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물어도 "이게 회사냐" 묻진 않는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②] 8년을 싸워온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장기 투쟁 사업장’이라 부르는 곳을 찾아 6회에 거쳐 기록한다. 오랜 시간 동안 싸우는 사람은 강한 사람, 지독한 사람, 모자란 사람, 끈질긴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 묻는 사람이다.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물음은 답해지지 않고 싸움은 길어진다. 괜찮을 것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들의 물음을 기록한다.

'일자리'란 너무 어려운 말이다. 오죽하면 '먹고사니즘'이라 부를까. 먹고사는 문제는 -이즘(주의)이 되었다. 이념의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일자리를 쥐고 있다는 것은 권력이 된다. 법도 상식도 넘나드는 권력의 횡포를 쉽게 접한다.

직원에게 자기 집 김장을 담그라 시키는 사장, 회장님 오시는 날엔 직원들 줄 세워 노래 부르게 하는 회사. 별 희한한 갑질을 다 보게 된다. 치사하고 모욕적인 순간은 그래도 잠깐이지. 목줄과도 같은 밥줄 뒤흔드는 일은 너무도 일상이다.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고는 물어도, "이게 회사냐"고는 묻지 않는다. 우리들 머릿속에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다.

인력 감축
부산 반여동에 위치했던 풍산마이크로텍(PSMC)은 10여년 밥줄 뒤흔드는 일의 연속이었다. 방위산업체로 알려진 풍산 그룹의 민간산업 부분인 풍산마이크로텍은 반도체 부품인 리드프레임을 생산하는 회사다. 한때는 세계 10위권 규모의 리드프레임 생산업체였으나, 2000년 초중반 성장세가 끝나자 회사는 규모를 줄여나갔다. 규모라는 것은 결국 일하는 사람의 수다. 매년 10%씩 사원 수가 줄었다고 했다.

"한창 땐 회사가 갈퀴로 돈을 긁어간다고 그랬어요. 2000년 중반에 노동조합 세울 때만 해도 사내보유금이 600억 원 이상. 그런데 기술 투자를 안 하고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로 이전할 생각만 하고. 그러면 결국 도태한다고 노조가 제안을 해도, 사장 자신도 인정한데. 그런데 풍산 본사로 가면 발언력이 없다고." (남태현 조직부장)

2000년 이후 노동조합은 만들기 무섭게 사라졌다.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노조가 없던 때는 임원에게 불려가면 며칠 뒤 그 직원은 자취를 감췄다. 명예퇴직이라 했다. 인력감축은 검사파트 등 여성들이 있던 직종부터 시작됐다. 부부사원은 희망퇴직 1순위였다. 몇 해 지나지 않아, 한때는 700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3분의 1로 줄었다. 몸집 줄이기는 자연스럽게 매각 절차로 이어졌다.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

기습 매각

2010년 말, 풍산 생산직원들은 5일 휴가를 받는다. 연말 물량이 없으니 연월차휴가를 소진하라는 회사의 명이었다. 떠밀려 휴가를 보내던 이들은 인터넷 뉴스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게 된다. '풍산그룹, 계열사인 풍산마이크로텍 매각'

십여 년 일해 온 회사의 매각 소식을 그렇게 들었다. 언론은 풍산마이크로텍이 최근 '신규 사업 진출이 부진'과 '원재료 값이 상승하면서,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발생'해 매각한다는 사실을 꼼꼼하게 전했지만, 그곳에서 일한 이들의 고용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사고를 알리는 짤막한 기사 아래 해당 기업의 주식 하락률 기사가 나오는 세상이다. 매각된 업체의 노동자 운명은 빤했다.

풍산마이크로텍은 하이디스에 매각되었다가 투자회사 (주)에프엔티로 재매각 된다. 회사명(㈜PSMC)도 일터도 그대로였지만, 사라진 것이 있었다. 고용승계 약속. 희망퇴직 신청서가 돌아다니더니 그해 10월, 52명이 정리해고 된다.

해고와 복직

노조를 만든 이래 스무 명을 벗어나지 못하던 조합원 수가 2011년 초 매각 소식으로 인해 100여명으로 늘었다. 52명의 정리해고자 중 조합원이 51명. 해고를 피한 조합원이 반 이상이었지만, 해고자 비해고자 구별 없이 모두 거리로 나섰다. 서울 상경투쟁, 노숙농성, 거리선전전. 그 시절을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해고자들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다.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쳐 승소 판결을 받아내는 데 3년이 걸렸다.

풍산 노동자들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법정 싸움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3년이면 짧은 편이다. 법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데는 돈과 시간이 든다. 두 가지 모두 노동자가 풍족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년이면, 일하는 이가 서른여섯 번 월급을 집으로 가져가는 시간이다. 해고자들이 36개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그래도 이들은 37개월 만에 복직했다. 운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노동조합이 있었다. 노동자 개개인으로는 3년을 버틸 수 없다.

끝날 줄 모르는

동화 속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결말이 현실에 없듯, 교과서 속 상생하는 노사 관계도 현실엔 없다. 복직통보서는 희망퇴직 신청서와 함께 왔다. 대기발령과 징계위원회 개최는 탄압 축에도 끼지 못한다. 복직 3개월만에 주요 공정(도금공장)에서 화재가 나더니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 불탄 설비와 공정을 매각하고, 일부는 필리핀 해외공장으로 보냈다. 5개 부서 중 남겨진 것은 스탬핑stamping이라는 작업 공정 하나. 이마저 화성공장으로 이전한다.

2016년, ㈜PSMC는 부산 반여동 풍산그룹 부지를 떠나 공장을 화성으로 옮긴다. 노동자들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80년대 중반에 입사한 이도 있다. 이 회사에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보았다고 했다. 회사와 함께 나이든 이들이 이제 타지로 이동해 평생 해보지 않은 공정 일을 배워야 했다.

아니, 이마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들은 낯선 업무조차 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에게 징계와 다를 바 없는 9개월 간의 교육(휴게실 대기) 이후 강제휴직이 내려졌다. 이때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겨우 23명. 나머지 이들은 회사가 개입해 세운 기업노조 조합원이 됐다. 민주노조 조합원 23명 중 절반인 11명에게 휴직이 통보됐다.

공장에서 일한다고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조합원들에게만 잔업, 특근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생산직 노동자가 기본급만 받고 어떻게 일하나. "10년 동안 집에 월급을 제대로 가지고 간 적이 없죠." 동료끼리도 얼마 받는지 묻지 않는다고 한다. 알아도 서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음 아프거나 미안해지는 일 뿐이다.

결국 노동조합은 부산시청 앞 농성에 들어간다. 작년 7월에 시작한 농성은 오늘로 211일 째다. 싸움이 끝날 줄 몰랐다.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

싸우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라고 한다.

"한창 다닐 땐 우리 자식들도 여기 와서 일하면 참 좋겠다, 그랬어요. 매각 되고 이런 과정에서도 그래서 회사가 정상화되기를 바랬어요." (남태현 조직부장)

이들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던 그때,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나.

후에 밝혀진 바지만, 매각을 앞둔 시기 풍산은 약 1억 원 돈을 '창조컨설팅' 법인에 송금한다. 이 법인이 무엇을 컨설팅 하는지는 다 알려진 이야기. 노조파괴 기획으로 돈을 버는 곳이다. 경영난에 따른 불가피한 매각이란 풍산의 주장과 1억 원의 컨설팅 비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조는 애초부터 의혹을 제기해왔다. 풍산그룹 소유인 해운대구 반여동 42만평 땅에 사건의 핵심이 숨겨져 있다는 것.

센텀2지구 개발계획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이 땅 이야기를 하자면, 81년 전두환 정권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국방부는 방위산업을 담당하는 풍산에 부지를 하사한다. 대부분이 그린벨트 지역에 포함된 도시 외각 땅일 뿐이었다. 그 후 30년 동안 한국은 토건 국가의 길을 걷고, 제2의 도시라는 부산 또한 무분별한 개발과 그에 따른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는다. 2011년 부산시는 풍산 공장부지가 포함된 '센텀2지구 조성산업' 계획을 제출한다. 풍산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개발 계획이었다.(16년 부산시의회는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센텀2지구 개발안을 통과시켰다.)

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린 왕자가 언급한 어른들의 대화법을 써보자. 매입할 당시 200억 수준이던 풍산 부지는 현재로도 그 가격이 1200억 원에 달한다. 그린벨트가 해제될 경우 1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예상된다. 2015년 부산시가 센텀2지구 땅값 보상금으로 풍산에 물밑 제의한 금액이 1조2000여억 원이라 했다.('센텀2지구, 정의로운 개발인가?' 기사 참고 (KBS부산. 2018.09.07.)

풍산그룹에 지급될 보상금은 부산시의 재원으로 충당된다. 세금이 기업 주머니로 흘러간다는 말. 풍산 입장을 빗댄 옛 속담이 있다. '누워서 떡 먹기'. 요즘 말로는 '돈이 돈을 번다'. 수십 년 방위산업으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한 기업은 이제 시(市)가 주도해 올려놓은 부동산 시세 덕에 돈을 번다.

돈이 돈을 벌려면

물론 돈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양한 협조가 필요하다. 81년 전두환과 풍산창업주(류찬우) 사이에 오간 34억 원 정치 지원금과 국방부 땅이라는 협조. 99년 ‘풍산이 매매 계약 후 지정된 군수산업 목적을 폐지하였을 때 국가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조항이 삭제되는 정체 모를 협조.(김종훈 의원실 언론발표. 2018.10.5.) 2011년 그린벨트에 속한 풍산 공장 부지에 2만평 돔구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전경련의 부대표가 풍산 류진 회장이라는 사실이 감춰지는 그런 협조 말이다.

제도와 법, 인맥과 카르텔이라 불리는 담합. 이런 협조가 있기에 기업은 힘을 갖는다. "가진 사람들은 너무 쉽지 않는가?" 안정과 일자리를 빼앗긴 이들은 한탄한다.

수십, 수백 명의 목줄을 끊어도 지탄받지 않는다. 정당함을, 진짜 이유를, 노동하는 이의 권리를 묻지 않는다. '경영 위기' '이윤 하락' 이 두 단어면 모든 것을 용서할 기세다. 누구도 "이게 회사냐"고 묻지 않는다. 기업을 향한 우리 사회의 관대함은 '돈이 돈을 벌게 하는' 또 다른 협조일지 모른다.

그런데 풍산은 마냥 쉽지만 않았다. 방해 세력이 있었다. 거의 유일한 비협조자라고 할까. 공장을 팔고 정리해고를 해도 기어코 공장으로 돌아오는 존재. 용역경비를 투입할 자금도, 항소를 거듭하며 3년을 버틸 시간적 여유도 없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버텼다. 그 울타리가 노동조합이다.

방해요소, 노동조합

농성장을 방문했을 때, 200여일 째 계속해왔다는 노조의 일과표를 보고 조금 놀랐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거리 선전전 일정. "우린 이제 농성 전문가죠."라던 말이 농담이 아니구나 싶다. 지난 10년 동안 어쩌면 공장보다 거리에서 지낸 날이 더 많을 이들이다. 나이가 대부분 쉰을 넘겼다. 싸우다 정년을 맞은 이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돈도 시간도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노동조합의 싸움은 ‘답 없는 일’처럼 보일 때가 많다. 장기투쟁 사업장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이런 말이 돌아오곤 한다.

"그곳도 답 없는 싸움을 하네."

그런데도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우린 이미 승리한 것"이란 소리를 한다.

"여기까지 드러낸 것만으로도 성과죠. 처음에는 저도 인지를 못했는데 우리가 이런 구호를 외쳤더라고요. '특혜 개발', '위장 매각' 우리 의심으로 시작된 아주 오래된 적폐가 8년 만에 하나씩 밝혀지잖아요."(성세경 법규부장)

이들이 원하는 답, 그러니까 노조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면 투기와 개발 이익에 희생된 자신들의 고용을 언급한다. "사실 굉장히 잔혹한 일이잖아요." 일터에 제대로 들어서지도 못한 8년의 세월. 노조탄압 원인을 진상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건의 시초에 특정 기업 배불리기로 귀결되는 개발계획이 존재했다.

센텀2지구 개발계획 중단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지역 시민단체의 바람은 이뤄지고 있다. 센텀2지구 조성사업의 전제는 그린벨트 해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부산시의 그린벨트 해제 요청을 3차례나 보류했다. 지역 언론은 국토부의 보류 판단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여론이 작용한 것"이라 보도했다. 그렇게 싸우는 이들은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함께 살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래도 답 없는 싸움. 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어딘가 닮았다.

"투쟁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무너져버렸지. 지금은 자존심 별로 없지. 옛날에 해고될 때는 그때는 솔직히, 이걸 막지 않으면 2차 3차 해고가 들어올 거다. 막아야겠다는 정의감? 그런 마음도 있었어요. 집에서 반대하면 그렇게 말하고 나갔지. 지금은 그때랑 다르고, 그런데도 계속하는 건, 그래도 자존심." (홍진석 조합원)

"함께 살자, 구호를 실천으로 만들려니 힘들더라고요. 여기까지 오려고 온 게 아니고. 함께 살자고 시작했으니, 다 같이 끝내고 싶어요."(윤광섭 교육선전부장)

함께 살자며 시작했다. 정리해고 당시 노동조합에는 비해고자와 해고자가 존재했다. 그 후 법정투쟁 속에서 승소자와 패소자로 나뉘고, 희망퇴직 신청자에, 회사가 개입해 만든 기업노조까지. 기업은 비정규직, 외주화(아웃소싱) 등을 통해 일하는 이들을 나누고 쪼개왔다. 풍산 노동자에게 자본이 나누고 분리시킨 조각들을 묶어내는 말은 "함께 살자"였다.

"해고 투쟁 초기에 그렇게 말했어요. 함께 살자라는 구호가 많이 외쳐지는 때였고, 거기에 더해 ‘우리는 8개의 머리지만, 하나의 심장을 가졌다’고. 해고자 아닌 사람이 해고투쟁을 같이하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거든요. 그게 의리라고 생각해요. 시간 지나면서 힘들어서 희망퇴직으로 간 사람도 많지만, 사람은 자기가 지킬 수 있는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사회적 의리든, 사람간의 의리든." (문영섭 지회장)

누군가는 마지막 자존심이라 하고, 누군가는 의리라 부르는 그 자리에 ‘우리’라는 주어가 놓여 있다.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가 지난 8년 동안 폭로해온 것은, 저들의 '우리'였다. 그러니까 국가와 자본의 협조. 규제되지 않은 자본 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수년간 일터와 삶터에서 쌓아온 '우리'를 손쉽게 파괴한다.

"이게 회사냐"는 질문을 무사통과하는 '답'이 개발논리와 이윤 추구인 사회에서, '우리'를 지키며 또 다른 답안을 만들어가는 싸움이 8년째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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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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