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재평가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개혁 과정'

이 글은 일본의 버블 붕괴 후 '문제'가 무엇인지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장기불황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 시민의 생활과 정부, 기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쫓았다. 결론적으로, 일본 시민들은 이전보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함께 공조(共助)하고 있고 기업은 단기적 수익보다 지속가능성에 천착하며 정부는 큰 틀에서의 개혁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본에게 '잃어버린 20년'은 민간참여를 확장하는 끊임없는 제도개혁의 과정이며 지난한 개혁이 진행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경제사회구조를 바꾸는 상법, 공공법인, 교육개혁 등 중요한 개혁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NPO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자율, 창의적인 협력, 공공활동이 최근 10년 만에 약 25배 성장할 정도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시민의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면서도 밀접한 분야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자치하는 공조(共助)사회. 이 비전은 민주당정권에서 '새로운 공공'이란 개념으로 전면으로 내세웠는데 현 아베정권에서도 표현이 달라졌을 뿐 일본의 경제사회 전망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필자)

버블 붕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일본 경제의 금융·부동산 버블붕괴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장기 디플레이션이 계속된 최근 20년을 일컫는다. 이미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잃어버린 30년'이란 표현도 쓰인다. 잘 알다시피 일본경제는 1980년대 후반에 경제성장의 최절정에 이르렀고 7,80년대에는 평생직장과 두터운 기업 복지가 보장된 '1억 중산층(=90% 중산층)' 사회를 구가했다.

버블은 1986년 무렵 발생했고 91년에 터졌다. 85년부터 89년 말까지 평균 주가가 3.3배로 증가하고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6대 도시의 상업지구지가가 4배로 급등하자 90년 대장성은 부동산 융자대출의 ‘총량규제’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것이 버블 붕괴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게 대략적인 이해다. 일본은행의 금리정책 오류, 시중은행의 예대경쟁, 미국의 압력은 버블 생성과 붕괴의 주요 원인이었고, 일본정부가 유효한 정책을 세울 수 없었던 핵심 배경은 안보동맹에 묶긴 미일관계 때문이었다.

심각한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85년 G5 정상회담이 열려 엔과 마르크를 절상하고 저달러를 유도하기로 합의했다(플라자 합의). 이후 1년 사이에 엔-달러 환율은 1달러 약 240엔에서 140엔, 급격한 엔고로 이행되어 일본제품의 수출가격이 높아졌다(이 틈새에 한국 제품은 수출가격경쟁력이 높아져서 80년대 높은 성장률을 견인했다). 급격한 엔고로 불황이 찾아오자 일본정부는 경기부양을 한다며 리조트 개발 등 공공사업을 남발했다. 또한 실적 저하에 압박을 느낀 기업들은 사업보다 자산투자에 열중하면서 버블로 치달았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은 84년 5월부터 미일 정부가 가동했던 ‘엔달러위원회’에서 이미 정책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자본거래 자유화, 예금금리 자유화와 같은 금융자유화조치가 80년대에 도입되었고 일본정부는 86년에 본격적으로 대미무역흑자 해소를 위한 일본의 시장개방정책을 세웠고(마에카와 리포트) 10년 동안 430조의 누적 공공사업 실시를 미국에게 약속했다. 당면한 버블을 방치하면서 일본은행은 과단하게 금리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바로 그 이유는 국제공조의 압력을 무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증권사, 은행의 파산은 97년 아시아외환위기 이후 최고조에 달해 99년 3월 일본정부는 15개 시중은행에 공적자금을 주입했고, 그 처리는 2003년 3월 리소나 은행에 공적자금을 주입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90%의 중산층'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의 경제, 사회는 최장기에 걸친 디플레이션, 정리해고, 취업빙하기 도래, 비정규직 증가, 격차사회, 높은 자살률, 고독사, 은둔형 외톨이 증가...현상이 유래 없이 늘어났다. 2011년 3월11일, '천년에 한번'이라는 대지진이 동북지방을 뒤흔들어 1만8434명이 행방불명·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 방사능 피해는 동일본 지역(도쿄를 포함, 18개 현, 인구 6600만여 명)으로 확산했다. 경제는 심리라고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의 연쇄는 일본 경제, 사회를 쇠락의 나선구조로 집어넣은 것처럼 보인다. 길게 보면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런데 2018년 일본에 온 해외관광객은 3119만여 명, 그 중 714만 명은 한국인이다. 최근엔 취업률이 좋아 한국에서 많은 청년들이 건너오고 있다.

필자의 질문은, 버블 붕괴 후 '문제'가 무엇인지에만 주목하지 말고 버블 붕괴 장기불황 시대를 살아가는 일본 시민의 생활과 정부, 기업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이다. 결론적으로, 일본 시민들은 이전보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함께 공조(共助)하고 있고 기업은 단기적 수익보다 지속가능성에 천착하며 정부는 큰 틀에서의 개혁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버블 붕괴 후 정부의 대응

버블 붕괴 후 일본경제가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진행된 원인을 결과적으로 정책 실패,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대응 때문이라고 분석하듯이, 정부나 민간 모두 단기적인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떨치지 못했다. 80년대에 일본경제가 너무 성공했기 때문이고 실질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버블 붕괴 초기 낙관론이 더 많았다. 정부가 경기대책 수단으로 동원한 재정은 1992년~2016년 동안 21회 약 354조에 이르는데 90년대 말까지는 주로 공공사업에 썼다.
정부의 경기대책이 불황을 탈출하는데 얼마나 유효했는지를 필자가 다루기 어려우나, 버블 붕괴 후 장기 집권했던 자민당을 제치고 정권교체가 두 번 이루어졌지만 단명에 그치고 자민당 집권이 계속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개인의 생활여건보다 나라 전체의 경기에 대한 인식 및 기대가 투표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 현 내각의 업적평가가 향후 기대로 이어져서 여당에게 투표하는 성향이 인정된다는 계량 연구가 있듯이 공급 중심의 정책이 국민들에게는 일정한 평가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버블 붕괴 후 장기적인 과제는 디플레이션 탈출과, 인구감소, 고령화사회에 대한 대비였다. 이 때 전환점이 되는 정부 방침이 '구조개혁을 위한 경제사회계획~활력 있는 경제·안심할 수 있는 생활'(1995.12, 무라야마 내각)이다. 일본의 경제, 사회를 "생산과 소비양식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변혁해야" 한다며, 기존의 성장패턴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경제사회로 전환을 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등장하는 분야 별 목표 '자립을 위한 사회적 지원시스템 구축'에서 "소자녀·고령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일상생활을 안심하고 풍요롭게 지낼 수 있기 위해 기초 소득 확보, 건강유지향상, 질병예방회복, 육아 및 돌봄 등, 사회적지원시스템 구축을 추구. 自助, 共助, 公助의 충실화"를 제기했다.

정부는 개인의 자조역량 향상 및 지원, 공정서비스와 적정가격의 민간서비스를 다양하게 조합하고, 시민의 자원봉사활동 및 NPO활동에 의한 서비스 제공 및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러한 제도로서 98년에 시민의 자치에 기반한 공조(共助+公助) 활동을 촉진하는 NPO법(1998.12.시행)이 시행되었다. 그 후 일본의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큰 기조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2차 아베 내각이 내세운 성장전략 '1억 총활약 사회 실현을 위한 새로운 세 개의 화살'(2015.9, 표1)도 결국 인구감소 고령화 시대에 활력경제·안심생활을 구축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다음 단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정부의 개혁 조치 및 정책 중에 개호보험제도(2000년), 지정관리자제도(2003년), 고향납세제도(2008년), 지역활성화협력대제도(2009년), 지역포괄돌봄체계(2012년) 등이 많이 알려졌는데 그보다 먼저 PFI법(민간자금 등을 통한 공공시설 정비법)이 1991년에 시행되어 2017년도 기준 666건/5조8279억 엔 이상의 민간자금이 지자체의 공공인프라 확충에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PFI의 한 방법으로 컨세션 방식이 최초로 간사이국제공항에 채용되고 후쿠오카국제공항이 채용 중이고, 2020년까지는 홋카이도 내 7개 공항이 모두 이 방식으로 전환된다. 국내에서 유명한 사가 현 다케오 시의 시립도서관도 컨세션으로 성공한 사례로, 일본정부는 인구 20만 이상의 지자체에서 생활인프라 및 공공시설 운영에 우선적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부작용도 있으나 국가가 독점했던 관료적인 공공사업을 민간이 자금, 경영, 아이디어에서 이용자중심으로 바꾸는 주요 수단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2000~2001년엔 상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2006년엔 민법을 포함한 공공법인 관련법 개정이 이루어져서 아직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비영리단체 인가제’가 철폐되었다. 필자가 볼 때 공공법인 법 개정은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를 형성할 때 매우 획기적인 개혁이다. 이어 "가장 어려운" 교육개혁이 이루어져 2020년 대학입시센터시험(수능에 해당)이 폐지되고 대학공통시험으로 대체된다. '2020 교육개혁'에서는 교육의 핵심이,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정답이 없는 질문을 탐구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으로 바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이용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력기전력소매 자유화(신전력사업)가 2016년 4월부터 시행되어 2018년 3월 말 약 622만 건이 신전력으로 교체, 전체전력소매시장의 10%를 넘었다(경제산업성 발표). 생협과 NPO들은 이 제도를 이용하여 재생에너지를 소비자가정에 직접 공급하고 있다. 2019년부터 가격변동과 재해로 인해 전년도 소득이 90%를 밑돌았을 때 90%까지를 보전해주는 생산자 수입보험제도가 도입되었다. 2019년 4월부터 변경 노동기준법이 시행되는데 가장 큰 변화는 비정규직 처우차별 철폐를 지향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도입이다.

일본에게 '잃어버린 20년'은 끊임없는 제도개혁의 과정이며 지난한 개혁이 서서히 진행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기업의 대응
플라자합의로 엔고로 급격히 이행하자 수출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기업 도산 건수와 부채총액은 90년 연 6,468건/1조9958억 엔에서 이듬해부터 1만여 건을 초과하여, 2000년엔 18,769건/23조8850억 엔으로 급증, 2014년에야 9,731건/1조8740억 엔 수준으로 떨어졌다.

버블 붕괴 후 수출기업의 대응은 단기적으론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급급했고 제조업은 수입산과 가격경쟁이 아니 되어 값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탈출하는 ‘공동화’ 현상이 속출했다. 인건비 억제를 겨냥한 비정규직 고용은 뚜렷하게 90년대 이후에 증가한다.

그럼에도 일본기업들은 기업으로서 정면 돌파를 꾀했는데, 바로 생산성 향상과 소비자의 잠재욕구에 부응한 부가가치 상품 개발, 프리미엄 서비스 제공으로의 전환이었다. 잘 알려진 후지필름의 고기능화장품, MUJI, 도요타의 친환경차 프리우스, TORAY의 탄소섬유, NISSHINBO의 브레이크패드, 올림푸스의 의료기기, 이마바리 타올, 아웃도어용품 스노우피크, 츠타야서점, 고품질 농축산물 등, 세계에서 점유율이 높은 기술개발 및 관리회계 등 원가절감 노하우가 발전했다.

글로벌개방체제 하의 공업국에서는 공급이 수요보다 앞선다. 소비자의 가성비 추구 성향에 가장 만족스러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의 혁신적인 도전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일본 최대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이토요카도그룹의 스즈키 회장은 “팔리지 않으니 가격인하를 해서 디플레이션이 계속되는 게 아니라, 팔릴만한 것을 기업이 만들지 않으니 팔리지 않는 게 아닌가?”고 반문하면서 업태와 상품개발을 전면 개편했다. 롯데리아에서 100엔에 팔리는 드립커피를 편의점에서 제공 못할 이유가 없다고 편의점용 드립커피 판매 기계와 노하우를 개발하여 출시, 편의점의 드림커피는 공전의 히트상품이 되어 모든 편의점으로 확산했다.

중소기업의 체질도 상당히 바뀌었다. 1995년 중소기업창조활동촉진법이 제정되었는데 그 특징은 과거와 달리 지역, 업종에 따라 보호 정책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시장경쟁 촉진하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축으로 삼아 산업구조전환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이에 신규창업, 새로운 분야 개척, 경영혁신 등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어 중소기업기본법을 개정하여(1999년) 중소기업의 존재를 보호·적정화 대상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하여 그 역할을 충분히 발휘시킬 대상'으로 위치 지으며 그 역할을 신산업 창출, 취업기회 증대, 시장경쟁 촉진, 지역경제 활성화라 명문화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에도 힘입어 2000년 이후 6차 산업, 이종별 연계 등이 촉진되었다. 히가시오사카의 중소기업 집적지에서는 ‘우주개발협동조합SOHLA’를 만들어 인공위성의 부품을 생산한다.

일본 '중소기업백서2017'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3년 생존율은 88.1%, 5년 생존율은 81.7%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보다 높다.
가계와 시민사회의 대응

GDP대비 가계소비지출비중 국제비교(2014년)를 보면 미국이 66.5%로 가장 높고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일본은 59.2%(한국 48.0%)이다. 버블 붕괴 후 장기디플레이션의 상태였지만 실질가계지출총액은 2007년 1분기 279조6501억 엔, 2011년 1분기 3.11 동북지방 대재해 직후에 275조2761억 엔으로 저점을 찍고 2018년 4분기 293조3475억 엔이었다. 2010년 인구가 1억2806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증가했다고 봐도 된다. 가계지출은 비교적 견실하고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숙려하는 합리적인 소비로 ‘소비의 질’이 바뀌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2015년 소비자청이 실시한 소비자조사결과를 보면 가격(92.9%), 기능(89.8%), 안전성(83.8%)을 의식하여 상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다수이며 기업의 경영이념이나 사회공헌을 의식하는 소비자도 19.0%이었다 (「소비자의식기본조사 2015년도」) 더군다나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은 2006년 1인당 일 1,115g에서 2016년엔 925g으로 감소, 총 배출량도 연간 5,202만 톤에서 4,317만 톤으로 감소했다. 가구 수가 늘어나는데도 환경배려형 소비와 실천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장기불황과 특히 리먼 쇼크 이후 임금소득 감소에도 소비지출을 지탱했던 배경에는 고령자연금 등 사회보장급부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고 일본정부는 분석한다. <표2>를 보면 이 분석은 설득력 있다.


고속 성장을 멈춘 사회는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변화를 요구한다. 90년대 말 초등학교에서 왕따, 폭력이 왕왕 발생하는 ‘학교붕괴’ 현상이 유행했다. 연간 자살자 수는 98년에 3만 명을 넘어서서 2012년까지 좀처럼 감소하지 않았다. 공적 부조보다 기업복지에 의존했던 타격은 매우 컸다. 사회민주주의정당이 극소수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정치지형 때문에 대담한 사회보장 정책으로 나라 전체로서는 시민의 양극화, 빈곤,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2009년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했으나 재일미군기지의 일본 외 이전, 아시아외교 강화(사실상 중국 중시), 미국과의 대등·긴밀 관계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하토야마 총리는 미국의 방해로 266일 만에 사임했다.

이처럼 중앙정부가 개인의 생활을 직접 지원하는 공적 부조가 제한적인 가운데 시민들 스스로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自助와 共助에 적극 나서거나 물신주의적 가치관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많아졌고 이런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직이 NPO였다. '박원순변호사의 일본시민사회기행'(2001년)이 NPO법 시행 직후의 생생한 견문록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8년 12월 말 기준으로 5만1671개의 NPO가 등기되어 있으며 이들은 지역재생, 환경, 국제협력, 복지, 교육,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 사회적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기관과 연계하여 활동한다. 지역화폐 실천도 99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NPO뿐만 아니라 상점가/상공회의소, 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등 다양해졌다. 2008년 말 시점에 일본 전국에서 259종류의 지역화폐가 쓰이고 있었다.

최근 화제가 되는 건 ‘어린이식당’이다. 맞벌이나 빈곤으로 제 때 제대된 식사를 못하는 어린이들의 곤궁함을 지역에서 함께 해결할 수 없을까 하고, 지역주민의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어린이식당이 2012년 생겨나 2018년 3월엔 전국 2300곳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라면 사회적경제의 모습으로 인지될 듯하다.

일본에는 사회적경제는 아직 학술적인 개념에 머물고 커뮤니티 비즈니스, 소셜 비즈니스라는 개념이 실천, 정책 현장에서는 더 많이 쓰이는데 내각부에서 2015년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비영리법인을 포함하여 소셜 섹터의 기업 수는 20만 5000여 사, 유급직원 수는 577만 6000명, 이들 기업의 부가가치액은 16조 엔으로 GDP대비 3.3%를 차지했다. 10년 사이에 약 25배 성장했다고도 본다.

시민의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면서도 밀접한 분야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자치하는 공조(共助)사회. 이 비전은 민주당정권에서 ‘새로운 공공’이란 개념으로 전면으로 내세웠는데 현 아베정권에서도 표현이 달라졌을 뿐 일본의 경제사회 전망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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