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혁신 방향 묻는 유럽 우주기술의 새흐름, Space 4.0

핀란드에는 아이스아이(Iceye)라는 기업이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오타니에미 산업단지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 중 최고의 스타트업인 것 같다"고 한 곳이다. 이 회사에서는 소형 고성능레이더 위성기술(Small Satellite Synthetic Aperture Radar, SAR)을 탑재한 소형인공위성 20개를 군집 운영할 계획인데, 이미 위성 2개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모두 발사하게 되면 야간이나 기상악화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선명한 위성이미지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어 시장경쟁력이 있다.

유럽에는 이렇게 우주기술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기업들이 650개를 넘는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많은 우주기술로 창업을 하는 곳은 없다. 유럽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 ICEYE사가 2018년 발사한 고성능레이더 소형위성 ICEYE-X1(좌)과 ICEYE-X2(우) ⓒICEYE 홈페이지 갈무리

Space 4.0

유럽에서 우주는 인류에게 4세대를 거처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스페이스(Space) 1.0은 우주를 오직 천문관측으로만 이용했던 고대의 시간이다. Space 2.0은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시대로 50년 전 달에 착륙한 아폴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Space 3.0은 국제우주정거장과 같이 국가간 협력을 통해 우주활동을 한 시기이다. 다만 우주탐사를 위한 협력은 소수 국가에 제한되었다.

3가지 관점은 우주를 미지의 영역으로 전제하고 과학기술개발을 통해 개척해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 기술공급자인 정부는 주로 과학적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었다.

2010년 중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Space 4.0은 유럽의 우주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변혁의 집합적 용어인 인더스트리(Industry) 4.0의 개념과 비슷하게 Space 4.0은 과학, 산업, 정치, 사회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보(information), 혁신(innovation), 소통(interaction) 영감(inspiration)이라는 4개 축으로 유럽 우주기술의 상업화, 참여, 디지털화, 일자리,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우주는 위성과 발사체를 생산하는 업스트림(upstream)과 위성영상 및 통신을 서비스하는 단계인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구분된다. Space 4.0은 4개 축을 다운스트림의 가치창출과 연결하는데, 지구 저궤도(LEO)에서 주로 그 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저궤도는 고도 100km에서 2000km사이 구간인데, 여기서 고성능 소형위성을 이용한 다양한 비즈니스가 활성화하고 있다. 저궤도는 준궤도(sub-orbital), 태양동기궤도, 극궤도 등으로 나뉘는데, 특히 발사된 우주물체가 궤도를 타고 지구 주위를 돌지 않고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오는 비행경로인 준궤도는 상업운항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 스페이스 4.0에 대한 그림 ⓒ유럽우주청(ESA)

'기업가적 발견과정'을 통한 우주기술 혁신전략


Space 4.0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정부가 특정분야 선정을 배제한 '기업가적 발견과정(Entreprenerual Discovery Process)'에 의한 상향식 접근방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가적 발견과정이란 잠재적인 혁신가들이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의 경쟁우위를 고려해 우월성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지식의 집적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 아이디어를 행동에 옮기는 모든 과정을 일컬어 기업가적 발견과정이라고 한다. 기업가적 발견과정은 좋은 스타트업를 발견하고 그들이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요즘 유럽의 추세인 것이다. 유럽의 지역발전 수단으로 고안되었다가 현재 유럽정책 전반에 반영하고 있다.

기업가적 발견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적 적용은 꽤 복잡하다. 지식의 창출과정에서 다른 대학이나 기업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중복성을 배제하고 시너지를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내 혹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지식중개자(knowledge brokers)의 역할이 중요하다. Space 4.0은 유럽우주청(ESA)이 중개자로서 민관협력(PPP) 등을 통해 혁신적 스타트업들이 지식기반 강점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SA는 예비 기업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정책 뿐만 아니라 R&D 투자, 교육훈련, 기술이전 등 공급중심의 정책 및 공공조달, 초기시장 조성 등 수요기반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가적 발견과정의 핵심요소인 적정영역을 발굴하고 조정실패를 극복하고 있다.

기술혁신 그 자체보다 문제해결 위한 우주기술 관련성 강조

유럽에서 회자되는 Space 4.0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유럽은 우주를 과학이나 기술개발 목적이 아닌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수단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있다. Space 4.0은 독창적 전략에 기반을 두고 유럽내 기업과 대학의 창업을 유도함으로써 글로벌 가치사슬에 합류를 견인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경쟁하기 위한 민간부문의 필요성과 동시에 공공기관의 임무와도 일치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민간부분의 혁신을 실현하는 정책뿐만 아니라, 혁신의 방향을 제공하는 수직적이고 사명적인 공공기관에서부터 생태계가 성장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민관협력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ESA는 우주기술과 혁신이 추구해야할 가치와 지향성을 전면적으로 재해석한다. 예를 들어, 재해재난과 관련된 삶의 질 제고 문제, 지역간 경제 불평등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공급중심 정책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임무지향적 정책으로 전환한다. 때문에 우주정책은 지역정책, 환경정책, 보건정책, 농업정책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를 맺으며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최근 Space 4.0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탑다운(top-down)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공개적인 경쟁의 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경쟁을 통해서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ESA의 역할은 기업가적 발견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을 제공하는 지식중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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