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단체, 정치권까지 속수무책으로 파고 든 종북‧친북 세력은 천안함 폭침도 북한이 한 게 아니고 연평도 도발도 한국 정부 탓이며 심지어 3대 세습까지 감싸고 나선다.(중략) 87년 민주화 이후 사회 곳곳에 파고든 종북‧친북 세력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낼 선전능력, 대규모 집회를 이끌어 낼 동원능력도 갖추게 됐다”
국가보훈처가 ‘나라사랑교육’ 강사진 교육용으로 배포한 교재 내용의 일부다. 이 교재를 만든 이는 원세훈 국가정보원 원장 시절 댓글 조작에 앞장선 ‘알파팀’ 리더 김모 씨다.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재임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보훈처는 전국 500만 시민에게 ‘나라사랑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종북‧좌파 궤멸”을 설파했다. ‘이명박근혜’ 시절 보훈처와 국정원은 정권 보위를 위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 셈이다.
보훈처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산하 국가보훈처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회는 지난 5개월 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8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 조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호국 교육을 편향적으로 했을 뿐 아니라, 부정 의심 국가유공자 재판정에도 소극적이었다. 상이군경회의 편법적 수익사업, 재향군인회의 혼탁한 회장 선거와 부실 경영에는 눈감았다. 또 과거 논란이 됐던 국정원 제작 DVD를 은밀히 폐기해 의혹을 자아냈다.
나라사랑교육=공산화 공포 조장?
박 전 처장은 재임기간 동안 나라사랑교육을 중점 시행했다. 그 결과 연 인원 500만 명을 교육했다. 그러나 독립, 호국, 민주 등 보훈 가치 중 유독 ‘호국’만을 강조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박 전 처장은 이를 위해 기존에 구성된 100명의 전문강사진 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성우회, 자유총연맹 등 우 편향 민간단체 출신 강사 322명을 별도로 선발 절차 없이 강사진에 포함했다. 국발협은 박 전 처장은 보훈처 처장 취임 이전인 2010년에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지시로 세운 단체로, 박 전 처장은 당시에도 국발협을 통해 안보 강연 사업을 벌인 바 있다.
나라사랑교육은 매년 규모가 커졌다. 2012년에는 2664회였으나 2016년에는 1만727회를 기록했다.
강사진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도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이가 국정원 ‘알파팀’ 리더 김모 씨였다. 보훈처는 김 씨에게 강의, 책자 발행 등에 대한 대가로 750만 원을 지불했다. 위원회는 “민주당 정권과 시민단체 내의 종북‧친북세력이 북한에 유리한 정책과 여론조성을 한 것처럼 기술돼있어 2012년 말 대선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으로부터 DVD 샘플 받은 사실도 없다”더니...
보훈처와 국정원과의 관계는 ‘알파팀’ 김모 씨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국정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 전 국정원장은 2011년을 안보 교육 강화의 해로 정하고, 이에 따라 심리전단팀이 DVD 샘플을 제작해 국가보훈처에 보냈다. 국가보훈처는 이를 바탕으로 2011년 12월 15일 '호국보훈 교육자료집'이라는 이름의 DVD를 제작했다. (☞관련기사 : '문제아' 박승춘, 불법 정치개입 혐의 결국 검찰 수사)
그러나 박 처장과 나라사랑교육과 과장 등 직원들은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에서 “DVD 제작자가 누군지 모른다”, “밝힐 수 없다”, “DVD 샘플을 전달 받은 사실도 없고 그 내용도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위원회는 “진상 조사 결과, 보훈처 직원들은 2011년 11월 국정원 정보관에 의해 DVD 샘플을 전달받아 내용을 확인했다”며 “따라서 허위진술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보훈처 관계자들은 2012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이후 국정원 제작 DVD 882세트를 회수했다고 주장했으나, 공문상 확인되는 129세트 외에는 공식적인 회수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해당 DVD는 국가 예산으로 제작된 것이고 사용 여부에 대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공용물건이자 공공기록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며 “이를 명확한 근거도 남기지 않고 폐기한 이유가 의문”이라고 했다. 위원회는 향후 교육자료를 포함한 국가기록물의 생산, 관리를 공식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할 것 등을 보훈처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멀쩡히 골프 치는데 여전히 상이 2급?
국가유공자에게 지급되는 총액은 연간 4조2000억 원. 상이(傷痍 ; 부상을 당함) 등급심사를 거쳐 1등급으로 인정되면 연간 9000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받는다. 일반 시민 입장에선 적잖은 돈이므로 합리적인 예산 집행이 요구된다. 또, 상이의 특성상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재판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직권에 의한 재판정 신체검사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보훈처는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상이 2급은 ‘일상생활에 수시로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지’ 여부가 기준이다. 상이 2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골프를 치는 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위원회는 "현재 신체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시 판정을 의뢰한 것이지만 보훈처가 거부해 결국 불기소 처분됐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2016년에도 브로커가 개입된 '특전사 보험사기 사건'에서도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수사대상자들 가운데 40명이 부정한 국가유공자로 의심됐는데 보훈처가 수사 및 재판 결과를 확인하지 않거나 직권 재판정 등 사후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위원회는 "보훈 급여금 지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며 "법률에 직권 재판정 신체검사에 대한 관련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권 재판정 신체검사는 법원의 판결이나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등의 실무자들의 잘못된 인식과 소극성, 보훈처 내에 고소·고발성 민원에 대한 업무처리 프로세스가 부재한 것 때문이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위원회는 상이군경회가 불법적인 수익사업으로 시장 건전성을 해치고 국가유공자 전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앞으로 보훈단체 수익사업 승인 품목 및 사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을 보훈처에 권고했다.
재향군인회의 혼탁한 회장 선거 문제에 대해선 향후 재향군인회장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관리 업무를 위탁하고, 집행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이사 및 직능대표, 각 지회장 등도 선거를 통해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보훈단체의 수익사업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다음 달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단체 운영의 민주성을 높이기 위해 회장 선거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도록 하는 등의 보훈단체 표준정관안을 만들어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 측은 보훈처 직원들의 일탈, 범법 행위 등에 대한 수사 의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조사에서 (문제의 행위에) 관여한 직원들에 대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교훈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문제가 된 사례에 대해서는 보훈처에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감사 결과에 따라 수사기관에 수사의뢰 등 적합한 사후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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