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로 몰아 넣고 '비정규직 제로'?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간 정규직 전환 성적표는?

"나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 사고가 발생하면 사장을 비롯해서 경영진도 문책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사장이나 임원진들이 자기 일처럼, 자기 자식 돌보듯이 직원들을 돌보도록 만들어야죠. 그것을 못하면 전부 책임지고 물러나야 되는 거고."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고 김용균 노동자 사건이 있은 지 한 달여 만인 올해 1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자기 자식 돌보듯이" 하라는 얘기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발전소와 같은 공공부문 사장님들이 '지엄'하신 대통령 말씀에 따라 '자(子)회사’를 사랑하는 것일까?

지난 2년간 정규직 전환 성적표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틀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전격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했다. 지난달 정부가 2019년 6월말 현재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중간성적표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했다. (자료를 직접 받아보고 싶은 분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시스템(바로가기 ☞ : 클릭)에 접속해 ’자료실‘을 클릭하시면 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새롭게 실태조사를 한 결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규모는 41만5602명으로 집계되었다. 사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인원 규모가 30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숨어 있던’ 비정규직까지 찾아낸 결과이다. 적어도 이 지점, 즉 실태조사를 다시 벌인 점에 대해서만큼은 문재인 정부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럼 지난 2년간 정규직 전환의 성적은 어떻게 나왔을까? 현재 기관별로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규모는 총 15만6821명,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규모의 37.7% 수준이다. 아니, 10명 중 4명도 안 된다고? 하지만 평가하기엔 이르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거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용역·파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까지 정규직 전환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기간제·계약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규모는 7만 명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과 대동소이하지만, 용역·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추가되며 규모가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회사 전환? 이건 또 뭐야

그래서 정부가 발표한 자료와 수치를 토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크게 기간제(직접고용)와 파견·용역(간접고용)으로 구분하여 정규직 전환 규모를 표로 나타내 보았다. 기간제의 경우 정규직 전환비율이 28.52%에 불과한 반면, 파견·용역의 경우 과반이 넘는 51.07%의 전환비율, 8만6000여 명의 정규직 전환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파견·용역의 정규직 전환비율이 높은 이유는 이들 일자리의 대다수가 상시·지속 업무, 즉 정규직 전환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기간제·계약직의 경우 실제로 임시·간헐적 업무나 휴직·출산 등 결원 대체업무가 일부 존재한다. 거꾸로 말하면 공공부문 사용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회피할 목적으로 상시·지속 업무들을 지속적으로 파견·용역으로 외주화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용역·파견(간접고용)을 정규직 전환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 역시 과거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구분해주는 요소로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파견·용역 정규직 전환 파트에서 이상한 부분이 눈에 보인다. ‘직접고용 전환’은 뭐고 ‘자회사 전환’은 뭘까?

3만 명에 달하는 자회사 전환

이 대목부터는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보여주는 명백한 한계가 나타난다. 파견·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외주화된 상시·지속 업무라면, 마땅히 이를 공공부문이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파견·용역의 정규직 전환방식에 ‘자회사 전환’이라는 항목을 끼워넣었다.

총 2만9914명 - 거의 3만 명에 육박하는 자회사 전환은 주로 어떤 기관에서 이뤄졌을까? 이걸 알아보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부문을 분류하는 5가지 범주로 나누어 분석해야 한다. △중앙행정기관(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자치단체(광역시도, 시·군·구) △공공기관(철도공사·도로공사·한국전력…) △지방공기업(서울교통공사·부산관광공사…) △교육기관(서울교육청·국립대…)


공공부문을 5개의 범주로 나누어 파견·용역 정규직 전환 성적을 위와 같이 표로 나타내 보았다. 그랬더니 중앙부처·자치단체·교육기관의 경우 자회사 전환은 단 1명도 없으며 정규직 전환된 파견·용역 비정규직은 전원 해당 기관의 직접고용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 그렇다면 이들 3개 범주의 기관들은 매우 모범적인 축에 속하는 것일까?

공공기관·지방공기업 자회사 전환비중 무려 62.52%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이들 3개의 범주에 속하는 기관들은 기업법인 형태가 아니라서 자회사를 만드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생각해 보자. 서울시나 경기도가 자회사를 만들 수 있나? 서울교육청이나 부산대학교에서는 가능할까?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와 같은 중앙행정기관에서는? 그렇다. 애초부터 자회사 설립이 불가능하기에 직접고용 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5개의 범주 중에서 자회사 설립이 가능한, 그래서 정규직 전환에서 자회사 전환방식을 쓸 수 있는 것은 기업법인 형태를 갖고 있는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 2개의 범주에서 자회사 전환 비중은 어떻게 나타날까? 해당 범주들의 수치만 따로 뽑아서 아래와 같이 표를 만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제 숫자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334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에서 파견·용역의 정규직 전환자 중 자회사 전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4.11%에 달했다. 지방공기업의 경우 자회사 전환 비중은 27.77%였으며, 2개의 기관을 모두 합해서 계산할 경우 자회사 전환 비중은 무려 62.52%가 된다. 즉, 정규직 전환자 3명 중 2명은 자회사 방식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자회사 전환은 해피엔딩이었을까?

이쯤 되면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자회사’ 사랑은 정말 남다른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뭐 자회사라 하더라도 임금과 노동조건이 대폭 개선되고, 과거에 비해 살맛나는 일터로 변화되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남다른 자회사 사랑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회사 전환은 그 어느 곳에서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이 매일같이 외치는 구호는 "자회사 꺼져!"이다.

KTX 열차를 타면 승무원들의 가슴마다 ‘직접고용 약속 이행’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버튼이 달려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현재 KTX 승무원들은 현재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철도공사의 자회사 소속이다. 철도 각 역사에서 전기원·차량정비원·고객상담을 맡고 있는 노동자들 역시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테크, 철도고객센터 등 철도공사의 자회사 소속이다.

서울대병원·부산대병원 등 10여개의 국립대병원 역시 공공기관에 속하는데, 이들 국립대병원도 용역·파견 노동자들을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그러자 이들 병원의 용역·파견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8월 22일부터 자회사 말고 직접고용 방식으로 제대로 정규직 전환할 것을 내걸고 전면 무기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명 아래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공공부문의 자회사, 도대체 이들 기업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토록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해고를 무릅쓰며 저항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인사이드경제>는 그 생생한 현장의 얘기를 다음에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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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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