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개인의 인권침해를 어떻게 다루는가

[휴먼 라이츠 브리핑] ② 유엔 인권 메커니즘의 인권침해 진정절차

필자는 지난 3년간 유엔인권이사회의 진정절차(complaint procedure)에서 진정실무그룹(Working Group on Communications)의 위원으로, 특히 최근 1년 동안 실무그룹의 의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유엔의 인권침해 진정절차를 직접 경험하였다. 매년 수백 건의 인권침해 사례를 심사하지만 실제로 구제까지 이르는 경우는 극히 소수여서 이 절차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인권침해 피해자들에게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절차임에 틀림없다.

유엔은 개인의 인권침해 구제를 위한 진정절차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특정국가에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개인, 단체가 진정을 제기할 수 있으며 유엔이 인권침해 여부를 심사하고 결과에 따라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국내법의 한계를 넘어 개인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진정절차는 크게 '비공개진정절차(Confidential Complaint Procedure)'와 '개인진정절차(Individual Communications)'(개별통보제도)로 나뉜다.

두 진정절차의 심사 원칙과 절차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두 절차 모두 국내 구제절차의 완료(exhaustion of domestic remedies)가 확인되었을 때만 심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심사하고자 하는 진정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전자의 경우 조직적인 성격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음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서술해야 한다. 반대로 개인진정절차는 조약감독기구가 개인이 겪은 개별적인 사건을 검토, 인권의 침해 여부와 그 성격을 심사하고, 침해로 판명이 난 경우 구제를 목표로 한다.

비공개진정절차는 2007년 인권이사회가 수립했다. 진정이 접수되면 진정실무그룹이 진정을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정부의 해명을 요청하고 심사한다. 심각하고 입증된 지속적인 인권침해가 있다고 판명되면 해당 진정은 상황실무그룹(Working Group on Situations)으로 전달된다. 상황실무그룹은 심의를 거쳐 진정의 종료, 조사의 지속 추진 및 인권이사회 회부 여부를 결정한다. 인권이사회로 회부될 경우 진정은 공식안건으로 다뤄지게 된다. 진정실무그룹은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 중 각 지역을 대표하는 5명의 독립전문가로 구성하고, 상황실무그룹은 인권이사회 회원국 중 각 지역 5개국의 대사가 담당한다.

스위스의 한 시민단체 보고서에 따르면, 비공개진정절차 설립 이후 접수된 수많은 진정 가운데 모든 절차를 거치고 인권이사회로 넘어간 사례는 이라크, 콩고민주공화국, 에리트레아 3개국에 대한 4건에 불과하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실제로 유엔의 개입이 뒤따랐다는 점, 대상이 유엔회원국 전체라는 점, 모든 종류의 인권문제를 진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절차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상황실무그룹을 이사회의 회원국이 맡고 있어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고 따라서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이 한계다.

개인진정절차의 심사는 조약별 위원회가 담당한다. 위원회는 국가 공무원이 아닌 독립전문가들로 구성되어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비공개진정절차와는 달리 모든 국가가 진정의 대상이 되지는 않다. 각 조약의 선택의정서(Optional Protocol)에 따로 가입하거나 제도에 대해 수락선언을 한 국가를 상대로만 낼 수 있다. 현재 1966년 채택된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자유권규약)' 포함, 모두 9개의 주제별 조약이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은 강제실종협약과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제외한 7개 조약에 가입하였고, 네 개 조약의 개인진정제도를 수락하였다 (자유권규약 1990년, 인종차별철폐 1997년, 여성차별철폐 2006년, 고문방지 2007년).

개인진정절차 이용률은 조약별로 편차가 크다. 가장 많은 진정을 받은 곳은 자유권규약위원회로 1976년 설립 이래 약 1,900건을 심사했다. 그 중 약 1,000건이 인권침해로 결정이 났고 약 200건은 침해가 아닌 것으로, 그리고 약 700건은 심리부적격으로 각하되었다. 자유권규약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은 개인진정 결과를 받은 국가는 자메이카 (159건), 대한민국 (125건), 캐나다 (122건), 스페인 (114건), 벨라루스(111건) 순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인권국가들이 포함돼 있지 않다. 국가들이 개인진정제도를 수락하지 않았거나 수락했더라도 많은 진정을 받아보지 않은 까닭이다. 캐나다와 스페인의 경우 진정 수는 많으나 침해로 결정이 난 사례는 총 진정 수의 20% 이하로 매우 적다. 이러한 통계는 개인의 권리주장과 국제법의 해석의 간극을 보여준다.

개인진정절차가 전략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자유권규약위원회로부터 가장 많은 개인진정을 받은 국가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 125건을 접수 받았는데 그 중 110건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진정이다. 이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2018년 11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무죄 선고를 판결한 후, 정부는 대체복무제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반대로 전략적 이용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사례도 있다. 자메이카는 5년 이상 열악한 수감환경에 놓인 사형수들로부터 112건의 진정을 받았다. 진정이 계속될 조짐이 보이자 자메이카 정부는 자유권규약 선택의정서 가입을 철회했다.

위에 설명한 두 절차 외에도 법적으로 훨씬 수월한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 진정(청원) 제도가 있다. 정치적 음해 목적이 아닌 이상, 인권침해의 사실만 확인되면 진정요건이 충족되며 국내적 구제 완료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력난으로 인한 심사지연이 상당하며, 한 시민단체의 경험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구제받는 경우는 전체 진정의 1% 미만이다.

유엔의 모든 진정절차는 최종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인권침해로 판명이 나더라도 국가의 구제를 강제할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유엔은 인권이사회의 개혁과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청하는 38/18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개인인권침해에 대한 예방과 조사, 구제의 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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