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시민에 돌려준다더니 테니스장을?

[함께 사는 길] 용산국가공원, 10년째 논의 중

서울 남산과 한강을 잇는 녹지축에 자리 잡은 용산미군기지는 삼각지역과 녹사평역을 가로지르는 이태원로를 중심으로 북쪽 메인포스트와 남쪽 사우스포스트로 나뉜다. 2017년 미8군사령부에 이어 2018년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평택으로 떠나자 용산미군기지가 공원이 되어 시민 품으로 돌아올 조건은 일단 마련된 듯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공원조성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채 논의만 수년째 진행 중이다.

용산국가공원은 2007년 제정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따른 특별한 이름이다. 국립공원도 아니고 국가공원이다. 현재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과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토부가 다른 중앙 부처들과 나눠먹기식으로 공원 조성을 추진한다는 욕을 먹기도 했다. 물론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틈은 없었다.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듯, 지난해 11월 말 국회는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를 국무총리급으로 격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개발 부서인 국토교통부 주도의 흐름을 제어하려는 듯하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 국방부 부지는 용산미군기지와 붙어있다. 국방부는 영내 북사면에 조성된 무궁화동산을 헐어 테니스장을 만들다 물의를 일으켰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습관성 유류 오염 미군, 알박기로 버티기

2004년과 2008년 한미 간의 합의에 따라, 용산미군기지 땅 243만 제곱미터를 한국에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드래곤힐호텔, 헬기장 등 주한미군의 잔류 부지가 22.8만 제곱미터에 달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는 '반쪽 자리'라며 온전한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서울시도 온전한 반환을 주장하는 데 한 몫 거들기 시작했다.

특히, 드래곤힐호텔은 현재 용산미군기지 한복판에 자리 잡아 '알 박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2004년 10월 한미가 드래곤힐호텔 잔류에 합의하게 된 배경에는 외교·안보 이슈와 얽힌 복잡한 속내가 있다고 하나, 그 자리는 누구라도 욕심낼만한 터라는 점에서 굴욕감을 지우기 어렵다.

용산미군기지 북쪽 끝에는 광화문 미대사관과 대사관 직원 숙소를 한곳으로 모아 들어설 예정이다. 이 자리도 남산 경관을 가릴 것이란 점에서 시민사회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현재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는 용산 기지 남쪽인 사우스포스트 구역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에 17만4000제곱미터(약 5만2000여 평) 규모로 조성돼 있다.

이렇듯 일부 시설 이전이 지연되면서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온전한 반환은커녕 미국이 약속한 이전 완료 시점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전시작전권을 환수하면 한미연합사령부는 해체된다. 그러나 2012년에 해체한다던 한미연합사령부는 아직도 전쟁기념관 옆 메인포스트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전시작전권 환수를 연기해버렸고, 2018년 1월에는 협의 끝에 한미연합사를 국방부 내로 이전하기로 했으나, 그해 말 신임 한미연합사령관 부임 이후 이마저도 재검토를 선언한 상황이다.

기름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에 관한 문제도 온전한 반환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반환 절차 중 환경 평가 및 협상은 공동환경평가절차서(JEAP)에 따라 진행된다. 그간 부지반환 과정에서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미군이 아닌 관할 지자체가 진 사례도 있고(부산 캠프하야리아), 10년 가까이 협의만 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동두천 캠프캐슬 등).

2017년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가 미국의 정보자유법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군 용산 기지 내에서 발생한 유류 유출 사고는 모두 84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주한미군 기준으로 '최악의 유출량'인 3.7톤(1000갤런) 이상의 기름 유출 사고가 7건, '심각한 유출량'에 해당하는 400리터(110갤런) 이상의 사고가 32건(최악의 유출량 포함)이다. 그 이전까지 국회와 환경부, 언론사 등을 통해 알려진 용산미군기지 내부 오염사고는 14건이었다. 그러나 2017년에 입수한 자료 84건에는 기존에 알려진 사고 기록 6건, 특히 용산 일대에서 오염 지하수 작업 도중 드러난 녹사평역(2001년 1월) 사고와 캠프킴(2006년 6월) 사고 기록이 빠졌다.

아직도 기지 일부를 미군이 사용하고 있어, 건축물 내부와 지하 공간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갑갑하게 만든다. 현재 용산기지 안에 건물은 총 1166동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중 미 대사관 예정 잔류 부지를 제외한 공원조성 예정부지 내에 975동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엔 위수 감옥 등 역사적으로 보존이 필요한 건물도 있다.

▲ 4월 30일 시민사회 단체들은 국방부 정문 앞에서 무궁화동산 훼손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무궁화동산 헐어 테니스장? 국방부의 녹지 훼손


고구마 먹다 체한 듯 갑갑해서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국방부마저도 온전한 공원조성을 위해 떠나라고 하는 판에, 국방부 영내에 한가하게 테니스장을 짓다가 불법 공사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국방부는 3월 영내에서 가장 높은 구릉지 남쪽 사면에 무궁화를 심어 10여년을 가꾸다가 북쪽 사면을 절개해 터 닦기를 하고 콘크리트 기초를 했다. 용산구청에 인허가를 신청했으나 아직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용산미군기지의 온전한 반환을 요구해온 12개 시민사회단체·정당은 4월 30일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국방부를 질타했다. 첫 규탄 발언을 한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는 "국방부는 미국이 용산 미군기지를 드래곤힐, 헬기장 등을 온전히 반환하도록 나서야 하며, 불법적으로 추진하는 테니스장 조성 공사를 당장 중단하고 원상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국방부가 할 일은 테니스장을 만들 것이 아니라,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군기지 환경정화의 책임을 미국에 따져 묻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민 정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은 "남산에서 바라볼 때 녹지가 잘 조성된 지역이 바로 용산미군기지 일대이고, 국방부가 테니스장 공사로 훼손한 곳도 중요한 녹지축"이라고 지적하고, "전 국민이 미세먼지 문제로 자투리땅이라도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데, 국방부는 녹지를 훼손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 많은 녹지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날 오후 마침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국방부에서 화기애애하게 미세먼지 저감 협약을 맺었다. 양 부처는 이날 협약을 통해 군부대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 등의 배출량 관련 정보를 공동으로 수집분석하여 배출원 관리대책에 적용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효율적인 저감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을 발표했다. 국방부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나선 것은 바람직하고 칭찬할만한 일이나, 그 전에 용산미군기지 반환과 관련해 미군에게 확실히 챙겨야 할 것은 챙기고, 무궁화동산을 헐어 테니스장이나 짓는 엉뚱한 사고부터 치지 않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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