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군사동맹, 필리핀 수준으로 개정하라

[기고] 필리핀·미국의 군사동맹과 한미 군사동맹의 정상화는?

최근 남지나해에서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필리핀이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중 군사적 충돌 상황이 벌어지면 이 조약에 의해 필리핀도 자동적으로 전쟁에 휩쓸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AP통신 2019년 3월 5일>. 필리핀은 중국이 1990년대에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지나해 스프래틀리 군도를 점거했을 때 미국이 이 조약에 따라 개입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필리핀 국익이 손상됐다고 주장하면서 이 조약의 애매한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리핀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은 1951년 체결됐다. 하지만 필리핀 내 미군기지 부근에서 필리핀 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군 범죄가 급증해 반미운동이 거세진 1991년, 1947년에 합의된 미군기지 협정이 폐기됨에 따라 상호방위조약도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에 따라 당시 미군은 필리핀에서 전면 철수했다. 그러나 미국은 2001년 9.11사태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필리핀에 상호방위조약의 존재를 재확인시키면서 필리핀과 협상을 벌였고, 그 결과로 2014년 두 나라 간에 방위협력강화협정(ECDA)이 체결됐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에 군을 영구적으로 주둔하거나, 영구적인 군사기지를 만들 수 없다. 핵무기도 필리핀에 반입할 수 없다. 미군은 오직 필리핀 정부의 초청을 받은 신분으로서 필리핀군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 지역과 시설만을 이용할 수 있다. 두 나라가 태평양지역에서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두 나라 외무장관은 이 조약의 적용문제 등을 협의한다. 협정에 따라 두 나라가 무력을 동원한 공격 등을 취할 경우 이를 유엔 안보리에 즉각 보고한다. 이 협정은 10년이 시한이며 어느 한 쪽이 종료의 의사를 통보한 후 1년이 지나 폐기될 때까지 유효하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을 서태평양의 주요 군사 거점으로 삼고,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인공 섬 주변으로 자국 군함을 통과시키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대항하는 작전을 펴왔다. 특히 미국은 지난 4일 B-52H 전략폭격기를 남중국해 주변 상공에 출동시켜 양국 간 긴장이 커졌다. 이런 사태 진전을 경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최근 필리핀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상호방위조약 재검토를 요구했고, 폼페이오 장관은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이 공격받으면 미국이 방어 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밝힌 게 최근 두 나라 간 주둔 미군 지위에 관한 재 협정 논란이 일어난 이유다.

필리핀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과 그에 따른 방위협정은 한미 두 나라의 그것과 달리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원칙하에 만들어 졌다. 한미 두 나라의 상호방위조약은 4조의 부속협정에서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을 권리(right)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한국은 미군에 기지와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에 따라 주한 미군의 주둔비 절반 정도를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도 만들어졌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SOFA, SMA에 의해 주한미군은 한국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어 필리핀과 미국의 상호 평등한 상호방위조약이나 방위협력강화협정(ECDA)과는 큰 차이가 있다. 평택 미군기지가 해외 미군기지 가운데 최대, 최고 시설인 이유는 이런 한미군사동맹의 결과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비 전액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미국의 슈퍼 갑과 같은 권리를 보장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도 한미의 그것과 달리 미국 군사력의 일본 배치를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과 필리핀, 미국과 일본 간 군사동맹조약에 비춰볼 때 한국이 주권국임을 무시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불평등 조약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고 그 경제력이 국가별 순위로 세계 10위권에 달하는 강국인데도 전시작전권조차 갖고 있지 못한 나라다. 그에 따라 미국은 대북 군사전략 옵션의 하나로 한국의 안전은 무시한 대북 전면전 시나리오가 포함된 한반도 군사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이해에 따라 한국 주민 수천만 명이 죽거나 다칠 수 있게끔 하는 비극적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을 상시 확보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정상화가 시급하다.

특히 한중 관계를 고려하면 불평등한 한미군사 관계의 정상화 필요성이 자명해진다. 몇 년 전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가 배치되자 중국은 군사적 대응과 함께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 조치를 취했다. 포털사이트 신랑(新浪·시나)이 2017년 3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은 사드에 대응하기 위해 레이더 대응 요격 미사일 ASN-301을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연합뉴스 2017년 3월 7일>. 이 레이더 대응 요격 미사일은 사드와 같은 적군의 레이더에 나오는 전자 신호를 추적해 레이더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SN-301은 중국항공공업집단이 도입한 이스라엘 제 레이더 대응 미사일을 분석해 개발한 것으로 항속 거리만 220km에 달한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사드 대응 전략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드와 관련한 중국 당국의 대응으로 볼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한 미국 무기의 한국 배치가 한중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고 향후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간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자동적으로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 전략적 조치가 한중 경제관계에 미치는 피해도 심각하다. 한국의 대 중국 수출 비중은 전체의 24~25%로, 12% 수준인 미국 비중의 두 배가 넘는다. 미국의 군사적 이해에 따라 발생하는 중국의 전면적인 경제 보복은 한국에 큰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뉴스워커 2017년 12월 21일>. 이런 점에 비춰 한미군사동맹관계는, 필리핀과 일본이 미국과 맺은 군사동맹관계에 준하는 수준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불평등한 한미 군사관계 개선의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이 한미동맹관계의 약한 고리인 한국 경제를 겨냥한 보복 조치에 나섬에도 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한반도 또는 북한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한미 동맹이 굳건해야 한다는 판단, 불평등한 한미군사동맹관계를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우선한 결과로 보인다. 이 같은 판단으로 인해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 관계에서 좋게 말해 찰떡 공조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면 대미 종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물론 학계, 시민단체 등의 기이한 모습은 한결같다. 한미 간의 물샐틈없는 공조가 모두에게 득이 될 경우도 있지만 동북아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문제는 물론 인도적 대북 지원 등에서도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면전 시나리오에도 침묵하거나 귀를 막고 있다. 이런 비정상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실 없이 끝난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의 자주권과 한미공조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비핵화는 한국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과제라는 점에서 북미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능동적으로 기여할 공간의 확보가 절실하다. 중국의 군사, 정치적 변수가 비대해지면서 냉전시대 이래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온 한미동맹에 대한 다각적 검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21세기에 걸맞은 상태로 정상화되어야 한다.

필리핀이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개정을 요구한 근거가 한국이 당면한 고민과 유사하다는 점, 비핵화와 관련해 한국이 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정상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자주권의 보장과 실천을 전제로 한 국가 간의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생산적인 미래를 보장함은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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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전 한겨레 부국장, 전 한성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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