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재분배적일까, 역진적일까?

[오건호의 연금개혁 완전정복] ⑦ 연금 진단, '계층적 시각'이 필요하다

<1회> 문재인 정부 연금안 평가 : 재정 개혁 방기
<2회> 국민연금 재정 계산 : 70년 계산 믿을 수 없다?
<3회> 국민연금의 특징 : 미래 재정 불안정
<4회> 국민연금의 재정 목표 : 재정 균형
<5회> 외국에서 연금 재정이 안정적인 이유
<6회> 국민연금의 부과방식 전환, 가능한가?
<7회> 국민연금의 역설 : 재분배 vs. 역진성
<8회> 기초연금의 강점 : 사각지대 없는 노인 기본소득
<9회> 퇴직연금의 잠재성 : 중상위계층 노후 소득 보장
<10회> 연금 개혁 대안 : 한국형 다층 연금 체계
우리나라에서 공적연금 강화를 이야기할 때 우선 등장하는 제안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그렇고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공적연금 강화국민행동'도 소득대체율 50%를 주장한다. 정의당 역시 소득대체율 50%를 지난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소득대체율 인상은 대체로 진보적, 친복지 단체의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글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주장이 과연 진보적일까, 복지 원리에 부합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진보적'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계층적 시각'을 견지하느냐, 복지 원리는 '재분배' 효과를 발휘하느냐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이기에 소득대체율 인상은 당연히 진보적이고 복지 원리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여긴다. 그래서 아마 위 질문이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일단 기존 생각을 잠시 괄호 안에 넣어두고 이 글을 읽기 바란다.
서구 연금과 다른 한국 국민연금의 특수성 : 수지불균형

보통 국민연금이 지닌 과제로 급여 적절성과 지속가능성을 꼽는다. 적절성은 노후를 보내기에 미약한 국민연금액, 그리고 지속가능성은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 불안정을 의미한다. 이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급여 적절성을 개선하자는 제안이다.

지난 3회 글에서 확인했듯이(☞관련 기사 : "OECD에서 가장 재정 불균형 큰 국민연금"), <표 1>의 국민연금의 재정 수지 구조를 보면 평균 소득자의 수익비가 2.6배에 달한다(임금상승률 할인 기준). 수익비는 일부에서 공적연금을 '수익'으로 접근한다고 비판하지만, 현재 국민연금 재정의 수지 구조를 가입자를 기준으로 진단하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가입자 전체 혹은 계층별로 현재의 수지구조가 미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용어가 불편하다면 수익비 대신 '기여급여배율'로 불러도 된다).

ⓒ프레시안(이한나)

서구 나라는 대체로 국민연금에서 수지 균형을 확보한 상태이다. 3회 글에서 보았듯이, OECD 18개국을 보면 현재 가입자는 지금 평균 소득의 17.9%를 연금보험료로 내고 미래 받을 소득대체율은 평균 47.3%이다(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합산).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40%에 가까운 소득대체율을 받으면서 내는 보험료율은 9%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의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가 서구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대체로 서구 나라 국민연금들은 이미 수지 균형에 근접해 있다. 이후 인구 고령화, 경제 상황 변화에 따른 미래 재정 불안에 대응하면 된다. 이를 위해 공적연금의 재정 상태를 진단하는 개념으로 균형비(미래 지급해야할 연금액과 공적연금이 지닌 자산의 비율: 스웨덴), 지속가능계수(급여 지출과 보험료 수입의 균형 수준) 등을 설정하고 각각 '1'에 도달하도록 제도 개혁을 논의한다.

반면 한국은 미래 인구, 경제 변수도 불리한 여건에 있지만, 동시에 현재 국민연금 제도 내부의 수지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서구 다른 연금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국 국민연금의 특성이다. 한국에서 국민연금의 개혁안을 마련하기가 한층 어려운 이유이다.

국민연금의 수익비, 소득대체율은 누진적이지만...

그렇다면 현행 국민연금에서 어느 계층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을까? 위 <표 1>을 보면, 평균 소득자의 수익비는 2.6배이지만 하위계층은 더 높고 상위계층일수록 낮다. 국민연금 급여산식에 균등 급여가 존재하는 덕택에 하위계층일수록 수익비가 높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도 누진적이다. 보통 2028년 이후 국민연금 모델을 40%라고 소개하지만, <표 2>에서 보듯이 하위계층일수록 대체율이 높아 50만 원 이하 소득자는 100%에 달하고 최고소득자는 30%에 머문다.

ⓒ프레시안(이한나)
이렇게 국민연금은 수익비, 소득대체율이 계층별로 누진구조를 지니기에, 아래 그림처럼 국민연금공단은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보통 사회복지학계가 국민연금을 재분배 제도라고 설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단에 따르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도 진보적, 친복지 지향에 부합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국민연금의 급여 적절성을 높이면서 재분배까지 증진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 국민연금공단(2018), "국민연금 복습하기: 국민연금의 사회보험으로서의 특성은?" (국민연금공단 온라인 홍보물 2018.10)

정말 그럴까? 국민연금의 계층별 혜택을 평가할 때 수익비, 소득대체율 수치에서 생길 수 있는 착시에 유의해야 한다. 수익비, 소득대체율 모두 가입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도출된 개념이다. 즉 가입자의 소득이 작으면 이와 연동된 급여액도 작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300만 원 소득자의 수익비가 2.3배라면 이 사람은 자신의 낸 보험료보다 390만 원(1.3배)을 더 얻지만 100만 원 소득자는 수익비가 4.2배라도 얻는 혜택은 320만 원(3.2배)으로 오히려 적다.

국민연금 순혜택, 장기 가입하고 고소득 계층일수록 많다

소득계층별로 국민연금 혜택을 평가하기 위해 '순혜택'을 분석해 보자. 순혜택은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 총액 대비 받는 연금 총액의 차이'로서 '순이전액'으로도 불린다. 이는 국민연금에서 가입자가 얻는 혜택의 절대액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표 3>을 보면, 가입기간이 동일해도 모든 소득분위에서 고소득자일수록 순혜택이 조금 많다. 예를 들어, 가입기간 20년일 경우 100만 원 소득자의 순혜택은 6779만 원이고, 상한소득자의 순혜택은 8887만 원이다.

ⓒ프레시안(이한나)
더 주목할 점은 가입 기간의 차이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격차 구조에서 고용이 안정될수록 소득도 높고 가입기간도 긴 경향을 지닌다. 이에 가입기간을 감안하면 순혜택의 차이가 상당하다. 만약 100만 원 소득자가 20년 가입했다면 순혜택은 6779만 원이지만, 상한소득자가 30년 가입하면 순혜택은 1억 3654만 원으로 순혜택 차이가 두 배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노후복지제도이다. 복지제도라면 젊었을 때 발생한 경제적 격차를 노인이 되었을 때 줄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연금은 고소득, 장기 가입자일수록 순혜택을 더 제공하기에 오히려 노후에 격차가 커진다. 공적연금이 소득 격차를 늘리는 '국민연금의 역설'이다.

일부에서는 노령 '위험'을 사회적으로 공동 대응하는 사회보험에서 순혜택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아팠던 기간이 많거나 실업 기간이 많다고 해서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의 순혜택을 따지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오래 산다고 해서 국민연금의 순혜택을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이 고소득자에 유리? : 국민연금 역진성 논란 바로 보기" 5쪽).

논점을 혼동한 비판이다. 순혜택은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분석되므로 가입자 개인의 수명 위험을 평가하는 개념이 아니다. 순혜택은 제도의 수지 구조를 파악해 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진단하는 하나의 지표이다. 이를 통해 제도 전체(평균소득자)의 수지 구조와 계층간 재분배 구조까지 볼 수 있다. 미래 지속가능성의 도전에 직면한, 더구나 노동시장의 격차로 제도의 재분배성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국민연금에는 필요한 평가 지표이다.

국민연금 순혜택이 역진적인 이유 : 낮은 보험료율과 가입기간 차이

서구 국민연금은 대부분 연금급여가 가입자 소득과 비례하는 완전 비례연금이다. 반면 한국의 국민연금은 급여산식에 균등급여가 존재해 소득재분배 제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급여의 순혜택에서 역진성이 존재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낮은 보험료율과 가입기간 차이 때문이다. 국민연금 40% 소득대체율에 부응하는 수지 균형 필요 보험료율은 18% 이상이어야 하지만 현재 9%이다. 보험료율이 낮을수록 필요 보험료율에 미치지 못하는 보험료 부족액은 고소득자일수록 크다. 수익비가 2배를 상회하는 현행 국민연금 수지구조에서 가입기간이 같더라도 고소득자일수록 순혜택이 조금 더 많은 이유이다.

더 중요한 원인은 가입기간 차이이다. 오래 가입할수록 순혜택의 기간도 늘어나기에 순혜택의 총액도 커진다. 물론 가입기간은 국민연금의 제도적 요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에서 가입기간이 소득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연금 효과를 분석하고 향후 개혁안을 설계할 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연합뉴스

정부의 소득대체율 인상안, 역진성 그대로 방치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면 계층별로 순혜택과 연금액에서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노인 빈곤에 노출된 하위계층에게 얼마나 효과적일까?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 중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 방안을 살펴보자.

우선 순혜택의 변화를 보자. 여기서는 보험료율이 관건이다. 순혜택의 전체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일차적 요인은 보험료율이다. 보험료율을 올리면 전체 계층에서 순혜택이 줄어들 것이다(전체 급여가 줄지는 않는다. 국민연금은 급여와 보험료가 연계되지 않는 확정급여형 제도이다).

정부안에서 4%포인트의 보험료율 인상은 대략 소득대체율 10% 포인트 인상을 충당하려는 몫이다(엄밀히 계산하면, 소득대체율 10%에 부응하는 필요보험료율은 4.5%를 상회한다). 즉 현행 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9% 체제에서 존재하는 수지불균형 문제를 방치하기에 미리 세대에게 넘어가는 부담도 그대로 남는다. 현행 국민연금의 역진적 순혜택 구조가 지속될 것이다.

게다가 정부안에서 소득대체율 50%는 2021년에 바로 시행하지만 보험료율은 2021년부터 5년마다 1% 올려 2036년에야 13%에 도달한다. 보험료율 인상이 지체되는 기간에는 국민연금 수지불균형은 심화되고 순혜택도 지금보다 커질 것이다. 그만큼 후세대에 의존하는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

또한 노동시장 여건이 빠르게 개선되기 어려우므로 소득별 가입기간의 차이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안대로 시행되면, 고소득, 장기 가입자일수록 국민연금에서 얻는 순혜택이 더 많다. 국민연금에서 순혜택의 역진성이 일정 기간 심화되는 기조에서 반복될 것이다.

소득대체율 50%에서도 하위계층 인상액은 적어

소득대체율 50%가 하위계층의 연금액을 얼마나 증가시킬까? 보통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명분은 지금 형편이 어려운 청년, 장년들이 노후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인상은 정작 노후 빈곤에 취약한 하위계층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민연금액이 소득, 가입기간과 연계해 정해지기에 인상액 역시 계층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노후 소득 보장의 목표로 최저 노후 생활 보장(National Minimum)을 제시했다. 이어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 패널조사'에서 65세 노인의 최소생활비가 95만 원으로 보고된 것을 토대로 공적 노후연금 목표 약 100만 원(국민연금 + 기초연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평균 소득자(250만 원, 25년 가입)의 국민연금액이 62.5만 원에서 78.1만 원으로 증가하므로 기초연금을 합해 97.1만 원에 도달한다.

그런데 정부안에서는 최저와 평균 개념이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노후 소득 보장 목표로 '최저' 기준을 제시해 놓고서는 정작 사례를 설명할 때는 평균 소득자를 선택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정부는 공적연금 100만 원을 홍보하지만, 실제 평균 소득자 이하에겐 과장 홍보를 하는 셈이다.

ⓒ프레시안(이한나)

<표 4>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했을 때 소득별, 가입기간별 연금액과 증가액을 보여준다. 평균 소득자가 25년 가입할 경우 국민연금은 정부안대로 15.6만 원이 오른다. 하지만 100만 원 소득자는 25년 가입해도 인상액이 10.9만 원에 불과하고 아무래도 가입 기간이 평균 소득자보다 짧을 것이므로 15년을 적용하면 6.5만 원 올라 국민연금액이 32.8만 원에 머문다. 여기에 기초연금 30만 원을 합해도 공적연금 총액은 62.8만 원에 불과하다.

결국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은 현행 국민연금의 수지 불균형을 심화시키거나 방치하면서도 정작 하위계층 노인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공적연금 100만 원은 하위계층 노인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뿐이다. 공적 노후 소득 보장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의 시야를 넘어서 다층 연금 체계로 넓혀야 연금 개혁 방안을 찾을 수 있다(최종 10회에서 개혁안을 다룬다).

국민연금 진단에서 '계층적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현행 국민연금이 지닌 역진성을 살펴보았다. 보통 사람들이 지닌 생각과 다른 내용이다. 특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진보, 친복지 단체에게 불편한 분석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의 역진성을 이야기하면 민간보험 관점에서 '소득계층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반사회연대적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국민연금 역진성 주장은 국민연금을 철저히 민간보험 관점에서 평가하고, 기존의 '세대 간 갈등'에 더해 '소득계층 간 갈등'을 부추겨,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 및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무책임하고 반사회연대적인 주장에 불과함."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위 자료, 14쪽)

진보는 무엇일까?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계층 간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자는 시각 아닌가? 문제가 발견되면 회피하지 않기에 사회적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갈등주의 인식론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국민연금이 지닌 '한국적 상황'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 지난 6회 글에서 서구에서 아름다운 연대를 상징하는 '부과 방식' 연금제도가 한국의 국민연금 논의에서는 거꾸로 현재 세대의 책임 회피 논리로 변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국민연금, 부과방식으로 가면 된다고요?)

비슷한 일이 국민연금의 평가에서도 발생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주장도 애초 취지와 달리 계층 간 노후소득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어느 영역이든, 문제를 해결하는 첫 출발은 '있는 그대로' 현실을 진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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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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