으로 그 사회에 접근하고 연구해야 한다.

일본 말 중에 '스바라시이(すばらしい)'란 단어가 있다. 근사하다, 멋지다는 뜻이다. 제비가 날렵하게 물을 박차고 오르는 것처럼 '예쁜 모습'을 설명하는 말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전 세계의 많은 일본학자들이 일본의 '스바라시이한 모습'만 보려는 것 같다. 일본의 병리적 모습을 무시해버린다. 재팬 파운데이션이나 문부성 프로그램들도 그렇고.

최근 일본을 '도금 민주주의'로 묘사한 서경식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의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가 나왔는데,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도 일본을 학문적으로 뜯어보는 분위기가 약한 듯하다. 과학적 연구 대신, 대담 수준에서만 이야기가 된다고 할까. 지식인이 격정만 토로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누가 봐도 후쿠시마 인근에서 야구 경기를 하는 건 미친 짓인데, 왜 대대적인 비판이 일어나지 않나. 미스터리다.

일본 비판이 부족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겠다. '비판적 일본학 연구'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학문은 비판적 접근을 통해 발전한다. 그런데 일본학 연구에는 이 같은 접근 자세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는 일본을 올바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본다.

▲ 2011년, 참사 직후부터 일본에서는 '먹고 힘내자'는 식으로 후쿠시마를 응원하자는 캠페인이 진행됐다. 방사능 우려가 지금도 큰 상황임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후지TV 화면 캡처

"에도시대 이후 일본 지배계급은 불멸"

일제는 파시즘 국가였나. 극우파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미국의, 나아가 영미 세계 전체 일본사학계에 있어서 이 같은 시각은 마이너리티다. "일본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길을 모범적으로 걸어온 나라이다. 1930년대 들어 잠시 군국주의(파시즘)가 대두해 일본이 추축국이 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민주화/근대화 경향에서의 '일탈'이었다"는 게 서구 일본학계의 주류 역사 인식이다. 태평양전쟁 이전까지도 일본은 유럽 대부분 국가와 다르지 않은 근대 입헌 국가였으며 그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일본학자의 비극적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학사의 거두로 E. 허버트 노먼(E. Herbert Norman)이란 학자가 있다. 캐나다 출신으로 어린 시절 다이쇼 시대(1912년 7월 30일~1926년 12월 25일)에 일본에서 잠시 생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했고, 1930년대 말 일본 근대국가 연구로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을 바탕으로 나온 중요한 책이 <일본 근대국가의 출현(Japan’s Emergence as a Modern State>(1940)이다. 당시 일본 연구의 이정표가 된 책이다. 이 시기 일본과 전쟁하던 미국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때 일본어 문헌을 소화할 수 있었던 드문 연구자의 한 사람이었던 노먼은 일본 좌파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이 바라보는 근대국가 일본의 역사적 형성과 성격을 분석하였다. 즉, <일본 근대국가의 출현>은 당대 일본 좌파들의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하여 그 스스로의 날카로운 역사적 혜안이 결합된 걸작이었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도 시대 이후 일본의 지배계급 교체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 근대화의 이정표로 묘사되는 메이지 유신은 오히려 천황제를 강화하는 봉건적 성격이었지, 민주개혁이 아니었다. 이 같은 지배 체제에서 파시즘이 대두하는 건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즉, 노먼은 당대 일본이 비록 겉으로는 근대국가의 틀을 갖췄지만, 지배 체제상 옛 에도 시대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1차 세계대전 이전 황제정(제2제국) 시기 독일과 당시 일본이 같다고 그는 보았다.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두고 비록 자본주의가 발달했지만, 국가권력은 철저한 황제정을 유지한 만큼 애초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한 체제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노먼이 바라본 일본도 이와 같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들어갈 당시 미 국무부는 일본 파시즘을 해체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당시 미 국무부가 노먼의 연구 자료를 참고했다. 적어도 1945~1946년 사이 미 국무부의 입장은 괴뢰천황제 설립 후 일본에 완전한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한다는 것이었다.

▲ 비판적 일본학의 거두로 평가받는 허버트 노먼. 그는 매카시즘 광풍의 희생양이 됐다. 당시 극우주의자들은 노먼을 동성애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canadianmysteries.ca

잘못 꿴 '전후 민주주의'

1947년 들어 냉전이 심화하면서 일본을 바라보는 미국의 관점이 바뀐다. 일본인들이 말하는 '역코스'다.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일본을 미국의 병참 기지로 만들자는 맥아더 등 국방부 강경파의 입김이 강해지고, 채택된다. 이와 더불어 1950년대가 되자 미국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일어난다. 노먼은 공산주의자로 지목된다. 미국의 압력이 어마어마했다. 노먼을 감옥에 넣으라고 미국이 캐나다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이에 반대한 캐나다 총리까지 공산주의자로 몰 정도로 미국의 공격이 거셌다. 결국 1957년 당시 이집트 주재 캐나다 대사였던 노먼은 투신자살한다. 이 사건 이후로 노먼의 저작물은 미국 일본학계에서 터부시된다. 1960년대 당시 미국의 일본학계를 이끌던 존 W. 홀의 경우 노먼의 연구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라고 폄하할 정도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속속 복귀한다. 전쟁 범죄자들을 향한 징벌이 끝난다. 일본은 과거의 모순을 고스란히 안은 채 무늬만의 '전후 민주주의' 국가로의 변신을 꾀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제 과거사 청산에 실패한 것이다.

이 시기 미국 학계에서 일본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본학 이론이 등장한다. 바로 근대화 이론이다. 일본은 서구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근대화를 이룬 나라라는 판단이 미국 일본학계의 주류로 떠오른다. 다만 1940년대 일본은 잠시 그 흐름에서 일탈한 예외적 상황이었다고 정리된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와 전쟁한 일본의 군국주의는 천황의 뜻도 아니었고, 오직 일부 군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천황제 유지와 전범 처벌 포기를 결정한 미국의 판단에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 따라 일본 내에서도 새로운 일본 인식이 생겨난다. 전후 민주주의 담론이다. 마루야마 마사오와 오츠카 히사오 등 이른바 '전후 일본 정신의 지주'로 불린 학자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전전 일본 민주주의는 서구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다만 그 원인은 천황제 등 지배 체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성숙한 시민의 부재'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시민, 즉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주체적 개인이 일제 때는 형성되지 않아 근대적 시민이 출현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전쟁으로 폭주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과제는 근대적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얼핏 맞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맹점이 있다. 전후 민주주의 담론은 노먼이 지적하던 일본의 근본 문제, 즉 일본의 권력 구조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를 은폐하고 온전히 일본의 일탈 원인을 시민 개인의 미발달 상태로 돌린다. 이 같은 바탕에서 일본의 문제는 결국 시민 개개인 양심의 차원으로 넘어가고 민주 시민 양성이라는 과제만 남을 뿐, 일본 사회의 권력 구조에 대한 집단적·조직적 저항과 운동은 뒷전이 되어 버린다. 불행히도 일본 진보 담론이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소련 멸망 이후 이 폐단을 되풀이한다.

'스바라시이한' 일본 너머로

그러다가 미국에서 반성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68혁명 이후인 1970년대 들어 미국에서 비판적 일본학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지금도 미국 일본학의 대표자로 거론되는 존 다우어, 허버트 빅스와 같은 이들이다. 이들의 대표적 서적 중 하나가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히로히토 평전>(허버트 빅스 지음, 오현숙 옮김, 삼인 펴냄)이다. 히로히토 천황을 최고 전범으로 규정한 책이다. 매카시즘 시대 이후 일본을 긍정한 미국 주류학계와 정반대되는 입장이다. 이들이 사실상 기존 미국 일본사학계에 전쟁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때 이들 젊은 학자들이 다시 들고 나온 이가 매카시즘으로 인해 사망한 노먼이었다.

이들 이후 미국의 일본 사학계에는 노먼으로부터 시작된 비판적 일본학 연구의 전통이 분명히 존재한다. 웹사이트 '재팬 포커스(Japan Focus)' 같은 오픈 액세스 저널이 이러한 경향을 담고 있다. 이들은 공식적, 혹은 주류의 세계 일본학이 자꾸 내거는 '스바라시한' 일본의 외양을 파헤쳐서 그 아래에 존재하는 모순적이고 고통스럽고 갖은 억압과 부조리가 공존하는 일본 사회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논외로, 서구 학계의 파시즘 연구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류적 입장은 간단히 말해 '일본에 파시즘이 등장하긴 했으나, 일본의 파시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이 같은 평가가 나온 이유가 있다. 연구가 부족해서다. 파시즘 연구자 대부분이 독일과 이탈리아 사례에 집중할 뿐, 일본 연구 시 언어 장벽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일본을 진지하게 연구한 파시즘 전공자가 매우 부족하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은 전후 전범국인 추축국에서 원폭을 맞은 피해국으로 바뀌어버린다.

▲ 히로히토 천황. 지금은 사실상 일본 제국의 전쟁을 총지휘한 인물, 즉 A급 전범으로 평가되지만 냉전 상황에서 책임을 면제받았다. ⓒwikipedia.org

지리멸렬한 일본 리버럴

물론 일본 내 프로파간다가 강했다. 우리도 알다시피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 내에서 역사 수정 바람이 거세게 인다. 일본은 역사 앞에 침묵하는 길을 택했다. 국제 일본학계의 돈줄이 일본 문부성과 각종 민간 재단이라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일본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연구비를 끌어오기 힘든 구조다.

일본의 리버럴이 변절했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일본 좌파는 크게 천황제를 부정하는 공산당 계열과 천황제를 인정하는 리버럴 주류로 나눌 수 있다.

와다 하루키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주류 리버럴의 원조는 1930년대 의회 내 혁신정당이다. 지금의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連合)와 공산당 이외의 야당으로까지 연결된 이들이다. 이들은 전후 일본의 주요 문제가 미국 종속 체제로부터 비롯한다고 봤다. 오키나와 문제, 미일안보조약 문제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군사 동맹 체제에 일본이 들어감으로서 일본의 평화가 항시적으로 위협받는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들의 이념적 좌표가 사라졌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일본 리버럴은 노선 변경을 택하게 된다. 리버럴은 1986년 도이 다카코를 사회당 당수로 앉히는데 성공해 일본 의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를 탄생시킨다. 뒤이은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당은 사상 최초로 제1당으로 등극한다. 이른바 '마돈나 선풍'이다. 당시 사회당이 대중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가장 먼저 취한 선택이 반미 입장을 버리고 한미일 동맹 체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체제 아래에서 리버럴 주류가 1995년 낸 대안이 아시아여성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설립이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과거 만행 폭로가 잇따른다. 거칠게 말해 아시아여성기금은 이 문제를 현 일본 체제(한미일 동조 체제) 안에서 해결하고자 낸 타협안이다. 이처럼 일본 리버럴은 현실과 타협함에 따라 여태껏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일본 리버럴이 일본의 과거를 파헤칠 힘을 잃은 원인이다. 현실적 정치 세력을 지향하는 가운데 일본 리버럴은 서서히 일본 권력 구조에 대한 체계적·조직적 반대의 입장을 하나씩 상실해 가고 있다. 와다 하루키와 같이 계속 입장이 흔들린 인물을 무슨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처럼 조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베 정부 규탄 집회. 홍 소장은 일본을 향한 시민 사회의 반발을 위험한 민족주의로 규정하는 것 또한 프로파간다라고 일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관점④: 갈 길은 현실주의이다. 탈민족주의와 민족주의 선동을 모두 경계하자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은 전 지구적으로 지정학적 구조의 변동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다. 일본 지배층과 그들의 대외 전략이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한 또한 이전과는 다른 전략과 계획을 추구하고 있는 격변의 시기다. 그야말로 정세는 엄혹하며 출구는 잘 보이지 않는다. 4000만 혹은 7000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이때 우리가 움켜쥐어야 하는 정신은 국제정치학의 기초라고 할 현실주의(realism)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볼 때 지금 한국 사회, 특히 진보 진영에 나타나고 있는 해로운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첫 번째는 탈민족주의라는 이름을 내건 사실상의 민족 허무주의다. 특히 좌파 진보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유포되어 있는 관점이다. 물론 민족주의는 프로파간다다. 그런데 탈민족주의도 프로파간다라는 사실은 우리가 계속 잊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마치 성경처럼 모시는데, 그 책이 뛰어나긴 하지만 민족주의 연구에서 그 정도 위치는 아니다. 우선, 앤더슨의 주장은 '민족이 허구'라는 식의 단순무식한 것이 아니다. 앤더슨은 이 책에서 민족이 어떠한 의미에서 담론 구성체이며 그 구성 과정의 내적 논리가 무엇인지를 사려 깊게 분석해 나갔다. 둘째, 이 책은 분량에 있어서나 논리적 구조에 있어서나 민족주의라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해명하는 책이라고 볼 수 없다. 문제의 복잡성에 비추어 너무 짧으며, 일관된 논리나 개념을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셋째, 그가 제시하는 이론 -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서술- 은 17세기 이후 서양의 경험에 국한된 것으로서, 많은 혜안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당장 훨씬 중요한 권위자라고 할 앤서니 스미스처럼 앤더슨의 입장에 대단히 비판적인 이들이 무척 많다.

한국 지식인 사이에 '민족은 허구' 담론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일종의 '쿨병'이라고 해야 하나. '민족'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지식인이 많다. 나는 민족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말하고자 한다. 민족은 좋든 싫든, 국민국가로 이루어진 근대 국제 체제에서는 엄연히 작동하는 중심적인 현실이다. 지금 한일 갈등은 국민국가와 국민국가의 충돌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민족의 현실과 집단적인 안녕과 미래를 중심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쿨병', '힙뽕'을 넘어서서 사실상 은폐된 프로파간다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탈민족주의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과정에서 비서구 사회의 담론을 무장해제하는 데에 혁혁한 공헌을 했고, 한국의 경우 90년대 이후 성장한 시민사회가 일본과의 과거 문제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박유하 교수나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 데에서 이러한 프로파간다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반일 바람이 불 때마다 일본 식자들이 한 얘기가 '한국 민주주의 수준이 부족해 민족주의가 발호한다'는 거였다. 위안부 문제 규탄, 난징대학살 규탄이 무슨 민족주의인가. 이것은 역사의 현실이며, 우리는 이를 풀어야 한다는 민족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나아가 남북한이라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민족'의 집단적 안녕과 행복을 보장해 나간다는 대단히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당연히 이는 보다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에 종속되어야 하겠지만, 이를 뭔가 '언쿨'한 것으로 보는 태도는 그야말로 '언쿨'이며 프로파간다에 조종당한 결과일 뿐이다.

두 번째로 반대 경향이 있다. 민족주의 감정에 편승하여 비분강개와 고담준론으로 "이순신의 뒤를 따르자"라고 사람들을 몰아가는 바람이다. 나는 모두가 지식인이거나 분석가일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부당함을 본 사람이 당연히 그런 주장과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노는 우리가 소중하게 활용해야 할 자원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향을 잡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지식인과 정치 지도자들이 여기에 편승해서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을 때 발생한다. 나는 최근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이순신 장군의 일기 등에서 어마어마한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비장미를 떨치고 자신을 반일 전선의 투사로 치장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지만, 한국은 주변 나라 어디와도 척지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의 나라가 아니다. 사람들 전체가 마음과 뜻과 힘을 합쳐서 일사불란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그 방향과 전략을 준비하고 이끄는 이들은 냉철하고 또 냉철한, 철저한 현실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말과 행동과 전략을 내걸어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 이순신 코스프레인가. 어디서 독립운동가 흉내질인가. 그건 사람들의 마음을 악용하여 본인의 정치적·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겠다는 짓일 뿐이다.

필요한 것은 현실주의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거기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그리고 각각의 선택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비용과 희생과 결단을 요구하는지를 냉철하게 알리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다. 지배 엘리트들이 휘둘러대는 고담준론 비분강개에 맞서서 특히 진보 진영이 이러한 현실주의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그에 입각한 집단적 행동에 따르는 희생과 비용은 거의 전부 하층 계급이 뒤집어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평화를 안착시키는 방법으로, 전쟁 결정은 전쟁터에 죽으러 나가는 병사들이 하도록 만들자는 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미국·중국에 대해서 이순신 흉내를 내는 정치가들의 말에 넘어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 경우, 그것 때문에 박살나고 손해보고 심할 경우 목숨과 신체를 잃게 될 이들은 어디까지나 못 배우고 못사는 평민들이다. 진보 세력이 정말로 지배 계급이 아니라 힘없고 어렵게 사는 피지배층을 수호하고 함께 하는 세력이라면 이러한 현실주의에 더더욱 철저해야 한다. 내가 볼 때에는 이것이 진정한 '민족적' 관점이다. 민족의 핵심이 민중이라고 했을 때, 그들의 안녕을 우선으로 삼으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결합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데에 진력하는 것이 진정 민족을 생각하는 지식인과 지도층이 해야할 일이다. 이런 임무를 뒤로 돌린 채 이순신 코스프레를 앞세우는 이들은 아베 만큼이나 위험한 이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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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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