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비 공연, '한한령' 해제 신호인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한중관계, 사드가 문제가 아니다

2019년 5월 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문명대화대회(亚洲文明对话大会, Conference on Dialogue of Asian Civilizations)가 개막했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고 기조연설도 진행한 국제적 행사다. 본 대회에는 그리스, 싱가포르, 스리랑카 대통령과 캄보디아 국왕, 아르메니아 총리 등 총 47개국 정상과 대표단이 참가했다. 지난 일대일로 정상포럼, 세계원예박람회에 이어 중국이 올해 개최한 국제행사의 마지막을 성대하게 장식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 국내 포털 첫 화면을 장식한 기사는 한국 가수 비가 개막식 행사에 해당하는 아시아 문화 카니발(亚洲文化嘉年华)에 초대 가수로 참가, 행사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과 영부인 앞에서 다른 아시아 가수와 함께 공연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가수로 중국 초대형 국가 행사에 오랜만에 참가한 것이었다. 그러자 몇몇 언론은 이번 행사가 지난 2017년 이후 지속된 중국 한한령(限韩令) 해제 신호가 아닌가라는 섣부른 추측성 기사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한한령이 해제될 가능성이 있을까?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문명대화대회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이는 2015년 시진핑 주석이 보아오 포럼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국제행사로서 올해에 처음으로 열리며, 그 주제는 '아시아 문명 교류와 운명 공동체'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행사로서 아시아 문화 축제를 표방, 이를 아시아 문명 교류와 발전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아시아와 전 세계의 문명 발전에 대한 기여를 목적으로 하는 야심찬 계획이다.

본 행사의 목적이 한국과 한중관계가, 나아가 아시아만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가수 비의 합동 공연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중국이 주도하나 아시아를 표방하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특히 주요국 한국 대표는 중국과 중국계 가수가 다수인 공연에 구색을 맞추어 그 공연의 격을 높이고 이로써 아시아를 기반으로 글로벌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진짜 목표와 의도에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의 행사다.

▲ 제1회 아시아문명대화대회가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개막한 가운데 가수 비(가운데)가 이날 냐오차오(鳥巢)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축하행사에서 공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한령이 해제되면 한중관계 예전으로 돌아가나?

2016년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역사상 최고라고 불렸던 한중 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2017년 무렵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술 등의 다방면에서 교류가 급감했고, 한한령 같은 중국의 보복성 조치에 대한 국내외 우려가 급증했다. 그러나 2017년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긴장이 다소 완화됐고, 2018년 북한과 한반도 정세 급변 과정에 중국과 긴히 소통하며 협력했다. 이에 2019년 현재 다방면에서 소통과 교류가 회복됐다.

그러나 예전의 수준은 아니란 생각에 많은 이들은 중국 정부가 도대체 언제쯤 한한령을 해제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관광업의 경우, 일개 회사의 단체 여행객 모집 공지가 주류 언론에 두루 보도될 정도로 작은 소식에 일희일비 해왔다. 그러나 단언컨대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 해제를 공식 선언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설사 있어도 당분간 중국은 해제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오해가 상당히 심하다.

다른 분야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놀랐던 경험이 있다. 그는 사드 문제 본질, 의미 그리고 향후 향방에 대해 굉장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재 한중관계 제반 문제들이 사드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한중관계 혹은 무역통상 등의 회복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그에게는 사드 문제가 언제 해결될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언젠가 사드문제가 끝나면 다시 예전과 같은 한중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한중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사드가 한중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될 미중 간 전략적 경쟁에서 파생한 문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다 북핵문제, 한미동맹 이슈까지 겹치면서 미중간의 갈등이 한반도에 투사됐다. 나아가 이는 향후 일상화와 장기화 가능성이 높이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한동안 양국의 압박과 글로벌 정세의 불안정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이다.

한중관계 조정기에 들어섰다

2016년 사드 이후에 한중 사이의 각종 교류와 협력 사업이 영향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사드를 원인으로 지적하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사실 사드 문제와 무관하게 한중관계는 그 이전부터 조정기(調整期)에 들어섰다.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은 점차 부진해졌고, 양국 사이의 무역 증가세 역시 둔화되는 추세였다. 사드 문제로 인한 양국 간 관계 악화가 이미 취약한 중국 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든 상황은 맞다. 그러나 부진의 전적인 원인은 아니란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인접국으로 냉전 시기 이념의 문제로 적대했으나, 1992년 수교 이후에 매우 빠르게 양자 관계를 회복하였다. 올해로 한중수교 27주년이 되었다. 그간 중국의 경제 발전과 국제 영향력 제고, 자본 축적, 산업 및 기술 발전 등으로 중국의 국력과 상대적 지위가 달라졌다. 서로에 필요한 바가 달라진 것이다. 국제관계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도 달라져 중국의 인접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으로 한국은 새로운 정세의 인식과 적응이 필요해졌다.

사드 문제를 넘긴다 해도 과거와 같은 급속한 관계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미중의 전략 경쟁이 최소 수십 년간 지속될 것이고, 한중관계도 북한과 북핵, 이어도, 간도, 역사, 방공식별구역, 주한미군주둔 등의 잠재적 갈등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언제든 불거져 사드 문제와 같은 후폭풍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좋을 때도 많다. 단지 일상화, 장기화 되는 현재 미중갈등 국제정세 하에 한국은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한중관계 과열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양국은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상대방에 불가능한 정치적, 외교적 선택까지 기대했다. 지금의 한국은 사드를 넘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새로운 한중관계를 모색하고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중견국 정체성, 자신의 국익에 근거하여 신중하고 유연하게 스스로 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한국에 있어서 한미와 한중관계 모두가 많은 이해와 문제를 공유한 중요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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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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