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지역사회와 '함께 살기'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대학 평가, 우수한 학생과 뛰어난 연구만이 전부인가

지역에 존재하는 대학

학생과 교수, 그리고 교직원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연구를 위해 모여 있는 수많은 구성원들로 인해 대학은 존재 그 자체로 지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2018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은 430개에 달하며, 학부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총 337만 8000여 명의 학생들이 제적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교원과 직원의 수를 합할 경우, 대학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7%에 육박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경상남도 진주시는 인구 대비 대학 수가 많은 편이어서 교육도시로도 불리는데, 거점국립대학인 경상대학교를 포함해서 지역에 있는 6개 대학의 구성원 수는 지역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월 평균 소비 지출액은 117만 원(등록금 제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에 기초하여, 진주지역 대학 재학생(휴학생 제외)을 대략 3만 명으로 잡고, 방학 기간 4개월을 제외한 8개월을 지역 내에 소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이 지역 내에서 소비 지출한 금액만 대략 24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뿐이 아니다. 대학은 지역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여기에다 대학 재정 지출을 통한 간접적 일자리 창출 효과를 더할 경우 그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커진다.

지역을 먹여 살리는 대학

하지만 대학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고용과 소비가 전부일까? 대학은 거대한 지적, 인적, 물적 자산의 보고이다. 대학이 보유한 자산의 활용도를 높여 국가와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최근 들어 높아지고 있다.

약 천 년 전 중세시대에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시작으로 대학들이 설립된 후 유럽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존재는 현실과 동떨어져 학문만을 추구하는 곳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었고, 이를 두고 상아탑이라고 비꼬아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학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전환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한마디로 대학에게 상아탑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순수 학문으로서의 연구에서 탈피하여 연구의 성과가 기술 상업화로 연결되어야 하고, 교육도 학문을 위한 후학의 양성에서 벗어나 산업과 사회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용적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나 소피아앙티폴리스 등과 같이 첨단산업 클러스터의 성장을 경험한 지역의 중심에 기업가적 대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기업가적 대학 패러다임은 학문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책입안자들의 관심을 크게 자극했다.

기업가적 대학 패러다임의 등장 초기에는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 상아탑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반발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이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청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지리학자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지역의 성장과 발전의 조건으로 지역의 기술혁신 역량에 주목하고, 지역혁신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의 이론화와 사례 탐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여기에서 지역 혁신을 견인하는 핵심 주체로 '대학'에 주목하게 된다. 지역혁신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는 지역에는 대학이 지역산업에 필요한 연구개발(R&D) 활동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고, 지역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지역혁신체계 연구가 던져주는 주요한 시사점 중의 하나는 소위 '명문대학'이 있어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지역 산업의 수요에 맞는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이 지역에 존재해야 지역혁신체계가 잘 구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에 기여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

기업가적 대학 패러다임이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한편, 유럽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변혁적 대학(transformative university)'과 '시민 대학(civic university)'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들이 지역과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변혁적 대학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변혁적 대학의 개념은 대학이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실천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개인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어야 하며, 공공영역 확장과 평등사회 진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의무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혁적 대학 패러다임이 강조됨에 따라 대학과 지역과의 관계는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학이 지역기업 및 기관들과 연계하여 지역에 봉사하는 역할을 할 때,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과 지역 모두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학과 지역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영국의 경제지리학자인 존 고다드(J. Goddard) 교수는 변혁적 대학의 패러다임과 대학의 지역적 영향력을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시민 대학'을 강조했다. 시민 대학은 대학이 입지한 지역에 봉사하는 대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학이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대학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는 변혁적 대학의 제3의 역할과 유사하지만, 그 영향력의 범위를 지역(region)으로 제한하여 대학이 지역민, 지역의 유관기관 및 기업체와 활발한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이 지역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지역에 있을 것인가? 지역과 함께할 것인가?

필자는 대학의 존재이유를 대학이 입지한 지역과의 관계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았다. 그동안 우리는 대학을 바라볼 때 특정한 단면에만 초점을 두곤 했다. 얼마나 우수한 학생이 입학하는가? 교수들의 연구 역량은 얼마나 우수한가? 여기에 더해 취업률은 어느 정도인가? 등등.

각종 대학평가 기관들이 매년 발표하는 대학 순위에서도 이러한 항목은 주요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쯤에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대학이 가장 우수한 학생을 받을 수 있는가? 모든 대학의 교수들이 순수 학술 연구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모든 대학들이 취업률을 높이는 데에만 골몰해야 하는가?

여기서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매년 전국 대학들을 대상으로 대학의 지역공헌도 순위를 발표한다. 이 평가에서 4년 연속 1위를 달성한 대학은 도쿄대학도 아니고 교토대학도 아닌, 나가노 현에 있는 국립대학인 신슈대학(信州大學)이다.

이 대학은 산간지역이 많은 나가노 현의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중 산간지역 재생사업에서부터 지역전략산업 진흥을 위한 교육과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지역밀착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매년 지역공헌도가 가장 높은 대학으로 선정되고 있다. 지역공헌도 순위 상위 10개 대학 가운데 9개 대학이 국공립대학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참에 우리나라의 대학평가도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방식에서 탈피해서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대학'을 중심으로 평가해보는 것은 어떨까?

▲ 일본 나가노현에 위치한 신슈대학교 ⓒ신슈대학교 홈페이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발전의 격차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그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수도권에서는 지역혁신을 견인할 수 있는 대학과 기업, 그리고 연구기관들이 빽빽할 정도로 밀집해 있다. 반면에 비수도권은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유출로 인해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혁신을 추동할 인재와 기업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대학의 역할론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지역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받아들여 지역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뛰어난 연구 역량을 갖추고 지역산업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활 SOC와 서비스를 지역민들에게 제공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지역 대학일수록 더욱 기업가적 대학이면서 시민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자세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한마디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지역 대학이 된다면 지역민들은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그것이 지역 대학의 존재 이유이다. 지역 대학과 지역이 상생 발전하는 비전이 실현될 때, 골고루 잘살고 국민 누구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균형발전국가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이종호 교수는 영국 더럼대학교 지리학과에서 경제지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진주에 위치한 국립대학교인 경상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 이 교수는 교육부 지정 산학협력정책연구소 소장, 한국경제지리학회 부회장 등의 활동과 함께 활발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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