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법무부 단속 중 추락사망 이주노동자, 국가 책임"

직권조사 결과 "인도적 책임 다하도록 규정 개정해야"

지난해 여름 법무부 단속 중 추락해 숨진 이주노동자의 사망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인권위는 법무부에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13일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4일 실시한 직권조사 결과, 지난해 여름 사망한 이주노동자 딴저테이(25) 씨 단속 과정에서 단속반원들이 안전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고, 사고 이후에도 어떠한 구조행위를 하지 않아 인도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권위 "외국인 노동자 토끼몰이식 단속 안 돼"

이에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당시 사건 책임자를 징계조치하고 △출입국관리법 제51조의 '긴급보호서' 사용을 최소화하며 △원칙적으로 '보호명령서'를 발부받아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사고 위험이 예상될 경우 즉시 단속을 중지하고 △사고 발생 시 인명 구조를 우선적으로 취하도록 세부 단속지침을 마련하며 △단속 시행 전 위험요소를 고려한 구체적 안전대책을 세우도록 관리 감독할 것을 주문했다.

또 △주거권자의 동의 절차 미준수, 과도한 물리력 행사, 수갑 장시간 사용 등 적법절차 위반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공무원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단속과정은 의무적으로 영상녹화하고 이를 보존할 것을 당부했다.

단속 업무 담당 출입국관리 공무원에게 정기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도 요구했다. 또 인권 침해 사례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미등록체류자 단속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실상의 체포와 연행이 형사사법 절차에 따라 이뤄지도록 감독 방안을 마련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대한변호사협회 법률구조재단이사장에게 피해자와 유가족 권리 구제를 위한 법률 구조를 요청했다.

딴저테이 씨는 왜 죽었나

딴저테이 씨 사망 소식은 지난해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국내에도 알려진 바 있다.

미얀마에서 온 딴저테이 씨는 지난해 8월 22일 낮 12시 7분~8분경 김포의 한 건설현장에서 단속반을 피하려다 지상 7.5m 지점에서 추락했다. 딴저테이 씨는 오후 1시 23분경 병원에 호송됐으나 회생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그 해 9월 8일 사망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가 한국에 입국해 딴저테이 씨의 장기 기증을 결정, 한국인 4명의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당시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은 건설현장 불법 취업 외국인 단속 요청 민원을 받고 출동해 사건 현장을 단속해 이 사건의 주 책임자로 지목됐다.

사건 발생 후 인권위 조사에서 단속반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단속반원을 피해 도주를 시도하고, 식판을 던지는 등 저항했다"며 "일부 외국인에게 수갑을 채운 사실은 있으나, 신원확인에 응한 외국인에게는 강압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딴저테이 씨의 경우 "도주를 시도하다 창문 쪽에 배치된 단속반원의 제지를 뚫고 창문과 공사장 사이 난간에 착지했고, 도주를 위해 또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려다 추락했다"며 그의 추락 과정에 단속반원이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항변했다.

단속반원들은 딴저테이 씨 추락을 확인한 후 즉시 119를 불렀고, 곧바로 단속을 종료하고 긴급보호한 외국인 33명을 감시감독하기 위해 일부 반원이 식당 내부에 남았고, 나머지 단속반원은 모두 딴저테이 씨 상황을 살피며 119 구조대를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목격한 딴저테이 씨 지인들의 주장은 달랐다.

해당 사건을 목격하고 딴저테이 씨 가족에게 해당 사실을 연락하는 일을 도운 외국인 노동자 F씨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는데 단속반원 7명이 들어와 큰 소리로 '야 앉아, 야 앉아'라고 욕하며 단속을 시작했다"며 "단속반원들은 119가 온 후에도 단속을 계속했고, 미등록체류자가 아닌 외국인도 전부 일단 제압했다. 단속반원들이 신원확인 요구를 하지도 않고 제압하려고 하자 중국인으로 보인 외국인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저항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딴저테이 씨 추락 이후에도 단속반원들이 단속을 계속했다는 증언은 또 있다. 딴저테이 씨 추락 지점에 처음 도착한 현장관계자 K씨는 "현장에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추락지점으로 내려갔는데, 당시 사람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단속반원이나 직원들에게 전파되는 상황이었다"며 "단속반원들은 계속 단속을 실시했고, 수갑을 채우고 욕했다. 나와 현장 직원들이 단속반원들의 행동에 매우 화가 나서 당시에도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단속반원들은 '정당한 공무집행 중'이라며 피해자 구조에 어떤 협조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단속반원들이 딴저테이 씨 구조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 L씨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L씨는 "피해자 구조를 위해 현장 관계자들에게 크레인 동원을 요청했고, 현장관계자들이 이에 협조했다"며 "구조를 도운 사람 중 출입국관리 공무원이 없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증언했다.

현장 소장이었던 I씨 역시 "현장사무실에 있다가 다른 직원의 연락을 받고 추락 지점을 볼 수 있는 식당 앞으로 갔다"며 "단속반원들이 피해자 추락 사실을 알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구급차에 실려 갈 때까지 사고 현장에 내려가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단속 과정에서 단속반원이 등록 외국인에게도 강압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또 있다. 등록 외국인 노동자이자 사건 목격자인 G씨는 "갑자기 덩치 큰 남자가 오더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중국 출신'이라고 답하자 다짜고자 나를 제압해 수갑을 채웠다"며 "단속반원들은 자기 신분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모든 사람을 일단 제압했다. 식당 안에는 한국인도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제압했다"고 진술했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인 H씨 역시 "처음 '우당탕탕' 소리가 들려 '외국인들이 패싸움이라도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덩치 큰 한 사람이 다짜고짜 손목을 세게 비틀었고, 자기 동료로 보인 자에게 '수갑 채워'라고 말했다"며 "'왜 이러냐'고 묻자 '뭐야, 뭐야 한국인?'하고 놀라며 내 손을 놓았다"고 증언했다.

H씨는 "단속반원들이 사람들을 무작위로 제압하며 수갑을 채웠고, 그 과정에서 단속 및 체포의 취지에 관한 어떤 설명도 없었다"며 "한국인 노동자 김모 씨가 수갑을 차고 서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앞서 나온 증언과 관련 영상 기록 등에 확인된 사실 외에도 인권 침해 사례는 더 확인됐다. 당시 단속에서 단속반원들은 33명의 외국인을 긴급보호했고, 단속된 외국인들은 오후 5시 이후까지 수갑을 착용한 채 소형버스 2대에서 대기하다 이후 출국조치됐다.

단속된 외국인들은 버스에서 수갑을 찬 상태로 뒤늦게 긴급보호서와 미란다원칙 고지 확인서에 서명했다.

인권위 "조사권 남용 그만해야"

인권위는 "단속반원들이 피해자 추락을 인지한 즉시 119에 신고했고, 추락의 특성 상 구조 전문가가 아닌 단속반원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단속반원의 응급조치 미흡이 피해자 사망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단속반원들이 내부적으로 해당 사실을 보고하는 등의 조치를 했고, 미얀마 대사관에 연락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인권위는 그러나 "단속반원 전원이 피해자 추락을 인지하고도 보고를 위해 사진을 채증하거나 단속을 계속했을 뿐, 피해자 추락 지점으로 내려가 추락한 피해자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단속반원들이 공무수행 중 '다른 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평가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단속과정에서 확인된 전반적인 인권 침해 사례에 관해서 인권위는 "출입국관리법 제82조, 출입국사범 단속과정의 적법절차 및 인권보호 준칙 제7조는 단속 시 주거권자 및 관계자에게 증표를 제시해야 하고,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조사목적을 설명한 후 동의를 얻어야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단속반원은 동의 절차를 준수하지 않아 중대한 절차위반"을 범했다고 밝혔다.

또 "현행 단속방식은 '외국인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명령서를 통한 보호를 완전히 배제해,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어 운영되고 있다"며 이 같은 사례가 된 이번 사건을 두고 '조사권 남용'이라고 평가했다.

단속반원들이 현장 노동자의 국적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수갑을 채우는 등 물리력을 행사한 데 대해 인권위는 "이러한 행위는 강제력 사용을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규정한 출입국관리법 제56조의4 등 관련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해당 사건 직권조사에서 여러 증언을 확인하는 한편 현장조사와 증거자료 조사 등을 통해 단속반원들이 사건 당시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했음을 확인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는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단속과정에서 발생한 미등록체류자 사상 사고'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딴저테이 씨 사례를 제외하고 단속 과정에서 총 9명이 사망했고, 77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3년 이후 단속반원의 사상사고는 사망자 1명, 부상자 73명으로 파악됐다.

단속반원까지 사상사고를 입는 이 같은 강압적 단속의 원인으로 사실상의 '실적 할당제'가 꼽힌다. 인권위 조사에서 단속반장 B씨는 "단속 할당량은 없지만, 월 목표치가 있다"고 진술했다.

인력 부족 역시 사고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인권위는 "복수의 단속반원들이 인권위 면담조사에서 '상급기관의 지시와 제보자 독촉에 거의 매일 단속에 임하고 있다. 인력 부족이 안전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외국인노동자를 향한 이 같은 강압적 단속으로 인해 유엔으로부터도 경고를 들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4일 한국 정부에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강압적 단속에 우려를 표하고 "당사국(한국)의 단속으로 인해 체포·강제추방된 이주민 수 및 동 과정에서 과도한 무력이 사용된 경우 관련 조사 건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