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년 전 영국의 실수 반복할 것인가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산업위기지역의 회복력 증진을 위하여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세계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 펼쳐지는 경제활동의 현장을 소개하기 위해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함께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을 연재합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생산, 소비, 분배 활동이 다양한 공간을 통해서 어떻게 전개되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연구해 왔으며, 이를 통해서 국가 및 지역 발전의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은 우리의 삶의 원천인 '땅'에서 얽히고 설키면서 전개되는 경제활동을 경제지리학자들의 냉철하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현안을 진단하고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경제지리학자들의 깊이 있는 진단과 합리적인 대안을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

경제지리학자들은 '땅'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지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간들의 다양한 경제활동이 '땅'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조직되면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지리학자인 필자는 나의 시선을 현재 우리나라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산업위기지역에 두고자 한다.

우리나라 지역 위기는 2000년대 이후 가시화된 인구 감소 문제와 함께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어 왔다. 이는 지방 소멸부터 시작하여 주력 산업의 침체, 초국적 기업의 퇴출로 인한 지역경제 붕괴 등 국가 및 지역 발전에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지역 간 균형발전, 지방 분권이라는 주요 쟁점과 더불어 위기에 처한 지역의 회복력 증진도 더욱 더 강조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이미 이러한 위기를 경험해 오고 있는 영국의 북동부 지역을 사례로, 이 지역의 위기 심화가 가속화되었던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영국 정부의 대응 방안을 검토해 보면서 우리나라 산업위기지역의 회복력 증진 위한 방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영국 북동부 지역의 중심 도시인 뉴캐슬(Newcastle)과 그 주변의 도시들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영국 중화공업의 전진기지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이후 주력산업인 석탄, 철강, 조선 산업의 쇠퇴로 심각한 지역 경제 침체를 경험했다.

이에 1970년대 영국 정부는 이 지역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대기업들의 생산 공장을 유치하여 지역 고용을 창출하는 '분공장 경제' 정책을 실시했다. 1980년대 이후 영국정부는 우리나라 군산의 GM 공장처럼, 그 대상을 다국적 기업으로 확대시키면서 이 정책을 약 20년 동안 시행하였다. 또한 기업에게 유연한 노동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영국은 유럽연합의 최저 임금제에 합의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강력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도 병행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이 지역은 활력을 되찾는 듯 했으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저임금 노동력에 기초한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함에 따라서 이 지역에 입지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생산 공장을 임금이 저렴한 동유럽 국가들로 이전시키게 되었다.

결국 이 지역의 회복은 지연되기 시작했고, 쇠퇴가 시작된 196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 지난 50년 동안 수도권인 런던권과의 지역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국 북동부 지역은 반세기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 회복력이 왜 이렇게 약하고, 회복이 더딘 것인가? 과연 과거의 성장기와 같은 완전한 회복 자체는 가능한 것인가? 필자는 이와 같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먼저, 영국 정부는 1970년대에 '생산 공장 유치=고용 창출=지역 경제 성장 회복'이라는 등식에 매몰되어 다양한 영역에서 위기를 진단하지 못했다.

둘째, 주력 산업 쇠퇴 이후 지역 노동시장의 성격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고임금‧고숙련에서 저임금‧저숙련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기존 조선, 철강 산업의 남성 숙련 노동자들의 실업 상태가 약 20년 이상 장기화될 줄도 몰랐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 노동자들은 장기적인 실업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숙련도를 지속적으로 상실해 갔으며, 결국 20여 년 후 고령화 인구에 속하게 되면서 노동시장 통계에서 마저 퇴출되는 비운을 맞이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국가적 차원에서의 정부 재정난과 지역적 차원에서의 장기적 실업 상태는 가계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지원이 취약해 졌다. 더욱 처참한 것은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자식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무렵에는 취업 자체도 어려웠지만, 취업하더라도 아버지 세대와 같은 높은 숙련도를 지니지 못하고 저숙련 업무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영국 북동부 지역을 연구한 시점인 1997년 이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되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국의 경험을 교훈삼아서 향후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 우리나라 지역산업 위기는 구조적이고, 장기 지속적이어서 정부 정책을 단기, 중기, 장기로 설정하여 그 수단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와 같은 위기의 지속은 최소 2세대에 걸쳐서 진행된다는 점을 인식하여 단기적인 실업 해소나 고용 창출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이러한 지원이 도덕적 해이로 귀결되지 않도록 기획부터 집행, 성과 도출 과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감독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지역 산업 위기로 인한 산업위기지역의 현실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위기는 이미 다양한 지역들과 기업들로 번지면서 그 파동이 확대되고 있다. 이 점이 경제지리학자인 필자의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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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한국 지리학내 전문학회로 발족한 한국경제지리학회는 국내외 각종 경제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연구 역량을 조직화하여 지리학의 발전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지리학회는 연 2회 정기 학술 발표대회와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선진 연구 동향을 토론하는 연구 포럼, 학술지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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