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기관사의 마지막 기록, "미친 듯이 지적 확인"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④] 4분 때문에 인생이 바뀐 어느 기관사 이야기

<프레시안>은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기획을 통해 기관사의 근무 환경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에는 사고를 낸 기관사의 심리 상태를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지난해에 발생한 '오산대역' 사고는 기관사가 느끼는 압박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족 등의 2차 피해 가능성 때문에 기사에서 실명은 생략했다. <편집자>

돌이킬 수 없는 4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다

1년여 전인 지난해 1월 15일 오후 7시 46분, 경부선 오산대역 하행선에서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역을 지나쳐 운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 역에서 예정 시간보다 1분 늦게 출발한 이 전동차 기관사는 가속 운전을 했고, 승강장을 지나치는 실수를 했다. 함께 탄 열차 승무원이 비상 제동을 걸었다. 정차 위치에서 312미터 나간 지점에서, 전동차는 멈췄다.

▲ 지하철 기관사들은 '사고'에 민감하다. 사고 전에도, 사고 후에도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연합뉴스

기관사는 퇴행(후진)을 해야 했다. 왜 지나쳤을까. 아픈 아이의 건강에 대해 걱정을 하기는 했었다. 기관사는 순간의 실수에 당황했다. 게다가 예정된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속도를 냈다. 퇴행 시 규정 속도(시속 25킬로미터)를 넘겨 시속 29킬로미터를 찍자 함께 탄 승무원이 다시 비상 제동을 걸었다. 33미터 정도 퇴행한 후였다.

시간이 없었다. 당황한 기관사는 다시 퇴행을 했고 속도 표시판은 시속 46킬로미터를 찍었다. 정차 위치를 다시 지나쳤다. 다시 전방으로 이동해 간신히 승강장에 멈췄다. 승객을 내리고 태운 후 전동차가 움직였다. 예정 시간보다 4분 늦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언론은 이 실수를 크게 보도했다. 한 유력 신문은 "이번에도 기관사 '딴 생각'…코레일, 또 역주행"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관사에게 쏠렸다.

사고 당일 있었던 승무적합성 검사를 보면 해당 기관사는 음주, 질병, 휴양 관계에서 모두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7시간 수면을 취한 상태였다. 건강하던 이 기관사는, 이 4분 때문에 남은 생을 괴로워하다 지난해 6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지는 지탄, 중징계, 그리고…

▲ 기관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지러운 자필 글씨로 써 내려갔다. ⓒ프레시안(박세열)
지하철은 앞뒤 몇 분 간격으로 직렬 운행된다. 뒤에서 오는 열차와 앞에 가는 열차 사이에서 끼여 4분을 허비한 기관사의 마음도 앞뒤로 폐쇄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은 5일 이 기관사의 유품들과 사고 관련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료를 보여준 철도노조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열차가 3~4분 지연돼 마음이 조급해진 기관사가 속도를 내다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하는 사고도 있었다"며 "오산대역 사고 때도 몇 분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빠른 속도로 퇴행을 했다. 결국 그것이 징계의 주요 사유가 된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음날 중징계가 내려졌다. 43일간 독방에서 고등학생이 영어 단어를 외울 때 숙제로 '깜지'를 쓰듯 철도 운전 규정을 필사해 검사를 받았고, 복도 청소도 해야 했다. 이전에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징계 방법인 '기관사 인증 재심의'까지 거쳐야 됐다. 일종의 기관사 면허 시험인 인증 심의를 다시 받는다는 것은, 대학생이 중학교 입학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징계로 인증 심의를 다시 받게 한 전례는 없었다. 굉장히 굴욕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관사는 그해 2월 28일 업무에 복귀했지만, 조울증에 시달렸다. 동료 기관사들은 당시 이 기관사가 "어느 날은 '난 이제 운전을 할 수 없어'라고 좌절하다가, 그다음 날에는 '난 운전이 천직이야'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결국 이 기관사는 감봉 처분을 받고 전직을 요청해야 했다. 그는 '차량 검수'로 전직을 요청하면서 그해 6월 22일, 삐뚤빼뚤한 자필로 '고충신청서'를 힘겹게 작성했다. 그날 이 기관사와 승무사업소장의 면담 내용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그는 그날 소장과 담당 팀장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귀가했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아파트 옆 동에 올라가 투신했다.

자살한 기관사가 남긴 기록…"미친 듯이 지적 확인"

이 일이 있은 후 철도공사 노사는 징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별개로 이 기관사가 남긴 기록은 사고를 겪은 기관사의 심리 상태를 잘 드러내준다. '안전 규정'을 필사하는 굴욕을 당하고 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수첩에 메모를 했다. 자신에게 '호통'을 치는 형식을 취한 모습도 확인된다.

이 기관사는 "잊지 말자 오산대역 사고(잡념)"라고 큼지막한 메모를 했다. 수첩 곳곳에 "지적 확인(기자 : 기관사가 운전을 할 때 일일이 손으로 계기판 신호등 등을 가리키면서 신호 상황, 작동 상황 등을 점검하는 일) 환호 응답의 생활화", "자신을 보호하고 업무상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하여"라고 적었다.

그는 특히 "지적 확인"을 수차례 반복해 적었다. "큰소리로 팔을 곧게 펴고 정확히 발음한다", "미친 듯이 지적 확인, 틀리면 바로 기립 집무, 창문 개방", "위규 운전은 엄벌에 처함", "비상(제동)을 아까워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을 지적 확인으로 막을 수 있는데 왜 안 하려고 하느냐. 정년까지 무사히 가려면 지적 확인은 필수, 규정에 입각한 조치는 꼭 필수, 위규 운전(조치는) 최악(최대의) 벌(중징계)이다"라고 자신에게 처절하게 말을 걸었다.

오산대역 퇴행 시 속도 조절을 하지 못한 것을 떠올린 듯 "임의 퇴행하면 죽는다 (명심) X된다(절대 퇴행 금지)"라는 식으로 속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사고 발생 과정과 문제점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는 작업이었다. "지적 확인만이 살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꼭 꼭 (지루함)"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기관사들은 수도 없이 사고를 겪는다. 지난 4일 부산 지하철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20대 여성이 맞은편에서 들어오는 전동차 앞으로 뛰어드는 일도 일어났다. 다행히도 그 여성이 곧바로 선로 사이 기둥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이 신문 사회면 '단신'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눈앞에서 뛰어드는 여성을 본 기관사에 대한 소식은 그 단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기관사는 "자살하기 위해 눈앞에 뛰어드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는 기관사들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 사고를 겪고 내일 운행 걱정을 하는 기관사의 마음은 아플 수밖에 없다.

▲ 기관사가 남긴 수첩의 일부. ⓒ프레시안(박세열)

위기의 지하철 기관사
① "동료들 연이어 자살…이젠 나도 날 못 믿겠다"
② 사람 잡는 1인 승무제…공황장애 15배, 트라우마 8배
192명 사망 '대구 참사', 승무원 1명만 더 있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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