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도 산업재해 위험 있다

[창비주간논평] 달라진 고용구조, 산업구조에 뒤처진 산재 대책

작년 하반기부터 중대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작년 8월의 LG화학 청주공장 폭발 사고(8명 사망), 경복궁 현대미술관 사고(4명 사망), 9월 구미공단 불산 누출 사고(5명 사망)에 이어, 12월에는 울산 작업선 전복 사고(12명 사망)가 있었다. 올해 초에는 삼성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에 이어 3월 여수산단 대림산업과 5월 현대제철 당진 현장에서 5~6명이 사망했다. 십여 년째 매년 평균 2400여 명이 일터에서 죽어나가는 OECD 산재 사망 1위 국가이지만, 최근처럼 중대 재해 산재 사망이 줄줄이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산업재해는 일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 생명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는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5명의 희생도 큰일이지만 이 사고로 주민 300여 명이 대피하고, 1만3000여 명이 건강진단을 받았으며, 재난지역 선포와 554억 원의 피해보상액 편성으로 이어졌다. 사업장 안의 화학물질 관리 부실로 인한 피해를 지역 주민에게 고스란히 끼친 것이다. 이는 구미공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OECD 산재 사망 1위 대한민국

불산 누출이 있었던 삼성 화성공장은 아파트, 대형 유통 매장과 인접해 있다. 이처럼 사업장이 몰려 있는 각종 산업단지는 단지 조성 이후 진행된 지역 개발로 청주산단처럼 도심 한가운데 서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인접 지역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다. 열흘에 한 번꼴로 폭발 사고가 나고 있는 울산산단은 전국 암 발생률 1위 지역이다. 화학물질과 발암물질이 대기와 토양, 지하수로 배출되면서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여수산단도 이번 대림산업 폭발 사고뿐 아니라 살인가스인 포스겐 누출 사고가 있었고, 1급 발암물질이 119톤 배출되는 발암물질 배출 전국 1위 산업단지다.

그럼 수도권 사정은 어떨까?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질 628종의 화학물질 취급업체는 전국에 6874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업체가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경기·서울이다. 이처럼 전국에 널려 있는 화학물질 사업장을 볼 때 산재 사고는 특수 분야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건강권 문제이다.

사고성 산재뿐 아니라 직업병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에는 '감정노동'이 관심을 끌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배우가 연기하듯이 감정을 숨기고 하는 노동을 강요받는 것"으로 유명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감정노동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유통 매장 서비스 노동자, 전기검침원, 은행창구 직원, 공무원, 병원 노동자 등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고객 감동'의 슬로건 아래 강도 높게 행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 1월 29일 경기도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 사업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환경부 공무원, 경기소방재난본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 감식반이 현장 감식을 벌였다. ⓒ연합뉴스

새로운 직업병, 감정노동

감정노동 노동자는 최근 보도된 사회복지 공무원, 백화점 점원의 자살 사례처럼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공황장애, 적응장애, 우울증 등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인 '진상 고객'과 '정 여사'의 인기의 바탕에는 일상적으로 감정노동을 접하고 수행하는 시청자의 공감대가 있다. 정부 정책의 부재 속에 지난주 한명숙 의원이 관련 법 개정 발의에 나섰고, 심상정 의원의 감정노동 산재 보상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각종 사고부터 정신질환에 이르기까지 '위험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 노동 현장 문제의 핵심에는 고용구조와 산업구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산업재해 정책과 법 제도가 있다. 첫째, 최근의 대형 사고는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결과다. 원청 사업주가 하도급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 업무이기 때문이다. 원청 사업장의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하청 노동자는 안전교육도, 보호구 지급도 없이 위험 업무를 도맡고 있다. 재벌 대기업을 비롯한 원청 사업주는 이들에 대해 산재 예방 책임도, 사고 처벌도, 산재보험료 부담도 지지 않는다. 위험한 업무는 외주 하청에 주고 한 해에 수백 억의 산재보험료를 환급받는 이익까지 누리고 있다.

이러한 허술한 법 제도 속에서 하청 노동자는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조선업은 10년 전과 대비해 원청 고용 인원은 변함없으나, 하청 노동자는 10배 이상 증가했다. 생산라인을 전원 하청 노동자로 채운 사업장도 다수다. 재벌 대기업이 하청 고용, 특수 고용으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대가는 결국 중대 사고 발생과 발암물질 노출로 이어져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을 위협하고 사회적 비용을 높이고 있다. 현재의 고용구조에 맞는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달라진 고용구조, 산업구조에 뒤처진 산재 대책

둘째, 서비스 산업의 비중과 종사자 규모가 확대되었지만 종전의 제조업·건설업 중심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비스 노동자는 사고성 재해보다는 직업병이나 감정노동의 문제를 많이 겪지만, 현행의 법 제도 어디에서도 대책을 찾아볼 수 없다.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변화가 중첩되어 있는 부분도 있다. 택배, 퀵 서비스, 건설기계, 화물 운전 등의 문제다. 화물 운송 규모가 확대되고 건설기계 시공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산재 예방 대책 자체가 부족한 데다, 대부분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므로 산재 예방과 보상에서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이 또한 운수업과 건설기계 분야의 사고 증가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역시 노동자뿐 아니라 국민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사방 곳곳에서 불이 나고 있는데, 불씨는 그대로 둔 채 타는 연기를 가둘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로 치닫는 현실의 바탕에는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고용구조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산재 예방, 보상, 처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노동자 죽음의 행진을 막을 뿐 아니라, 국민의 건강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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