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청소년, PC방 말고 어디로 가야 하죠?"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4. 청소년이 추방된 사회

도시 한복판에 코끼리가 나타났다고 상상해 보자. 일단 뉴스거리가 된다. 도시는 코끼리에게 허락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일 뿐이며 도시에서 코끼리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은 기껏해야 동물원뿐이다. 동물원에서도 코끼리는 해당 공간의 주체가 아니라 사람의 유희를 위한 대상으로서만 존재를 허락받는다.


우리의 삶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은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되고 구획된다. 각 공간에 설정된 사회적 함의는 공간에 적합한 존재를 선별하고 배타적으로 받아들인다. 사회적 위계가 높을수록, 사회적 자원이 많을수록 보다 다양한 공간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편의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공간이지만,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 같은 공간이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지기도 한다. 낮 시간대의 길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밤늦은 시간의 길거리는 여성들, 특히 혼자 있는 젊은 여성에게 터부시된다. 혹여 여성이 혼자 밤거리를 걷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그 늦은 시간까지 거기서 뭘 하고 있었냐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공간은 결코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으며, 평등하지도 않다. 당신이 접근 가능한 공간의 다양성은 당신의 사회적 위치를 반영한다.

때문에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다양한 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특정 공간을 금지 당하기도 하고, 아예 '있어도 되는' 공간을 허락받거나 '있어야만 하는' 공간 자체를 지정 받는다. 이를 벗어나는 행동은 일탈로 간주되거나 심지어 범죄시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가도 되는 공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낮에는 학교와 학원, 밤에는 집. 청소년이 있어야 하는 공간은 시간에 따라 정해져 있다. 만약 평일 낮 시간에 청소년이 버스 안이나 길거리에 있으면, 마치 작은 코끼리처럼 눈길을 끌게 된다. 청소년에게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시도엔 통제와 허가가 따라붙는다. 정해진 공간을 벗어난 청소년, 낮 시간에 학교 밖에 있는 청소년, 늦은 밤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 청소년들은 쉽게 '비행 청소년' 취급을 받는다.

어떤 공간이, 왜 금지되는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공간적 제약이 대부분 사회적인 것임에 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공간적 제약들이 '보호'라는 명목 하에 법률로 강력하게 규제된다. '청소년 보호법'을 비롯하여 '게임산업법', '영화비디오법' 등 다수의 법들이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유해'하다고 규정한 요소들과 청소년을 공간적으로 분리한다. PC방과 노래방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장소에 청소년은 10시 이후 출입할 수 없다. 혼숙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모텔이나 찜질방 등에 입장할 수도 없다.

그러나 '누가' 해당 요소들의 '유해'함을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유해하다고 규정된 요소들에 대해 청소년들이 접근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청소년 보호법'의 작동 방식은 과연 해당 법률의 궁극적인 목적이 '보호'인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유해 요소 쪽이 아니라 보호 대상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은 자칫 오히려 보호 대상을 더 큰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집과 학교를 절대적인 안전 공간으로 상정하고 설정된 우리 사회의 사회적, 법적 규범들은 정작 집과 학교가 안전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더욱 큰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애초에 집을 나온 청소년들 중 상당수에게 집은 결코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집에서 부모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여 집을 나온다. 어떤 이유로든 집에 돌아가지 않는, 돌아갈 수 없는 청소년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 '보호'를 이유로 청소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전부 차단해 버린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밤 10시 이후 PC방, 찜질방 등 '유해한' 장소에서 전부 쫓겨난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길거리뿐이다. 완벽하게 안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년에게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특정한 공간들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본인의 필요에 따라 원하는 공간에 접근할 수 없게끔 차단하는 이 사회의 통제인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청소년 보호법'에 규정된 청소년 유해시설이라도 부모 등 보호자가 동행하거나 보호자의 동의서가 있으면 청소년이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하여 법으로까지 제한해야할 정도의 공간이 보호자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보호자의 허락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해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이 보호자의 '허락'을 통해 홀로는 금지되는 공간에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법이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공간'이 아니라 '청소년이 홀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즉 '청소년 보호법'과 같은 법들의 목적은, 감히 부모나 보호자의 허락 없이 규정된 공간을 이탈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감시와 통제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밀폐된 공간이 청소년들에게 있어 일탈과 탈선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금지된 멀티방, DVD방 같은 공간들의 사례는 청소년들을 언제 어디서든 감시와 통제 하에 두고자 하는 의도와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간에 대한 권리가 필요한 이유

이처럼 청소년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목적으로 청소년의 특정 공간에 대한 접근성을 박탈하는 권위적인 법규들은 과거의 야간통행금지제도(통금)를 떠올리게 한다. 1982년도까지 시행되었던 통금은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저녁 시간 일반인의 야간 통행을 전면 금지하고, 통금 시간 동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거동 수상자로 취급하여 잡아가뒀다. 어떤 이유에서건 통금을 이제 와서 다시 부활시키겠다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구 반대할 것이다. 아무리 특별한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시민들의 일상적 자유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통금은 그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안보와 치안이라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국민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통금은 구시대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공간에 대한 자유를 박탈한 통금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살아남아, 현재까지도 청소년에게서 공간을 박탈하고 통제하고 있다.

허락된 공간을 벗어난 청소년은 위험하다. 이들은 '위험에 처한 존재'이며, 그와 동시에 '위험한 존재'다. 사회는 입맛에 따라 이들을 때로는 '위기 청소년'으로, 때로는 '불량 청소년'으로 부르며 하루 빨리 안전한 장소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애초에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이 이탈한 공간은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니었으며, 그 외의 공간들은 유해하고 위험한 곳으로 규정되고 금지당했다.

감시와 통제로 가득 찬, 허락된 한정적인 공간과,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불법적인 공간 사이에서 온전히 청소년을 위한 공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정된 청소년들의 공간은 주류 공간과 철저히 단절되고 분리된다. 학교와 가정 바깥에서, 청소년들이 언제든 다른 시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은 드물다.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거대한 감옥이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은 없다.

청소년이 박탈당한 것은 단순히 공간만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선택권의 박탈은 나의 현재를 결정할 권리의 박탈, 공존할 권리의 박탈을 의미한다. 한없이 작고 초라한 청소년들의 공간, 스스로 있을 공간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은 청소년들의 사회적 지위, 이 사회가 청소년을 대하고 취급하는 양상을 잘 드러낸다.


청소년에겐 공간이 필요하다. 보다 많은 공간, 보다 다양한 공간, 보다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에겐 자신에게 적합하고 필요한 공간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보다 나은 공간을 상상하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박탈당한 공간에 대한 권리를 되찾게 될 때, 격리되었던 청소년들이 자신의 공간을 되찾게 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정으로 청소년을 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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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청소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단체입니다.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고나서'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시민이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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