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 '우두머리들'이 최저임금 삭감 들고 나왔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최저임금 인상의 책임은 원청과 대기업이 져야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의 두자릿수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았다는 점도 사실이지만, 중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환경이 어려워졌다는 점도 분명하다."

요즘 최저임금 관련 각종 토론회나 연구 발표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결과들이란 게 대부분 이런 수준이다. 이런 결론을 내려고 굳이 돈 들여서 연구하고 토론회까지 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혜택을 본다는 사실을 굳이 통계자료를 통해 검증까지 해야 알 수 있는 일인가 말이다. 반대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용자들의 환경이 과거보다 어려워진다는 사실, 그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부문이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은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자고 주장했던 이들도 이미 예측했던 내용이다.

더 많은 임금을 위한 더 많은 개혁

‘최저임금 1만 원’ 슬로건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매우 낮은 당시(5000~6000원 대)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공감대는 하늘을 찔렀다. "더 많은 임금이 필요하다"는 공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일 거기에 그쳤다면 최저임금 1만 원은 캠페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하나의 ‘운동’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은, 이것이 만일 실현될 경우 어떤 사회적 쟁점과 장애물을 돌파해야 하는지를 함께 제시하려 했다. 중소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닥쳐올 어려움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일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이 문제를 도외시했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정파를 떠나 모든 후보들이 공약으로 채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은 단순히 '더 많은 임금’을 지향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런데 더 많은 임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 주기만 하면 완성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더 많은 임금을 위해서는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해야만 이 슬로건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1만 원이 말하는 ‘더 많은 개혁’이란 무엇일까?

ⓒ프레시안(최형락)

재주는 하청이 넘고 돈은 원청이 챙긴다

최저임금이 낮게 유지됨으로 이익과 혜택을 얻는 게 과연 중소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최저임금이 낮건 높건 자영업자들은 큰 이익을 보지 못한다. 이 부분은 뒤에서 구체적으로 입증해 보이기로 하겠다.

낮은 최저임금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쪽은 재벌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들이다. 이건 한국의 수직계열화된 산업구조를 이해하면 쉽다. 먹이사슬의 맨 위쪽에 위치한 재벌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이 최고 원청의 지위를 갖고 그 밑으로 1차 하청, 2차 하청, 3차 하청 … 최말단의 7·8차 하청까지 계열화가 이뤄진다.

1차 하청은 2차 하청의 원청이 되고, 2차 하청은 3차 하청의 원청이 된다. 각각의 원·하청 관계에서 갑질은 기본이고 온갖 이윤 챙기기와 빼돌리기가 이뤄진다. 자본가들은 빼돌린 이윤을 챙기는 반면, 그 대가로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 수준으로 유지된다.

각각의 단계에서 부가가치를 더하는 원천은 노동자들의 노동인데, 그들의 임금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중간단계 마진(margin)이라는 이름으로 중간착취가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중간착취는 최고 원청의 지위를 갖는 재벌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이 가져가는 최종 이윤의 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1조7000억, 1200억, 6억…

SK 통신산업의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흔히 접하는 SK 통신 관련 노동자들은 길거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대리점에서 일하는 분들이다. 가끔 집에 인터넷이나 IPTV 설치를 하거나 수리를 위해 방문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SK텔레콤이나 SK브로드밴드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 도급 또는 최근에 설립된 자회사 노동자들로서,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SK브로드밴드나 SK텔레콤의 여러 조건들(연간 영업이익, 노동자 규모, 연봉 평균 등)과 비교해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각 사별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표를 만들어 보았다.


우리가 실제 만나는 노동자들이 속한 업체들의 영업이익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리점의 경우 전국에 약 4000~5000개 규모로 줄잡아 2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대리점 자체의 수익이 크지 않다. 실제 이익은 모조리 SK텔레콤으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홈앤서비스는 인터넷 또는 IPTV 개통·수리를 담당하는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인데, 이곳의 영업이익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왜일까? 처음부터 개통·수리 관련 비용과 이익을 그렇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통·수리 관련 영업이익의 핵심은 설치나 수리 때마다 고객들로부터 그때그때 받는 설치비·수리비가 아니다.

차량의 경우에도 보증수리비는 이미 차량 가격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가. 보증기간 내에 수리를 하러 가면 무상으로 서비스를 받긴 하지만, 정비소가 원청으로부터 받는 보상은 특정 수리에 들어간 비용이나 시급에 불과하다. 대신 이런 서비스를 통해 평판이 좋아지고 고객들이 추가로 제품 구매를 하게 되면 그 이익은 고스란히 원청이 모두 챙겨간다.

마찬가지로 애초 인터넷과 IPTV 상품을 구매하면서 지급한 가격에 수리비용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실제 수리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비용이 책정되면 홈앤서비스는 딱 그만큼의 금액만 원청으로부터 수령한다. 그러니 영업이익이 발생할 수가 없다. 홈앤서비스는 독립된 회사라기보다 SK브로드밴드의 설치·수리 부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익을 얻는 자에게 비용과 책임을!

그렇게 해서 최말단 하청 쪽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죄다 SK텔레콤이라는 최고 원청에 쌓이게 된다. 그 돈이 무려 1조7000억(2017년)에 달하는 규모다. SK브로드밴드에는 그 1/10에 해당하는 영업이익이 발생하는데, 실제로 브로드밴드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 일부도 텔레콤으로 흡수된다. 유·무선 결합상품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SK 통신산업 종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리점과 홈앤서비스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유지함을 통해 가장 많은 이익을 얻어가는 이들은 누구인가? 대리점이나 홈앤서비스와 같은 최말단 하청자본이 아니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위치한 재벌 대기업이 낮은 최저임금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공공부문의 코레일을 비롯한 거대 공기업들 역시 민간 하청기업들과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가 덜 복잡하긴 하지만 수많은 프랜차이즈 대리점과 본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편의점 알바의 임금을 최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것은 편의점 점주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원청 자본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한 비용과 책임은 마땅히 재벌 대기업과 거대 공기업, 프랜차이즈 본사가 져야 한다. 이 부담을 원하청 구조의 최말단에 위치한 중소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아니라 원청 사업주가 져야 한다는 것이 최저임금 1만 원 슬로건에 포함된 ‘더 많은 개혁’ 요구의 핵심이다.

원청의 사용자책임과 최저임금 책임

SK텔레콤에 쌓이는 1조7000억의 영업이익이면 SK 통신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1만 원은 금방 실현된다. SK텔레콤과 브로드밴드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상대적 고임금 달성도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홈앤서비스 노동자들의 연봉을 두 배로 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1500~2000억 수준이다. 2만 명의 대리점 노동자들 한 달 월급을 100만 원 올려주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2400억 규모이다. 즉, 1조7000억의 영업이익 중 불과 20~30%만 사용해도 홈앤서비스와 대리점에서 일하는 2만5000여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을 훌쩍 넘는 임금이 보장된다.

이런 구조를 보통은 피라미드로 표현하곤 하는데 <인사이드 경제>는 발상을 ‘뒤집어서’ 역피라미드로 표현을 해보았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할 최고 원청은 저 뒤에 숨어 있고, 반대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최말단 하청이 가장 전면에 드러나 있는 뒤집어진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 먹이사슬의 우두머리에 선 자들이 최저임금 동결도 아니고 최저임금 삭감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촛불정부를 자임한 자들, 가장 빠른 속도로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더 많은 임금도 무시하고 더 많은 개혁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정부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이제 더 많은 임금을 위한 더 많은 개혁을 위해 최말단에 위치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점점 많은 이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7월 3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그 첫 번째 신호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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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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