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페리아를 둘러싼 중국의 역공: 법의 봉쇄를 시장으로 포위하다

[기고] '넥스페리아 전쟁'의 의미

"반도체 산업은 본질적으로 세계적 협업의 산물이며, 그 미래는 대립이 아닌 협력에 달려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기업에게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환경을 제공해야 하며, 기술 협력을 정치적 무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규범은 결국 편견을 이길 것이며, 정의는 반드시 제자리를 되찾을 것입니다."

— 2025년 10월 13일, 윙택테크놀로지(闻泰科技) 성명서 중에서

이 성명은 단순한 기업의 항변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기업의 언어를 빌려 발화한 외교적 문서이며, 법과 시장, 정치와 기술이 한 몸으로 얽힌 '21세기형 주권 전쟁'의 선언문이다. 중국 윙택(Wingtech)은 자회사 넥스페리아(Nexperia)에 대한 네덜란드 정부의 '국가안보 명목 경영권 동결' 조치에 맞서 이 성명을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분쟁이지만, 그 이면에는 법의 봉쇄에 맞선 시장의 역공, 즉 기술주권의 정치화라는 오늘날 국제질서의 핵심 장면이 자리하고 있다.

1. 젤란디아 성의 기억 ― 제국의 봉쇄를 깨뜨린 첫 균열

1661년 봄, 복건 출신의 해상세력 지도자 정성공(鄭成功)은 약 2만 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타이완 남부 안평(安平)에 상륙했다. 그곳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운 요새, 젤란디아 성(Fort Zeelandia)이 있었다.

타이완은 당시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요충지이자, 유럽 제국주의의 전진기지였다.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정성공은 南明의 정통을 계승하며, 타이완을 새로운 근거지로 삼아 청나라와의 대결을 준비했다. 그는 군사적 목적을 넘어, 해상주권을 회복하려는 동아시아적 자주의 실험을 시도한 셈이었다.

1년에 걸친 포위전 끝에 1662년 2월, 네덜란드 총독 프레데릭 코이엣(Frederick Coyett)은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네덜란드는 타이완에서 철수했고, 동아시아의 첫 유럽 식민거점은 무너졌다. 그 사건은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비(非)유럽 세계가 서구 제국주의 질서에 가한 첫 균열로 기록된다.

젤란디아 성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후 수세기 동안 반복될 문명 간 힘의 관계와 주권·교역의 얽힘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상 속에서 봉쇄에 맞서는 포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2. 364년 뒤의 재현-넥스페리아 전쟁

2025년, 그 기억은 다른 형태로 부활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 윙택이 2019년 36억 달러에 인수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의 경영권을 강제로 박탈했다. 표면적 이유는 '국가안보'였으나, 실제로는 미국이 주도한 대중(對中) 반도체 봉쇄 전략(CHIP4) 의 연장선이었다.

ASML의 첨단 노광장비 대중 수출 제한에 이어, 네덜란드는 이번엔 '자국 내 자산'이라는 명목으로 중국 기업의 소유권 자체를 차단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은 예상보다 빠르고 정교했다. 베이징은 곧장 넥스페리아의 중국 공장에 대한 수출 금지를 발동했고, 그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유럽 주요 완성차 기업의 생산라인이 멈췄고, 유럽은 스스로 구축한 "중국 없는 공급망"이라는 허상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동시에 넥스페리아의 중국 직원 7천 명은 본사 승인 없이 급여를 지급받았고, 현지 경영진은 "독립 운영(自治經營)"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노무조치가 아니라, 자산동결에 대한 주권적 행정행위였다.

네덜란드가 "법률"로 자산을 압류했다면, 중국은 "시장"으로 서구 산업을 포위했다. 이때 "법의 봉쇄"와 "시장의 역공"은 17세기 젤란디아 성의 기억을 되살린다.

3. 0.1%의 칩이 멈추면 산업이 멈춘다

미국 자동차부품제조사협회(MEMA)는 최근 "넥스페리아 사태로 인해 미국 내 주요 자동차 공장이 2~4주 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원인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낡은 기술이었다. 문제의 칩은 창문, 와이퍼, 도어 잠금 등 차량의 기본 기능을 담당하는 구형(legacy) 전력반도체였다.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수천 개의 칩 중 단 0.1%의 부품이지만, 그것이 없으면 조립이 불가능하다. 이 미세한 결핍이 디트로이트의 생산라인을 마비시킬 수 있다.

스티브 호레이니 MEMA 부사장은 말했다. "이 칩 몇 개만 없어도 전체 공장이 멈춘다. 반도체는 볼트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부품이 아니다." 첨단의 시대에 가장 단순한 기술이 세계 산업의 급소를 쥔 역설, 그것이 바로 글로벌 공급망이 가진 불평등한 상호의존의 민낯이다.

4. 법의 봉쇄와 시장의 포위, 포화없는 전쟁

364년 전의 젤란디아 포위전이 대포와 화약의 전쟁이었다면, 오늘의 넥스페리아 전쟁은 법률과 시장이 충돌하는 포화없는 전쟁의 양상이다. 즉, 넥스페리아 사태는 단순한 기업 분쟁이 아니라, 법과 시장이라는 두 형태의 주권이 충돌하는 전쟁이다.

서구는 오랫동안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문명적 우위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이 서로 얽힌 21세기에서, 법은 더 이상 보편의 윤리가 아니라 권력의 형식일 뿐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주권적 시장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국제통상의 법적 규범을 시장주권의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며, 서구의 법적 봉쇄에 경제적 자율성으로 대응하는 21세기판 젤란디아 포위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네덜란드는 법으로 봉쇄했고,

중국은 시장으로 포위했다.

서구의 법이 자산을 동결할 때,

중국의 시장은 공급망을 멈춘다.

5. 기술주권의 장기전 ― 방어와 역공

중국의 대응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주권"을 방어하는 장기전의 일환이다.

첫째, 공급망 포위전. 중국은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핵심 소재에서 절대적 비교우위를 이용해 서방의 제재를 상쇄하는 비대칭 억제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세계화가 구축한 상호의존의 논리를, 역으로 주권의 방패로 전환한 사례다.

둘째, 법률의 대칭화. '데이터안보법', '수출통제법', '외국기업 안보심사법' 등을 통해 서방의 법적 압박에 맞서는 자국 중심의 법체계를 구축했다. 중국은 "주권적 합법성(Sovereign Legality)"이라는 개념 아래, 법을 도덕의 외피가 아닌 권력의 형식으로 이해하고, 그 형식을 되돌려 사용하고 있다.

셋째, 유럽 내부의 분화 활용. 중국은 네덜란드의 조치를 "미국의 대리전"으로 규정하며, 독일·프랑스 등 제조업 중심국의 경제적 이해를 자극해 유럽 내부 균열을 확장했다. 그 결과, 독일 자동차 산업이 직접적 피해를 입자 베를린은 다시 경제실용주의로 회귀했고, "대서양의 동맹"은 균열을 드러내며 "유라시아의 현실"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보복'이 아니라 균형의 재설계다. 법과 시장, 규범과 현실이 맞물리는 장기전 속에서, 중국은 더 이상 봉쇄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의 공동 설계자로 자신을 세우고 있다.

6. 디트로이트의 경고

포드의 짐 팔리 CEO는 이번 사태를 "정치적 문제"로 규정하며 워싱턴을 직접 찾았다. GM의 메리 배라 CEO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며, 하루 단위로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MEMA는 "비축 재고가 2~4주 내 소진되면 미국 내 수십 개 공장이 멈출 것"이라 경고했다.

이제 미중 기술전쟁의 충격은 더 이상 외교나 통상 통계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화의 심장부인 미국 제조업의 생산라인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법의 봉쇄가 기술을 묶었을 때, 시장의 반격은 공급망을 마비시켰다.

세계경제는 지금, 서구가 만든 규칙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되비추는 중이다. 규칙을 만든 자가 그 규칙에 갇히고, 자유무역을 외친 체제가 통제의 언어로 스스로를 봉쇄하고 있다.

7. 다시 포위된 젤란디아 성

젤란디아 성은 한때 제국의 요새였지만, 이제는 반도체와 공급망의 상징으로 되살아났다. 364년 전 정성공은 대포로 성을 포위했으나, 오늘의 중국은 공급망과 시장이라는 비가시적 병기로 네덜란드를 포위하고 있다.

법으로 자산을 압류한 네덜란드는, 시장 논리 앞에서 산업 전체가 인질이 되는 역설에 빠졌다. '넥스페리아 전쟁'은 단지 중국의 기술주권 수호전이 아니라, 서구 중심의 세계경제가 스스로 만든 법의 무기로 스스로를 봉쇄하는 장면이다.

젤란디아 성의 붕괴는 한 제국의 패배가 아니라,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기존 질서의 균열이다. 그리고 364년이 지난 오늘, 그 균열은 다시 법과 기술, 시장의 경계에서 재현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뿐이다.

"누가 세계의 규칙을 만들고,

누가 그 규칙을 따를 것인가."

젤란디아 성은 무너졌고,

넥스페리아는 또 하나의 성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포위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디트로이트의 조립라인 위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넥스페리아 회사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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