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동기 '뿔테안경'을 추억하며…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훈련소 중대장은 내무반 건물 앞 연병장에 150명이 넘는 중대 훈련병을 모아 놓고 총기 수여식을 시작했다. 중대장에게 M16소총을 받으면, 총 측면에 각인된 총기 번호를 크게 외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십 열 종대로 서 있던 중대원이 한 명씩 사열대로 올라가 소총을 받고 제 자리로 돌아왔다. 훈련생 절반이 총기를 받았을 무렵, 실수하지 않으려고 주목하며 차례를 기다리는데 중대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총 받아!"

까맣고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그래서 창백한 얼굴과 대조를 이뤘던 그 동기는 지난 며칠 동안 봤던 것처럼 말없이 중대장 앞에 서 있었다.

"총 받아, 개새끼야!"

11월로 넘어가는 늦가을 오후, 그날따라 바람 한 점 없어 햇볕이 따스했다. 총을 먼저 받고 신기해하던 동기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중대장 앞에서 '뿔테안경'은 말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총 받아!"

세 번째이자, 마지막 명령이 거부당하자 젊은 중대장 얼굴에 살기가 돌았다. 뿔테안경이 뭔가를 중대장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뒤에 서 있어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집총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중대장은 이유가 기가 차다는 듯 한바탕 욕설을 쏟아낸 뒤 이렇게 외쳤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신성한 총기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국가가 부여한 신성한 국방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야. 우리의 적인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상황에서 집총을 거부하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너는 국가 반역자야. 빨갱이란 말이야. 너 같은 놈은 신성한 총기를 받을 자격도 없는 새끼야! 이런 이적행위자는 척결해야 해! 어이 헌병!"

예견이라도 한 듯 헌병 두 명이 내무반 복도에서 대기 중이었다. 번들거리는 철모를 쓴 헌병들이 나와 단상 앞에 서 있던 뿔테안경을 둘러싸더니 팔을 비틀어 끌고 들어갔다.

폭발할 것 같던 중대장은 금세 차분해졌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라는 듯 여유 있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다음!"

집총을 거부하는 훈련병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단상으로 뛰어가 훈련병 기간 동안 쓸 총을 받고 총기 번호를 크게 외친 뒤, "충성"으로 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자동소총을 만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내무반은 뿔테안경 이야기로 뒤숭숭했다. "병신 새끼"라는 비아냥이 있었고, '남한산성'에서 3년을 사니 5년을 사니 의견이 갈렸다. 옆 동기에게 "그 친구는 왜 총 받길 거부했을까?"라고 물으니, "여호와의 증인 아이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며칠 뒤 훈련병으로 맞는 첫 일요일 날, 초코파이도 먹고 '민간인'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해 종교 활동에 참여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3개 중에서 골라야 했는데, 옆 동기는 "이슬람교도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내무반 막사를 한두 시간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군가를 부르며 교회당으로 갔다.

때마침 추수감사절이라 서울의 민간교회 담임 목사가 그 교회 성가대를 대동하고 설교를 했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푸른 제복'만 보다가 민간인을 보니 흐뭇했다. 인자한 목소리를 가진 목사가 설교를 시작했다.

"오늘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훈련병 여러분들이 군 생활을 하면, 제대하는 그날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부터 읽겠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5장 38절부터입니다. 다 같이 읽어볼까요."

목사의 선창에 따라 2000명 수용 규모의 훈련소 교회를 꽉 메운 훈련병들이 성경 말씀을 낭독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의문이 떠올랐다. '군대란 악한 자, 즉 적을 쳐부수기 위한 존재인데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니, 군인들 앉혀놓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무반으로 돌아온 뒤 초코파이를 한입 베어 물면서 입대 전에는 하지도 않던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교회당에서 들고 온 <한영 신약성경>을 꺼내 설교에서 들었던 마태복음 5장을 펼쳤다.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한영 성경을 보니, '적(enemy)'을 '원수'로 번역해 놨다. 우연하게도 '박해(persecute)'는 내무반 게시판에 '이 주의 영어 단어'로 선정되어 그 뜻이 영문으로 게시되었다.

"to treat someone cruelly over a long period of time because of your race, religion, or political beliefs.(인종, 종교 혹은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오랫동안에 걸쳐 잔인하게 괴롭히는 것)."

건너편 내무반에 빈 관물대가 보였다. 뿔테안경, '여호와의 증인' 자리였다. 국가가 적을 죽이라고 주는 무기를 거부하면서 그가 중대장에게 했던 말은 무엇일까.

"적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집총을 거부합니다. 저는 적을 죽이려 무기를 잡는 대신 적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종교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 대해 '교도소 근무 36개월'에 처하겠다는 잔인한 소식을 들으니, 푸른 제복을 입고 청춘의 한 시절을 같이 보낸 전우들이 떠오른다. 그들 가운데 뿔테안경은,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이들 중 한 명이다.

자신에겐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보다도 소중했을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대가로, 그는 '남한산성'이라는 고난의 십자가를 메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예수의 제자로 살고 있을까.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3~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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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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