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는 지금 대륙을 걷어 차고 있는 중

'대륙철도시대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원모임' 발족 토론회

지난 6월 30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으면서 중단됐던 북미 대화가 재개됐다. 자연히 답보상태에 빠져있던 남북 관계도 풀리는 모양새다.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사실상 종전선언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다시금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논의할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대륙철도시대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원모임'으로 남북평화시대를 맞아 대륙철도를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정상은 동해선 및 경의선 등 남북철도를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취해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라며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한 바 있다.

남북철도연결은 남북한이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대륙철도 연결의 첫 단계이자 유라시아 철도망의 완결로써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정 기업이 철도 사업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국가기간산업으로서 남북철도, 그리고 대륙철도 사업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한국 철도가 대륙철도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리된 한국 철도가 통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는 것.

아래 그가 발표한 내용 전문을 싣는다.

▲ 박흥수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분리를 통한 경쟁체제가 효율을 증대했다?

사실 5~6년 전만 해도 남북철도, 대륙철도 연결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이른 시간에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대륙철도가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수서발 고속철(SRT)은 2016년에 개통됐다. 우선 그때 언론 내용을 한 번 보자.


'수서발 고속철 vs KTX 117년 만에 본격 경쟁체제' 2016년 11월 12일 <뉴스1>

당시 국토부는 한국철도의 개혁, 즉 효율화는 경쟁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그전에는 민간 경쟁체제, 민영화와의 경쟁체제를 통해서 효율화를 하자고 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를 보자.


'117년 만에 깨진 서울역 체제... 수서 역이 몰고 올 변화는?' 2016년 12월23일 <조선>


문화일보도 마찬가지다.

'KTX보다 싼데도 더 빨라...독점 체제 깨고 무한경쟁 돌입' 2016년 12월 7일 <문화>


그런데 SRT이 KTX보다 더 빠를 수밖에 없다. 서울역에서 부산까지가 가깝겠나. 수서에서 부산까지가 가깝겠나. SBS 보도도 보자.


'막 내린 KTX 독주체제...SRT, 9일부터 정식 운행' 2016년 12월8일

SRT 개통과 함께 막 내린 곳이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막 오른 SRT-KTX 경쟁...철도노조 '갑질 '막 내렸다' 2016년 12월 9일 <동아>

그런데, 아직도 (노조는) 갑질하는 거 같다.(웃음) 이런 보도 중에서 <조선>은 SRT 개통으로 117년 독점이 깨졌다고 했다. 실제 지난 117년 동안 한국철도가 독점의 단 열매를 빨아먹으며 독점체제에 부화뇌동했을까.

한국은 1945년 해방되면서 곧바로 분단됐고, 1950년 한국전쟁 터졌다. 3년 뒤 휴전했지만, 그 전쟁 기간에 남북 철도는 초토화됐다. 남한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지 않았나. 그때 미국의 전략폭격기 목표 3순위가 철도역과 철도였다. 그 당시 국전 입상 미술작품을 보면, 파괴된 용산역 등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전쟁을 겪은 이후, 한국 사회는 아주 가난했다. 보릿고개가 일상화였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전쟁과 가난의 세월을 겪은 셈이다. 그 시간을 돌파하고 달린 게 철도였다. 철도 노동자들이 보릿고개 과정에서도 파괴된 철도를 복구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철도가 독점체제라면서 경쟁해야 성공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선상에서 출범한 게 SRT와 KTX의 분리였다. 그런데 그러한 분리는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분리를 통한 경쟁체제가 서비스를 향상했는지 살펴보자. 국토부는 경쟁체제를 도입했더니 서비스가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SRT를 타면 220볼트 콘센트가 있어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좋다고 한다. 이를 국토부에서는 홍보한다. 그런데 KTX가 나온 지 15년이 지났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상용화되지 않아서 승객들은 충전에 대한 욕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 체제가 되면서, 콘센트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경쟁체제의 효율로 포장한다.

2000년대 초반에 나온 그랜저보다 지금 나온 엑센트가 훨씬 서비스가 좋다. 그런 것을 경쟁체제의 효과라고, 껍데기 씌우다 보니, 실제 경쟁 체제의 효과가 없음에도, 이상한 경쟁 구조만 유지되는 식이다. 문제는 그 이상한 구조가 철도 부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코레일 영업손실을 보면, 1177억 원 적자다. 20116년 1539억 원 흑자 대비 2716억 원 감소했다. 고속철도 분리로 코레일 영업 손실이 확대된 것이다. 문제는 이 확대가 일반열차, 지방선, 화물선 운행의 부실로 이어진다. 지방선 열차가 감축할 경우, 지방 승객은 열차를 이용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부실은 더 심화하는 악순환 고리에 들어간 셈이다.

그런데 선전하는 게, 경쟁체제로 인해 2018년 코레일이 흑자를 기록했다고 홍보한다. 문제는 이 흑자전환 배경은 경쟁체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흑자는 용산부지 반환 소송 승소에 따른 자산증가 효과에 불과하다. 실제 철도여객이 증가해서 흑자가 일어났다 해도, KTX와 SRT를 통합해 이를 수 있는 수익규모에 비하면 새 발에 피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국토부 정책 관료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회사인 코레일의 경영구조를 악화하는 구조가 한국 철도의 도약과 발전을 이루는 구조라고 국토부 정책 관료들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서비스는 콘센트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철도 서비스란. 콘센트를 승객에게 제공하는 게 아니다. 열차 이용객들은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통로석에 앉는다. 좌석이 없어서다. 그런 곳에 앉은 사람들에게 SRT이든 KTX든 고객서비스를 잘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콘센트를 지급하고 승무원들이 배꼽 인사한다고 좋은 서비스가 아니다. 일본에 가면, 나는 일부터 주말 가장 바쁜 시간에 신칸센 기차를 끊는다. 어떨거 같나. 출발 15분을 앞둔 기차를 곧바로 구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KTX나 SRT나 주말에는 표를 구할 수 없다.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좌석공급 능력을 늘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거꾸로 가고 있다. 경쟁체제를 했더니, 통합운영 할 때보다 열차 운영률도 증가 안 되고, 좌석도 제대로 이용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SR과 통합만 해도, 고속열차 운행이 1일 52회 증설이 가능하고, 최대 3만1878석을 증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코레일 수입도 늘어나고, 시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증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네트워크 증대의 효과다. 그런데 그런 효력을 발휘하는 네트워크를 효율성을 이유로 분리한 거다. 하지만 이것을 한 단계 도약한
정책이라고 정부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에 문제제기 하면, 경영 효율화에 반대하는 낡은 생각을 가진 조직 내지는 사람으로 국토부는 분류한다.


사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서부터 큰 문제가 있다. 이 기본법 만들 때 이렇게 만들어지는 걸 막으려 노력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철도운영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철도산업발전법 제21조 1항을 보자.

"철도산업의 구조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 철도운영 관련 사업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국가외의 자기 영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외의 자'는 누구인가. 한마디로 민간기업이다. 즉, 철도의 민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 조항대로라면 현재 코레일이 철도를 운영하는 것도 이 법에 위배되는 거다. 코레일은 공기업이지 않나. 이 기본법은 국토부의 신자유주의 키드들이 입안했다. 이 기본법에서부터 경쟁체제와 민영화의 길이 최종 목적지임을 명시한 것이다.

문제는 그 목적지로 달려가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도를 분리하고 그에 따라 철도 사고가 발생한다. 강릉선 사고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터져도 원인 규명은 서로 미룬다. 그래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영국 철도 전문가 크리스티안 월마 씨는 경쟁이 아닌 조화가 해답이라고 이야기한다.

"철도의 산업적 특성상 본질적으로 자유시장주의자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이 사람만 주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철도 전문가들은 이것이 상식이라고 본다. 철도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는 국가가 토지를 제공하고 일정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 △ 거대 장치 산업이다. 또한 비수기인 겨울에 승객이 없다고 철도망을 거둘 수 없고, 성수기인 추석 명절 때 승객이 많다고 철로를 새로 깔 수 없는 △수요와 공급의 탄력성이 거의 없는 산업이다. 그리고 △선택을 통한 배제, 즉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산업일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특성상 시설과 운영의 유기성이 높은 산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설, 유지, 안전, 가격, 서비스에 대한 국가 통제가 필수적인 산업이다.

이런 산업적 특성을 가진 철도에 경쟁체제나 민영화가 도입되면, 결국 '체리 피킹‘ 현상이 발생한다. 소수인 기업이 맛있는 것만 뽑아 먹고, 나머지 손실은 다수의 시민이 부담한다는 이야기다.

ⓒ연합뉴스

통합 철도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민영화 바람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잠시 주춤했다.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철도 공공성 강화에 주력하겠다고 하자 국토부 관리들이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숙인 머리 밑에서도 민영화를 포기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국토부가 부동산 폭등에 따라 정신없자 철도발전 연구용역을 중단시켜버렸다. 이 연구용역은 SR과 코레일을 통합할지 말지를 연구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중단시켜버렸다. 이 연구팀은 굉장한 자괴감에 빠져 있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적폐정책을 실현했던 인사들이 철도 요직에 재등용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급변하는 남북문제, 유라시아 철도 상황에서 한국 철도의 적응 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러시아 철도는 인프라, 운영 전반을 정부에서 담당한다. 여기 종사자만 95만 명이다. 그에 비해 한국 철도 종사자는 3만 명 정도다. 그리고 한국은 철도를 다 합해도 4000여 킬로인데,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 철도 하나만 해도 9188킬로에 달한다. 남북철도, 그리고 대륙철도 시대가 도래하면 우리는 이런 국가와 경쟁해야 한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한국철도는 유라시아 물류의 기점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28만 킬로의 대륙철도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이것을 빨리 하자고 하지만 과연 이를 감당할 조건이 돼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중국 철도 보면, 인프라 등 모든 게 우리를 앞선다. 2016년 기준으로 중국중차(CRRC)는 세계철도차량시장 점유율 1위(33.4%)를 차지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동북아철도의 주춧돌이 될 기회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자르고 분산된 한국철도가 발전할 수 있는 정책들을 복원해서 대륙철도로 달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 러시아 등과 서로 협력,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쌓는데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철도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대륙 철도가 연결됐을 때, 우리는 기차를 타고 베이징도 못 가게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통합 철도 대륙철도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철도 연결은 도둑처럼 올지 모른다. 철도의 세 가지 축은 '시설, 운영, 차량제작'이다. 철도는 이것이 하나로 결합된 사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다 갈라져 있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운영도 쪼개져 있다. 철도 선진국들은 시설건설과 운영노하우, 차량제작능력을 일체화했다.

경쟁은 외국과 해야 한다. 프랑스 철도가 이탈리아 철도와 경쟁하는 거지, 프랑스 내에서 경쟁하지 않는다. 전 세계는 통합을 중심으로 새롭게 철도의 기회와 가능성을 보고 있다. 한국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길로 갈 뻔 하다가 주춤하고 있다. 이제 다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오늘이 그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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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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