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모든 노동자가 대상이야

[삶은경제] 정규직 뿐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강화

얘들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나흘째구나. 많은 목소리가 들려온단다. 사례를 더 모을까 말까 밤새 고민하다 이 글을 쓴다.

겉으로 고상해지고 싶어 하는 조직일수록 일상 속 괴롭힘이 만연했던 때가 생각난다. 여성 신입 사원에게 여성그룹 가수의 춤을 추게 했지. "그게 뭐 어떠냐. 하기 싫으면 빠져라"는 '빻은' 대답. 그들은 단 한마디 말을 꺼내는 것도 두려워, 결국 술을 마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억지 춤을 추었지.

건배사를 1시간 넘게 시킨 것도, 회의 시간에 욕을 하는 것도, 밤늦게까지 단톡방에서 업무 지시와 지적질이 만연하던 모습도, 말 안 듣는 직원에 대한 따돌림까지.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 사례들이었다. 이런 일에 내가 일조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 미안하구나.

기업의 관리자급 애들한테도 많은 얘기를 듣고 있단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직전 사장과 임원 등 관리자들에게 '걸리지 않는 법' 교육을 한 곳이 많더구나. 그 자리에서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냐는 불만이 많았다지. "정확한 기준 없이 폭넓게 적용돼 생산성과 업무 효율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도 나왔지.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일한 거니? 공손한 태도로 선배에 충성하고 모든 지시에 따르며, 회식 접대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자만 직원으로 본 거니? ‘나는 그래야만 했다’는 소리를 시전하며 괴롭힘을 정당화했니? 지위 또는 관계의 우월함이 짜릿했니? 과거의 향수에 몸부림치는 너희의 모습이 더는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는구나.

고통스럽니. 그렇다면 삶의 흔적을 하나씩 지우는 것이 나쁘지 만은 않단다. 기억해야 하는 조각도 있지만 잊어버려야 하는 흔적도 있다. '내가 말이야 예전에는.'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문장이 붙는다면, 지워야 하는 흔적이란다. 버리기 어렵다면 네 안에만 가지고 있어. 자신의 잘못까지 사랑하는 넘쳐흐르는 자아도 부디 고이 접어두길 바라.

보호해야 할 대상에 차등을 두는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 거니. 젠더, 인권 감수성이 특별히 더 낮은 직종 또는 직급 특성의 연장선상인거니. 혹여나 계약직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우월성은 아니겠지.

일터 괴롭힘 금지를 위한 민주노총의 모범 단체협약 중 일부를 소개해줄게. 사무금융노조는 16일 해당 내용들로 조합원 대상 교육을 했어. 다 아는 내용일거야. 그래도 다시 한 번 되새기면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따돌림] 상사나 다수의 직원이 특정한 직원을 따돌리는 행위 △[차별] 훈련, 승진, 평가, 보상, 배치,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하는 행위 △[비하] 외모, 연령, 학력, 지역, 성별, 고용형태(비정규직), 국적 등을 이유로 인격을 비하하는 행위 △[차단] 컴퓨터, 전화 등 주요업무 비품을 주지 않거나, 인터넷, 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하는 행위 △[업무제외]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업무를 주지 않는 행위 △[장기자랑] 회사 행사에서 원치 않는 장기자랑, 경연대회 등을 요구하는 행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은 모든 노동자야. 그 중에서도 특히 비정규직, 사내하청, 특수고용, 용역 등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지만 신분이 다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덜 보호해야 할 대상은 없어.

채권회수 업무, 텔레마케터, 투자권유사, 대출모집인, 사무보조사, 자동차보험 현장출동 인력,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기간제 교사, 급식 조리사, 체험강사, 지하철 스크린 도어 수리업무, 공장 점검 업무, 간호 비정규직, 조무사, 요양 보호사, 문헌정보관리자, 모바일 콘텐츠 제작 PD, 방송사 행정직원·작가, 계약직 아나운서…. 이 법이 특별히 더 보호해야 할 대상이 우리 사회에 차고도 넘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아. 잊을 뻔했는데 7월 16일부터 시행된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들어오면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해야 해. 또 피해를 입은 노동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노동자 보호 조치도 실시해야 돼. 내가 나를 용서하지는 않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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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정책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오기 전에는 만 8년 정도 기자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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