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영리화 추진, '그들'의 책임을 묻는다

[서리풀 논평] 규제 샌드박스, '적폐'보다 나은 게 뭔가?

이 정부가 무슨 심사로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촛불 정부'니 '적폐 청산'이니 하는 말을 앞세우며, 과거 보수 정부와 다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정권 차원의 일이 아니란 말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과 의료에 관해서는 그 '적폐'보다 더 한심한 일이 벌어지니 하는 소리다. 규제 '샌드박스'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제를 앞다투어 풀고, 그 말썽 많은 원격의료도 강행할 태세를 갖추었다. 제주 영리병원도 남의 일처럼, 제주도가 다 알아서 할 일이라는 듯,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의료 영리화를 또 다루자니 이제 피로감까지 느낄 정도지만, 상황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다음 경과는 언론 보도라 그나마 부드럽게 쓴 것이리라. 좀 길더라도 꼼꼼하게 봐주시기 부탁드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유전자 검사항목 확대 및 건강증진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규제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 실증특례 및 임시허가를 통해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규제완화제도를 말한다. () 여기에 이번 규제 샌드박스 대상선정에 있어 복지부는 비의료기관에게 DTC유전자 검사를 질병유전자 검사(13개 항목 : 만성질환 6개, 호발암 5개, 노인성질환 2개)로까지 확대 허용하는 한편, 질병 예방을 위한 건강 및 식단 관리 등 건강증진 서비스도 포함시켰다." (관련 기사 : "유전자검사 규제 완화? 진단검사업체만 좋으라고?")


쉽게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문적 내용이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논평의 독자에게는, 다른 것은 몰라도 '유전자'와 '소비자 직접의뢰'라는 말은 관심을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린다. 둘 다 의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영리화, 시장화, 상업화가 핵심이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교과서 노릇을 하고 남는다.

"시범사업 공고를 불과 사흘 앞둔 11일, 그동안 업계를 대표해 규제 완화 목소리를 내 왔던 ㈜마크로젠이 신청한 연구사업이 산업부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받게 됐다. () 복지부 주도 시범사업 참여를 준비하고 있던 기업들로서는 '투 트랙 규제완화'에 대한 혼선을 호소한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총 5개 업체가 산업부에 실증특례를 신청했지만 1개 업체만 통과해 남은 기업들은 복지부 시범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며 '설사 산업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연구 기회를 얻어도 실제 사업을 하려면 복지부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규제 샌드박스 잡음 속에 출발…유전자 검사 완화, 부처간 엇박자)


"정부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사진) 등에 실증특례·임시허가를 주기로 했다. () 위원회가 이날 실증특례·임시허가를 부여하기로 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는 휴이노와 고려대 안암병원이 신청했다. () 지금까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측정한 환자 상태에 따라 의사가 내원을 안내하거나 타 의료기관 방문을 안내하는 행위는 의료법상 근거가 분명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었다."(관련 기사 :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이용한 의사-환자 원격모니터링 규제 샌드박스 승인)


정부의 의료 영리화 기조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우리 의견을 내놓은 것이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관련 기사 : 영리 의료 또는 의료 영리화 시도를 멈추라<1>). 건강과 보건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산업과 경제도 말이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이에 대해 그 어떤 합리적 반론도 나온 적이 없다.


이해할 만한 유일한 동기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책임 전가 아니면 '한번 해보고 판단하자'는 사행심, 또는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한 오래된 '믿음'의 경제정책, 모두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근거도 명분도 없는데, '청산'과 '새로움'을 앞세웠던 이 정부는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가? 무엇이 이들을 눈멀게 하고 있을까?

다시 의료 영리화의 구조와 허구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누가 지금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지를 살피려 한다. 구조도 구조지만, 당장은 현실에 개입하는 '미시적' 원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미시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현실을 당장 다르게 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길고 깊게는 결국 사람이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렇다.

단언하지만, 지금 건강과 보건은 다시 (구식 모델의) 경제성장과 규제 완화에 포획되었다. 모든 정부 부처가 나서서 묵은 정책과 사업을 내놓고 다시 경쟁을 벌인다. 그럼, 이제 와 다시 더 '근본적'이고 '과감한' 조치라고 치장하면서 옛것을 되살려야 하는 정부 부처는 도대체 왜?

정부 부처의 행동은 생소하지 않다. 문제는 그 상위, 즉 청와대와 그 구성원이다. 각 정부 부처야말로 관료적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중이고, 청와대가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다. 사실, 이와 같은 정책 주도의 구조는 무슨 비밀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정부 부처가 말을 듣느니 저항하니 하지만, 청와대는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럼 청와대가 이러는 이유. 먼저, 오해하지 마시라. 그들은 영혼 없는 3인칭 구조와 체제가 아니라, 개인과 집단으로 이루어진 1인칭(나), 2인칭(너)의 '세력'이다. 영혼이 있으니, 스스로 믿고 판단하며 의도한다. 철학과 지향뿐 아니라, 실력과 이해관계도 판단과 행동을 결정한다.

본래 생각대로, 하던 대로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그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 힘을 이렇게 쓰는 것은 따지자면 그들 탓이 아니니, 뭐라 그러겠는가. 그들을 선출하고 우리를 대표하게 했으니, 우리 탓이다. 우리가 정치와 정권의 토대를 바꿀 수밖에 없다.

혹은 일부는 "내 생각과는 다르다"며 억울하다 할 것이다. 모든 자기 합리화는 상황을 탓하기 쉬우니, 왜 이런저런 핑계가 없겠는가. 작게는 성장, 자영자, 일자리, 지역 경제가 동원될 수 있고, 힘의 구도로는 경제관료와 경제 부처, 정치권, 지역민의 여론도 전통적(?) 변명거리다.

그중에서도 구조와 체제, 또는 '역사'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가장 나쁜 것, 이는 철학의 빈곤함 또는 무능함을 드러낼 뿐이다. 적어도 제대로 된 정치라면 역사적 '상황론'을 말해서는 안 된다. 모르고 집권했든, 미리 알았지만 중간에 어긋났든, 실패는 마찬가지다.

특히 현실과 개혁의 긴장에 대해서는,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전직 대통령의 말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사태에서 배운 바가 없는 듯 보인다. 미리 알아야 했고 지금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조건에 순응하는 것은 관료체제의 기본 임무, 정치와 정권이 할 일은 조건을 돌파하여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상식에 해당할 말을 보태야 하겠다. 체제와 구조가 중요하되 이를 핑계 삼는 것은 그 모든 것의 빈곤과 무능을 표현할 뿐이다. 딱 한 마디만 더. 구조는 조건이자 환경으로 개인(주체)을 규정하지만, 또한 그 주체는 구조를 변형할 힘을 지닌다.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혹시 정부 부처, 관료체제에도 어떤 세력이 있다면, 마찬가지다. 구조, 그리고 조건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주체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 핑계 이상이라 할 수 없다. 조건과 환경을 넘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 최소한 틈과 흠을 낼 수 있는 것이 주체의 포기할 수 없는 역할이자 능력이다.

모두가 '유체이탈'로 제삼자에게 의료 영리화의 책임을 미룰 때, 우리는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있는 세력, 사람, 주체를 적시한다. 이 역사적 후퇴에 대해 바로 당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철학의 빈곤, 실력 부족, 정치적 무능, 그 무엇도 책임을 면제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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