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기후 총회, '정의로운 전환'을 말하다

[초록發光] 미완의 카토비체 기후 총회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24차 기후 총회(COP24)가 막을 내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 작성한 1.5도 특별보고서가 기후 비상사태를 경고하고, 금융의 녹색화 바람이 불고 재생에너지 비용이 하락하는 추세에서 기후총회에 순풍이 부는 듯 했다. 일상에 가까운 지구적 이상 기후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역풍은 거셌다. 기득권 세력은 에너지 시장과 정책의 관성을 유지하는 데 사활을 걸었고, 석탄 채굴 및 발전 지역의 지역적, 국제적 이해관계자들의 저항 역시 완고했다. 미국의 트럼프와 브라질의 볼소라노와 같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유럽에서 발흥하는 극우 정치세력의 포퓰리즘도 유엔기후레짐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12월 15일, 폐막 하루를 넘겨 카토비체 기후 패키지(Katowice Climate Package)라는 합의물이 나왔다. 전문가와 언론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파리협정을 실행시킬 조건을 마련해 2020년 이후 기후체제의 탄생을 알렸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준다.

실제로 2015년 파리협정 체결 이후 3년간 진행된 이행지침을 담은 규정집(rulebook)의 완결이 카토비체 총회의 임무 중 하나였다. 파리협정이 신기후체제의 뼈대라면 규정집은 근육과 살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그만큼 세부적인 쟁점을 많이 다룰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황에서 소기의 성과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축, 재정, 기술, 투명성 의제에서 일부 진전은 있었으나, 새로운 탄소시장(SDM, ITMO) 등은 내년으로 미뤘다는 점에서 미완에 그친 규정집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형식만이 아니라 그 내용도 논란이 많다. 기후정의 원칙은 시장주의와 기술주의를 잘못된 해결책으로 비판하는데, 이런 부분은 파리협정과 카토비체 기후 패키지 곳곳에 담겨 있다. 총회 단상에서 당당하게 연설한 15세의 그레타 툰베리의 어른들을 향한 쓴소리는 전 세계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기후정의 요구사항(People’s Demands for Climate Justice)과 일치한다. (☞바로 가기 : 기후정의 요구사항)

기후정의는 기후대응의 시급성과 함께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카토비체에서 녹색기후기금(GCF)을 비롯한 개발도상국과 빈국에 대한 금융지원, 나아가 기후변화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문구 이외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무엇보다 1.5도로 기온상승을 제한하려면 12년이 남았다는 IPCC의 특별보고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쿠웨이트와 공조하여 이를 무산시켰다. 보고서의 적기 작성을 환영하고 당사국들은 보고서를 활용하고 향후 총회 부속기구에서 논의하도록 한다는 결론만 내렸다. 미완성의 파리협정 규정집보다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이미 1도 상승했고 앞으로 3도 상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2030년 배출 50% 감축과 2050년의 배출 순제로라는 목표치를 규정한 특별보고서를 제쳐두고 신기후체제를 준비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탈라노아 대화의 요청서(Talanoa Call for Action)가 IPCC의 핵심을 인용해 배출 간극의 심각성에 주목했지만, 결국 정치 앞에 무력한 감성적 호소로 남은 것도 이런 파국 때문이었다.

반면 탈라노아 대화가 주목한 '정의로운 전환'은 과거에 비해 큰 관심을 받았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민주적으로 기획하고 대안적 전환경로를 추진할 수 있는 개념이자 전략이다. 환경정의, 에너지정의, 기후정의 등 다양한 가치를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전략적으로 실천하는 틀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 '노란 조끼' 사건은 기후 대응을 비롯한 사회 전환 과정에서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는 일종의 전환 모순에 능동적으로 대비하지 않고서는 전환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총회 의장국인 폴란드 정부가 제안해 통과된 연대와 정의로운 전환 실레지아 선언(Solidarity and Just Transition Silesia Declaration)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가 있는 정의로운 전환의 테제를 현재 맥락에 맞추면, 첫째, 모두를 위한 전환이 돼야만 정의롭다. 둘째, 사회전환 통해 1.5도 목표를 신속히 달성해야 한다. 셋째, 감축목표와 정의로운 전환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카토비체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사실상 채택되지 않으면서 2030년과 2050년의 감축목표 설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릴 기후총회(COP25)에서 규정집을 마무리하는 합의가 예상되고,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 개최될 2020년 COP26에서 단기(2025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취합하는 선에서 1.5도 마지노선 10년에 진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파리협정 체결 이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어 다행이지만 몇몇 나라나 지역 사례를 제외하고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 오히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변화를 지연시키는 데 활용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도 있다. 폴란드 정부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어떤 계획도 없으며 석탄 의존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외교용 면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2월 16일, 한국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정의로운 전환(정확하게는 '공정한 전환')을 COP24의 주요 성과물 중 하나로 꼽았다. 어쩌면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표현을 담은 첫 공식문서일 수 있겠다.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직인구 등 기후 취약계층을 사회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소개한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에너지 전환과 온실가스 감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수준보다 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니,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정의로운 전환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화와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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