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포기한 건 '이란 핵협정'보다 강력한 北의 제안

[정욱식 칼럼] 결렬된 이유 어디에 있나

기대를 모았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말았다. 물론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북한은 협상에 대한 회의감을 피력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있다. 미국은 비록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진전이 있었다며 후속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뜻밖의 사태지만, 우리로서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미 양측의 요구와 희망사항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회담 결렬의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추측은 할 수 있지만, 1차적으로 양측의 발언과 언론 보도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의 가장 큰 이유로 거론한 것은 제재 문제였다. 그는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미국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 상당수를 비핵화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국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론의 비판과 달리 미국은 그 어떤 것도 북한에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언론의 평가를 크게 의식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2017년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국무부 당국자는 "북한이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사항을 살펴보면 이들 제재는 금속 제품과 원자재, 운송수단, 해산물, 석탄 수출품, 정제유 수입품, 원유 수입품 등 그 대상 범위가 넓다"면서, 북한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무기를 제외한 모든 제재를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이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영변 단지 일부의 폐쇄였다"며 리용호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발언을 반박했다. 북한이 "영변 핵단지 전체, 모든 플루토늄과 우라늄 시설 포함한 핵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영구 폐기"하는 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북한이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할 의사를 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2일 CNN은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당국자가 "북한은 영변의 모든 시설을 내줄 의지를 피력"했으며, "완전한 폐기를 공식 문서로 명시할 의사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협상팀이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고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평화적 핵 이용과 위성발사도 포기?

일단 북한의 제안은 파격적인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이렇게 볼 수 있다. 먼저 북한의 영변 핵시설, 그것도 전부를 폐기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거에는 일부 시설에 한정되었고 또한 폐기가 아니라 동결이나 불능화 수준에 그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제안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상에 우라늄 농축 시설 등 모든 시설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북한이 사실상 평화적 핵 이용 및 위성발사 권리까지 당분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는 점이다. 영변에는 실험용 경수로와 같은 전력 생산을 염두에 둔 시설들도 있다. 또한 리용호는 "핵 시험과 장거리 로케트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는데, 여기서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장거리 로케트'라는 표현을 쓴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정확한 북한의 진위를 파악해야겠지만, 위성 발사용 우주발사체 시험도 중단할 수 있다는 취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협상의 장애물이 되었던 평화적 핵 이용 문제 및 여러 차례 파국의 원인이 되었던 위성 발사 문제도 통 크게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통 큰 제재 완화를 받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 두 가지 사안은 이란 핵협정보다 강력한 합의를 원해온 트럼프 행정부에게 큰 선물이 될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이란 핵협정에는 완전한 우라늄 농축 포기 및 탄도미사일 활동 제한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었다.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언급한 "진전"이 바로 이 부분을 의미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제안을 정반대로 해석했다.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는 사실상 "전면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영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협상 레버리지(지렛대)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나도 북한의 경제적인 잠재력을 감안해 제재 완화를 원하지만, 북한이 추가적인 비핵화를 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영변 핵시설 폐기 이외의 추가적인 비핵화의 윤곽도 밝혔다. 트럼프는 추가적으로 우라늄 농축 시설을 발견했다며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한 폼페이오도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면서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등 무기 체계가 빠져 있어서 우리가 합의를 못 했다. 핵 목록 작성과 신고도 합의하지 못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리용호는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완전한 비핵화 VS 미국의 "안전 담보"

이뿐만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3일 자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미국 주도의 제재 해제와 북한의 모든 핵무기 및 핵물질, 그리고 핵시설을 교환하는 대타협을 제안했는데, 김정은이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의를 담은 문서를 김정은에게 보여줬다"며 이에 대해 "김정은은 한 번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두 나라의 신뢰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번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원했던 미국의 입장에 대해 북한은 시기상조였다는 입장을 보였다. "첫 공정", 즉 모든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상당한 수준의 제재 완화에 먼저 합의하고 이행하면 "앞으로 비핵화 과정은 더 빨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북한은 비핵화의 핵심적인 상응조치인 "안전 담보 문제"에 대해 미국의 준비가 덜 된 것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안전 담보"와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군사 분야의 조치"를 준비해야 핵무기 폐기 협상도 가능하다는 취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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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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