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산불, 재난학 교과서에 실릴만한 대응이었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강원 산불, 남은 과제는?

지난 4일과 5일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던 강원 산불이 예상과 달리 13시간 만에 조기 진화되자 이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대형 재난에서 보기 쉽지 않은 현상이다. 자칫 역대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었던 대형 산불이 초대형 산불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민관군 합동의 헌신적인 노력과 협력이 자리 잡고 있다. 2019년 4월 강원 산불 대응은 앞으로 재난 대응 교본에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힐 가능성이 높다.

2019년 강원 산불을 이처럼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된 데는 과거 이 지역 산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성찰과 교훈, 그리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총력 대응이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화재 진압을 위한경기도와 서울 등 지방자치단체의 신속한 지원도 큰 몫을 했다. 지자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일을 자신의 지역 일처럼 여기고 소방헬기와 소방차 지원, 인력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다.

강원 산불 성공적 대응, 재난학 교과서에 실릴 듯

재난은 흔히 전쟁에 비유된다. 따라서 재난을 대하는 자세는 전쟁을 대할 때와 같아야 한다. 사전 훈련과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전쟁의 승리는 군인들의 손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듯 재난을 극복하는 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번 강원 산불 조기 진화는 재난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런 원칙과 자세를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때문에 사망 1명, 부상 1명의 인명피해와 주택 400여 채가 불타는 등 상당한 피해가 있었지만 임야의 경우 530헥타아르 소실로 막는 등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뻔했던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산불 가운데 최악은 지난 2000년 산림 2만3000헥타아르를 태운 동해안 산불이다. 또 지난 2006년 양양 산불은 낙산사와 이 절의 동종 등 국보급 문화재를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로 꼽히고 있다. 1996년 고성 산불도 아직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4~5년 주기로 (초)대형 산불이 이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다. 한동안 뜸했던 대형 산불이 식목일 전날 저녁 14년 만에 다시 발생했다.

정부는 산불 발생 다음 날인 5일 즉각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소방차 872대와 소방헬기 등 51대를 투입하는 등 단일 화재 사상 가장 큰 규모의 화재 진압 장비를 풀가동했다, 화재 소식이 전해진 4일 저녁 이 지역에서는 한때 초속 35미터의 태풍 급 강풍이 불고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 조기 진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악명의 양간지풍도 민관군 합동 작전에 미풍으로

이 지역 산불과 관련해서는 악명 높은 '양간지풍'을 지역 주민과 산불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는 국지적 강풍이 4~5월에 분다. 남고북저 형태의 기압 배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서풍이 내륙에서 동해안 쪽으로 불어오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고온건조 해질 뿐 아니라 가속도가 붙어 태풍 급 위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양간지풍이 삽시간에 불을 번지게 만들었다. 불티가 예상을 뛰어넘어 수백 미터 먼 곳까지 날아가 산불이 확산됐다.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일은 신속한 대응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만이 그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원 산불 진화에는 신속성과 효과적 대응 전략이 주효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포함한 회복(resilience)이다. 화마가 삼킨 산림과 그곳을 터전으로 해 살아가는 동물 생태계는 산불이 한번 할퀴고 가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과거 고성 산불로 망가진 자연생태계를 추적 관찰한 결과 얻은 교훈이다.

이재민 지원과 산불 발화 원인 찾는데 힘 쏟아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재민에 대한 전폭적이고도 체계적인 지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주거이다. 지난 포항 지진 때 입은 거주지 붕괴로 아직도 많은 이재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정부는 현재 700명이 넘는 이재민에 대해 일단 공공기관 연수원 등에 분산수용한 뒤 한 달 이내에 임시거주지를 만들어주겠다는 방침이다. 이재민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세세한 것까지 챙기는 자세이다. 문제는 늘 사소한 것에서 비롯한다.

끝으로 산불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제2의 산불을 예방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강원 산불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낸 고성·속초 산불의 경우 유력 용의자는 전신주 개폐기이다. 소방 당국과 경찰은 고성군 토성면 원남리의 한 전신주 개폐기 주변에서 불꽃이 일어나 그 불씨가 주변으로 떨어져 발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전신주 관리 책임이 있는 한전 쪽은 물론 개폐기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내구연한 30년인 이 전신주의 개폐기는 2006년 제작된 데다 개폐기는 공기가 없는 진공절연개폐기여서 폭발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전기 설비 불량이나 관리 부실 때문에 일어난 산불이 아니라 강풍으로 인한 자연재해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전 쪽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피해 보상액 등이 뒤따른다. 따라서 한전으로서는 당연히 자신들의 책임이 없는 쪽으로 원인이 드러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원인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 원인과 책임 소재 아직 깜깜

지금까지 국내에서 일어난 재난 가운데 그 책임 소재나 발생 원인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정확한 침몰 원인을 5년이 다 되도록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도 참사가 드러난 2011년 이후 8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일부 가해 기업과 정부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화재 원인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고성·속초 산불과 달리 인제 산불의 경우 한 야산 약수터에서 누군가가 무엇을 태우는 모습이 폐쇄회로틸레비전에 잡혀 소방당국과 경찰은 이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강릉 산불은 최초의 발화 지점이 주민들이 기도하는 신당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신당에서는 양초 촛불 대신에 전기 촛불을 사용해왔다는 증언에 따라 누전으로 인한 화재 여부를 감식하고 있다.

이번 강원 산불을 계기로 드러나거나 다시 조명되고 있는 것으로는 밤에도 산불을 진화할 수 있는 특수헬기 도입을 비롯한 소방장비 개선과 산불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일선에서 목숨을 내어놓고 일하는 비정규직 산불특수진화대원에 대한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 그리고 지방직 소방 공무원의 국가공무원 전환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비비나 추경예산 확보를 통해서라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산불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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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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