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함'도 잘 관리하면 중요한 '재능'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소담小膽한 사람들을 위한 변명

"딸아이가 작년에 시험지를 받았는데 눈앞이 하얘지면서 뇌가 텅 비는 것 같았대요. 올 해도 그러면 정말 안 되는데..."

"한 달 후면 시험인데 잠도 잘 안 오고, 공부할 것은 많은데 뭣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올해까지만 하고 안 되면 고시는 접고 취업 준비하려고요. 부모님께 미안해서도 더는 못하겠어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도움이 될 방법이 있을까 싶어 내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먹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다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을 달고 먹었는데도 피로가 가시질 않아 오는 분도 있고, 위에 말한 분들처럼 준비를 잘 해오다가 결전의 순간에 과도하게 긴장해 실력발휘를 못해서 고민하는 분도 있습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지만 연속된 실패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고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긴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문제입니다. 과도한 긴장 반응의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중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담이 작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부류인지라 이런 고민을 안은 환자들을 보면 남 일 같지가 않아 마음이 조금 더 쓰입니다.

의서에는 담이 작은 사람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증상이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무서워서 혼자서 못 자기도 한다. 겁이 많고 용감하지 못하다. 한숨을 잘 쉰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누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처럼 느낀다. 고민은 자주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구역감이 잘 들거나 토하기도 하고 기가 위로 역류하면 쓴 물이 올라오기도 한다.'

겁쟁이에 결정 장애가 있고, 겁이 많고 비겁한데다가 불면증에 혼자 잠도 못 자고 소화도 잘 못하는, 한마디로 '찌질한' 인간의 전형 같습니다. 실제 상담 중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요?"하며 한탄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담이 작은 사람들도 다 할 말은 있습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담이 작은 사람이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데는 뭔가 생존에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눈앞 조금 위험해보이는 곳에 못 보던 과일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담한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죽는다면 먹고나 보자며 달려들었을 테지만, 소담한 인간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다른 확인할 방법을 찾았을 확률이 큽니다. 과감한 결정과 행동이 가져 오는 장점도 있지만, 우물쭈물 하거나 그냥 뭘 안하는 것 또한 생존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이 작은 사람이 대체로 예민한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고 미묘한 변화들에 예민합니다. 물론 이로 인해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을 일에 혼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위기를 빨리 알아채기도 하고, 예술적 재능을 발현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음악·미술계나 연예계에는 일반의 경우보다 담이 작은 사람들의 비율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분야 종사자들이 중독이나 불면증과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와 같은 질환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자주 나옵니다. 그 분야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예민한 재능을 가진 사람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합니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바다가 늘 잔잔할 수 없듯 우리 일상에도 파도가 몰아치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고, 이때가 되면 삶의 균형을 잃어 너무도 쉽게 뒤집히고 맙니다.

그래서 파도가 곧 몰아칠 것 같은 상황에 처한 앞선 환자들과 같은 사례의 경우, 일단 급하게 몸을 조정하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침과 약물로 극도의 긴장된 순간에서 한숨 돌리고,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조금 대담한 상태를 만듭니다. 소담한 사람도 술을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고 긴장이 풀려 약간 들뜬 상태가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의학의 치료는 과도하게 긴장한 환자가 약간의 차분함을 유지하면서도 긴장상황에서 한 걸음의 여유를 갖도록 돕는 걸 목표로 합니다.

그런 후에는 현실에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고 담담하게 앞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훈련을 합니다. 신체적 운동이나 호흡연습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뱃심을 키워 웬만한 파도에는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준비를 해도 담대함을 타고 난 사람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삶을 살아 갈 수는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개성이 있습니다. 이 개성은 상황에 따라 강점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하지요. 담이 작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한 준비를 하면 소담한 사람은 그 나름의 훌륭한 생존이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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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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