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22부(이범균 부장판사)는 8일 이모씨 등 11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는 43명에게 각각 300만원씩, 74명에게 각각 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씨 등은 2014년 6월 "성매매가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불법행위 단속 예외지역으로 지정해 성매매를 단속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은 만큼 1인당 1천만원씩 위자료를 달라"고 소송을 냈다.
작년 1월 1심은 원고 중 57명에 대해서만 "각각 500만원씩 주라"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1심은 정부가 기지촌을 설치하고 환경개선정책 등을 시행한 것을 불법행위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특정지역 지정이나 기지촌 정화운동 등은 지역사회 환경개선과 성매매 관련자들에 대한 성병검진, 치료 등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개인의 성매매업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고양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의 일반적 보호 의무는 인정되지 않는다"면서도 "성매매를 중간 매개하거나 방조했다는 부분은 국가책임을 일부 인정해 모든 원고에 대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각종 공문에서 '외국군 상대 성매매에 있어서의 협조 당부', '주한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접객업소의 서비스 개선' 등이 나오는 점, 공무원들이 기지촌 위안부들을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치켜세우거나,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앉아라' 등 성매매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들을 직접 교육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정부는 기지촌 내 성매매 방치·묵인을 넘어 적극적으로 조장·정당화했다"며 "이씨 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나아가 성으로 표상되는 이들의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이 자발적으로 기지촌 성매매를 시작했더라도 정부가 이를 기화로 이씨 등의 성과 인간적 존엄성을 군사동맹의 공고화 또는 외화 획득의 수단으로 삼은 이상, 이씨 등의 정신적 피해가 인정된다"고 부연했다.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격리 수용한 부분에 대해서도 "성병 감염인 격리 수용 규정 시행 이후에도 의사 등의 진단 없이 강제 격리 수용하고 항생제를 무차별적으로 투약한 행위는 모두 위법하다"며 1심보다 넓게 인정했다.
1심은 해당 법규가 마련된 1977년 8월 이전에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격리 수용한 부분만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행위"라며 57명에 대한 배상 책임만을 인정했다.
다만 국가가 불법행위 단속을 면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책임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기지촌 성매매 종사 여성들 측은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해 "국가가 사실상 포주 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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