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수 방류, '아베류'의 70년 야욕의 정체

[인터뷰·②] 홍기빈 소장 "한일 두 나라 시민 연대해 개헌 막아야"

지난 28일 일본의 한국 백색국가 배제 조치가 시행됐다. 일찌감치 예고된 일본의 공세에 맞서 한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키로 했다. 분노한 시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본 상품 불매 운동 동력은 (일본의 기대와 달리) 꺼질 기미가 없다. 한일 무역 갈등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 소장은 앞선 인터뷰에서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을 굴기하는 중국과 이에 맞서는 미국 간 갈등에서 찾았다. 중국의 전략 변화에 따라 미국 역시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졌고, 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틈에서 일본이 아시아 역내 패권국으로 부상하려 함에 따라 한국과도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홍 소장은 일본이 새 질서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동안, 한국과의 갈등은 끝까지 이어가리라고 내다봤다. 이 국면에서 한국이 할 일은 우선 한국만의 새로운 국가 비전을 만들고, 아울러 일본 지배층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①: 지구적 관점에서 본 일본은, 끝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일본 지배층, 곧 아베 수상으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정치 세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개헌 시도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홍 소장은 강조했다. 개헌에의 의지가 대물림돼 정치 목적화했다는 이유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선거제에 의지하는 보통의 정치 집단에서는 발견하기 힘들다고 홍 소장은 주장했다. 아베 정권에 개헌은 미국을 대상으로 한 대외전략과 함께 중요한 정책 목표다.

홍 소장은 일본이 아시아 역내 패권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개헌은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고 전했다. 미-중 갈등이 야기한 질서 재편기에서 일본의 대외적 목표가 미국의 방어라인 핵심이 되는 것이라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내적 장치가 개헌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 같은 욕망을 현실화한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도 홍 소장은 전했다.

홍 소장의 주장을 잘 전달하기 위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기사 형식 대신, 강의 형식으로 풀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은평구 칼폴라니연구소 사무실에서 진행됐으며, 이후 전화 인터뷰와 이메일 인터뷰로 내용을 보강했다.

관점②: 아베는 일본 개헌을 새로이 꺼낸 것이 아니다

▲ 홍기빈 칼폴라니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인이 일본의 무역 공격 못지않게 우려하는 대목이 아베 정부의 개헌 시도다. 한국 언론은 아베가 개헌에 성공하면 일본을 바로 군사대국화하리라는 우려를 내비친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온 나라가 촘촘히 얽힌 지금 시대에 일본이 군사적 팽창주의에 나서리라 보는 건 과도한 우려일 수 있으며, 특히 개헌으로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된다고 해서 50년대 기시 노부스케마냥 한반도와 만주의 옛땅을 되찾으려 들 것이라는 건 황당한 기우다.

하지만 일본 지배층의 개헌 프로젝트가 얼마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는 끊임없이 곱씹어야 할 문제다. 일본의 개헌 논의는 이미 1950년대 시작됐고, 1980년대 나카소네 내각 시절 본격적으로 주류 정치 무대에 등장해 지금까지 줄곧 이어졌다. 나카소네는 1984년 일본 현직 총리대신으로는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다.

일본의 개헌 시도를 돌아보기 전에, 일본 보수의 계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 보수의 반응에서 주류와 지류의 입장을 나눠볼 수 있다. 한국전쟁 국면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를 두고 당시 요시다 시게루와 기시 노부스케의 입장이 달랐다.

요시다는 군사 부담을 미국에 완전히 전가하고 일본은 이 틈을 통해 경제 발전에 집중하자고 주장했다. 동아시아의 군사적 역량은 미국에 맡기고 일본은 평화헌법을 방패로 내세워 경제발전에 다걸기 하자는, 일본을 미국의 '경제적 군수창'으로 만들자는 입장이었다. 요시다는 따라서 개헌은 반대했다. 이 입장이 당시부터 오랫동안 일본 보수의 주류(이른바 보수본류)였다.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보수의 지류다(보수방류). 당시 일본 지배층 일각에서는 미국에 군사력을 온전히 의존하는 걸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제국주의의 ‘영광’을 잊지 못하던 이들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란 일종의 거세된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만주국의 설계자이자 일본 파시즘의 경제 산업을 지휘했던 기시 노부스케는 냉전이라는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우선은 동남아시아, 그리고 유사시에는 한반도와 만주에까지 (물론 미국의 용인과 비호 아래에서) 다시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기시는 일본이 미국에 동아시아 안보를 위한 군사 역량을 떠맡겠다고 역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산당 진출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이 동남아와 강력히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시 집단이 '미쓰야 계획(三矢, 화살 3개 전략)'도 추진했음이 훗날 알려지기도 했다. 공산권으로 인해 한반도에 유사 상황이 발생 시 일본이 즉시 한반도에 진입하는 한편, 한국과 대만을 묶은 '자유주의 3개의 화살'이 되어 장기적으로 만주까지 진출한다는 계획이었다. 한반도와 만주, 동남아 일대까지, 사실상 일제 당시 모든 영토에서 옛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비록 똑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이러한 군사력과 전쟁 능력을 아울러 갖춘 대일본 국가의 회복이라는 꿈이 손자인 아베에게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1960년대 기시의 꿈은 이른바 '안보 투쟁'이라는 대규모 시위와 국민의 거센 저항으로 좌절되고 만다. 그 이후 자민당은 다시 보수 주류의 입장으로 선회하여 군사 대국화보다는 경제 성장에 매진한다. '소득 증배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사실 군국주의 시절 군사적 총동원이 옷만 갈아입고 경제 성장 총동원이 된 것이다. 이 시대에 일본의 6대 기업집단이 자리를 잡고, 종신 고용과 기업별 노조 체제라는 이른바 '주식회사 일본'의 틀이 잡힌다. 파시즘 시절과 거의 다르지 않은 경제 체제가 다시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일본식 자본주의 모델이 과거 파시즘 체제의 연속이라는 평가는 일본 내에서도 나왔다. 일본 대장성에서 재직한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일본의 자본주의 체제가 미국 등 서구 체제와 너무 다르다며 이를 '1940년대 체제'로 부른 바 있다. 어쨌든 이렇게 군사 대국화보다 평화 헌법과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본류가 주류의 자리를 지키면서 개현 논의는 뭍 밑으로 가라앉았다.

▲ 1977년 9월 29일 청와대에서 악수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아베의 할아버지인 기시의 사상은 현 일본 극우 세력의 그것과 상통한다. ⓒ연합뉴스

70년 역사의 개헌 시도

그러다가 1980년대 보수 지류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수상이 되면서 다시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보다 세련된 논의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 마찰을 겪으면서 "정상에서 벗어난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에 나카소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미국식 개혁'을 기치로 내걸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수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일본의 금융 개혁이 일어난 배경이다. 그리고 그 한 부분으로서 '정상국가'를 회복하는 과제의 하나로 평화헌법의 개헌도 의제로 다시 등장한다. 이때부터 일본 보수 지류와 주류의 위상이 서서히 뒤바뀌기 시작한다.

이러한 역전은 90년대 경제 침체로 더욱 가속화된다. 보수 주류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었고,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개헌을 통한 '정상 국가'로의 전환이라는 두 가지 의제를 하나로 엮어내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깃발을 든 정치 세력이 점점 자민당을 지배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 고이즈미 내각이 출범해 일본의 신자유주의화가 더 가속화된다.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우경화 논란을 임기 내내 이어갔지만, 평화헌법 개정에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암울한 국가적 상황에서 출범한 아베 내각은 다시 개헌을 통한 위대한 일본의 부활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을 보면, 개헌이 전후 일본 보수의 상징이었듯 평화헌법 수호는 일본 진보 세력의 정체성과 마찬가지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번 한일 갈등 사태에서 중요한 건, 일본 보수의 개헌 시도가 1950년대 이후 무려 70년간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식 비교정치학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다. 미국 정치학은 정치가란 선거에 가장 큰 관심이 있으므로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사안, 장기 관점의 사안은 정치가의 핵심 이슈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정당이나 정치 세력이 내면화하고 있는 이념이나 가치, 그리고 구체적인 지지 세력들로 설명하는 것을 표준으로 삼는다.

이런 방식으로는 도대체 왜 70년이나 되도록 일본 지배층이 개헌과 '정상국가'에 집착하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인 다수는 이러한 의제에 큰 관심이나 애정이 없다. 일본에서 개헌에 관심이 있고 이를 지지하는 이는 다수라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일본 보수의 이 같은 개헌 집착은 일본 지배층의 독특한 역사와 그 내부의 상호주관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역내 강자 되려는 아베의 욕망

일본 집권 보수가 아주 독특한 지배집단이라는 뜻이다. 이제 아베를 비롯한 이른바 '일본 극우'는 보수의 주류가 되었다. 경제 성장에 매진하자던 보수 본류는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가 무너지며 사실상 소멸한 듯하다. 역으로 보면, 1980년대 나카소네 개헌이 좌절한 이유도 경제가 너무 잘나가서다. 당시만 해도 일본 보수 정치인 중에 친한파가 많았다. 고이즈미 이후로는 이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본에 결정타를 입힌다. 이 위중한 시기에 일본 지배 계급이 시민의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해 새로운 정당성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경제적 전망이 사라진 시대에 신자유주의 개혁이 추진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분노를 호전적 개헌론으로 덮자는 게 현 아베 내각을 비롯한 일본 극우의 속셈이라고 본다.

주의할 일은, 지금 아베 세력이 내밀고 있는 개헌안이 일본을 무서운 전쟁 국가로 만들어서 한반도와 만주로 쳐들어오고 팽창하는 식의 비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막강하게 존재하지만 헌법적 위치가 애매한 자위대의 위상을 분명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중국 등과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아시아 강국으로의 위상을 굳히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한반도가 이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보면 안 된다.

▲ 지난 15일 광복 74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아베 규탄 집회 모습. 개헌을 통해 '정상국가'로의 회귀를 꿈꾸는 일본 지배 세력은 한일 양국 시민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려울수록 시민 사회 교류 중요

개헌이 이루어질 경우 일본은 독도와 사할린은 물론 '동해(Sea of Japan)'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려 들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적 충돌도 불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구실로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 개입하게 될 일도 늘어날 것이며, 미국은 이를 느긋이 즐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베의 개헌 시도가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때와 같은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팽창 계획은 아니라고 해도,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바꾸어 놓을 일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개헌 문제에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일본인의 주된 관심사는 개헌이나 전쟁 따위가 아니라 당장의 연금 개혁과 경제적 안전이다. 일본 사회가 아주 진보적이거나 역사의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지배계급 선동에 마구 휩쓸릴 정도도 아니다. 일본에 혐한 방송이 넘쳐나고, 혐한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일각에서는 일본 전체를 우리의 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는 듯한데, 이는 분명히 일각의 현상일 뿐이다.

일본 시민이나 한국 시민이나 대다수는 생활에 가장 필요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서로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큰 기대를 할 일도 아니지만 저주와 증오를 퍼부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끈질기고 차분하게 대화하고 토론하고 이웃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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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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