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 원청 갑질 근절, 대·중소기업 상생 등 시장 경제의 불공정 행위와 그로 인한 격차를 축소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에 동등한 접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원청이 가치사슬의 꼭대기에서 노동자 시민의 노력과 경제 성장의 과실을 독점적으로 향유하고 다른 경제 주체들에게 동등한 기회와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화가 필요한 것이 꼭 대·중소기업 관계만은 아니다. 가족과 시장 경제 간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가사 및 돌봄 노동이 수행되는 가족 혹은 가구는'경제'의 한 부분에서 제외되어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 안팎에서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자는 시장 노동에 종사하는 자만큼 시장 경제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고 있는가. 돌봄노동의 불공정한 배분과 보상이 돌봄을 수행하는 자들의 민주주의적 시민권을 제약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동력과 사회를 재생산하는 돌봄노동을 '비경제활동'으로 명명하면서 특정 집단에게 돌봄 노동 수행에 따르는 불이익을 집중시키면서 다른 집단에게는 배타적으로 과도에게 시장 노동에 종사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족과 시장 경제 간의 비민주성은 가족과 시장 경제를 주된 활동 무대로 삼는 남성과 여성의 성불평등을 지속시킨다. 가족과 시장 경제 간의 민주주의는 대·중소기업의 경제민주화와 맞물려 있는 과제이다.
오늘날 성평등이라는 가치 실현에서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한층 진전을 이루었다. 여성의 대학진학률과 20대 고용률은 남성 못지 않은 수준에 도달했고 여성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차별은 법으로 금지되고 있으며, 정부는 성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한 법제도와 문화의 성주류화를 천명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양태, 남녀 임금 격차, 성별 직종 분리 심화, 비대칭적인 성별 분업과 여성의 독박 육아는 제반 영역에서 남녀가 과연 동등한 의사 결정과 행위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지 의심토록 만든다.
여성의 시장 노동 참여는 성평등을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고용'과 시장 노동에 모든 시간 자원을 투입하게 하고 돌봄 노동을 비경제적 행위로 간주하는 경제 발전 전략은 시장노동과 돌봄노동을 남녀 간에 민주적으로 재분배하는 대신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 전가시켰다. 남성의 돌봄 참여가 과거보다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의 이중 노동과 친인척의 돌봄 없이 소위 여성의 일가정 양립은 불가능하다. 남성은 시장 노동, 여성은 가정을 돌보아야 한다는 엄격한 성별 분업이 와해되었지만, 극단적 이윤 추구 과정에서 노동자의 시간을 무한히 전유하려는 기업 문화와 제도를 바뀌지 않았고 노동자는 돌봄을 주고받을 욕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여성에게 가부장적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경제적 독립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여성을 포함한 모든 개인이 사회 재생산에 힘과 노력을 헌신하는 행위에 불이익을 주는 경쟁 압력도 가중시켰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정치철학자 조앤 트론토는 저서 <돌봄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 정치가 돌봄에 대한 책임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민주적 시민은 돌봄에 대한 책임을 분배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모든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돌봄을 필요로 하거나 돌보는 사람에게서 시민의 자격을 박탈하고 차별하고 배제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돌봄 책임을 분배하는 것이며, 이러한 돌봄 책임을 민주주의 과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아직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돌봄의 필요를 시민들에게 직접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돌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근로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노동자의 '시간 주권' 확립이 필요하다. 미국의 여성학자 케이시 윅스는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노동시장 규범과 질서를 그대로 둔 채 성평등을 위해 여성이 더 많이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남녀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국가에서 정착되어 있는 주당 40시간이라는 표준근로시간은 포디즘적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시대에 남성 전일제 정규직 중심의 고용 관계에서 배태된 것이다. 임금근로자는 노동력과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오로지 시장 노동과 수면시간, 여가만 필요하고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수용한 것인데, 사실상 남성 생계부양자의 소득과 자신의 가사노동을 교환하는 아내가 있는 가구경제 모델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주당 40시간의 표준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장려하는 '일-가정 양립' 모델은 여성의 이중 노동과 돌봄 직종의 여성화를 필연적으로 야기할 수밖에 없다. 주당 40시간을 넘어서서 최대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를 제한하는 규제조차 버거운 한국 사회 현실에서 표준근로시간 단축은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돌봄 책임 분배를 통해 돌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 발 더 나아가 표준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사용자 주도의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기도 한다. 그러나 돌봄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시간주권'을 보장하는 근로시간 유연화이다. 사용자측의 필요에 따라 특정 일이나 주에 고무줄끈처럼 근로시간이 조정되는 근로시간 유연화는 돌봄 책임을 지닌 노동자가 일상 생활을 계획하여 일생활 균형을 달성하는 데 장애가 된다. 돌봄 책임을 지닌 노동자가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권리는 하루 혹은 일주일 단위에서 계획적이며 안정적으로 근로시간량, 근로일, 근로시간대를 조정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시장노동과 돌봄 노동, 그리고 가족과 시장 경제 간의 민주화를 위해 노동자의 시간 주권 확립이 필요하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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