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바꿀수 있습니다" 이용마 기자가 남긴 숙제

8월 21일 향년 50세로 별세...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상징

복막암으로 투병한 MBC 이용마 기자가 21일 오전 6시 44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향년 5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으로 아내와 쌍둥이 아들이 있다.

지난 1996년 MBC에 입사한 이 기자는 보도국 사회부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치며 여러 건의 특종보도를 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알렸다.

MBC 보도국 '민완기자'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진 계기는 지난 2012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 파업이다. 이 기자는 노조 홍보국장을 맡아 언론 취재에 앞장서 대응하고 대중에게 MBC 노조 파업의 이유를 설명하는 한편, 노조 조합원들을 한데 묶어 파업의 동력을 만들어 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 하던 MBC 경영진에 이 기자는 눈엣가시였다. 김재철 당시 사장은 2012년 3월 20일 파업의 상징이었던 이 기자를 해고 처리했다. 방송 3사 동시 파업 중 일어난 첫 해고 사례였다. MBC 노조의 파업 52일째 일어난 일로, 1992년 기록된 MBC 노조 역대 최장 총파업 기록과 같은 날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 MBC 노조는 같은 해 7월 17일까지, 170일간 파업을 이어갔다. 한국 언론사상 가장 긴 파업 사례다. 이 기자는 당시 이명박 정부에 저항하던 언론 노동운동의 상징이 됐다.

이 기자는 해직 중에도 한국 언론 구조의 문제점을 꾸준히 연구하는 한편,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각종 활동을 이어갔다. 이 기간 그의 고민은 숙성돼 문재인 정부 집권 후에도 정부에 고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안으로 만들어졌다.

이 기자는 2016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해고 기간 얻은 병이다. 그는 진단 후 자연치료를 이어가다 2017년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긴 시간 병마와의 싸움을 이어간 그는 투병 중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과 한국 언론 미래상을 향한 꿈을 놓지 않았다. 이 같은 그의 고민은 2017년 12월 1일 제5회 리영희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당시 이 기자는 구급차를 타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기자는 "내가 공영방송을 지키는 일에 그토록 매달린 까닭은 공영방송이 말 그대로 국민의 방송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깨어있는 시민'이 계속 지켜봐야 한다. 언론이 앞장서고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이 기자는 해고 5년 9개월만인 지난 2017년 12월 8일 복직했다. 최승호 사장이 MBC에 취임하면서 복직이 가능해졌다. 이후 이 기자는 사흘을 더 다니고 같은 달 11일 마지막으로 정든 회사에 출근했다.

복직 당시 이 기자는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정당당한 싸움을 했고, 정의를 대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일인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꿈같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정말 다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도 이 기자는 앞으로도 계속 출근할 동료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건 작년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나와 준 촛불 시민의 위대한 항쟁 덕분이다. 비판과 감시가 언론 본연의 역할이지만, 언론은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대변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기자는 투병 당시 저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창비)를 써 두 아들에게 아빠가 파업에 나선 이유를, 언론의 공영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전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파업 이후 언제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이가 공영방송사 사장에 앉지 못하도록,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확실히 담보할 지배구조 개편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이 기자는 MBC 사장선임 권한을 정치권이 내려놓고, 대신 국민대리인단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영방송 사장 입후보자는 여야가 청문하되, 선임권은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대리인단에게 온전히 넘겨야 한다고 그는 전했다. 그래야만 공영방송이 정권 입맛에 따라 좌우로 춤추는 원인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아직 어떤 정부도 이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숙제다.

▲ 고(故) 이용마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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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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