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일했는데...우리가 노예인가요?"

[기고] 명절 연휴에 현대기아차비정규직은 왜 농성에 들어갔나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성한 명절이 한가위(추석)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다사다난했던 일들을 나누는 때다. 그런데 명절연휴 때 집이 아니라 서울고용노동청에 농성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있다. 현대기아차비정규직들이다. 그들이 명절 연휴에 농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차가 ‘법원 판결이나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행정개혁위의 권고’에 반하는 특별채용이라는 꼼수를 썼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일 노동부 행정개혁위는 "법원 판결에 따른 직접고용 시정명령과, 현대기아차 원청사와 당사자인 비정규직지회와의 협의를 적극 중재하라"는 권고했다. 노동자들은 이제나 저제나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기다렸지만 노동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기아차가 특별채용 공고를 지난 20일 발표한 것이다. 게다가 특별채용은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전혀 논의 없이 발표했다. 이에 노동부가 빨리 시정명령을 내릴 것을 촉구하며 울산, 전주, 소하, 아산, 화성 등 전국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헷갈린다. 전날 보도에는 기아차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다고 보도됐기 때문에 왜 농성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기아차가 특별채용을 발표하자마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마치 비정규직 모두 정규직화되는 냥 왜곡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심지어 "기아차, 정부에 백기 들었다.. 사내하도급 100%정규직 고용"이라고까지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기아차화성공장에 다니는 여성비정규직들에게 특별채용이 뭐가 문제인지 들어보았다.

▲농성 중이 현대기어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명숙

소송과 근속, 체불임금을 포기해야 가능한 특별채용

함께 이야기를 해준 분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16년을 기아차에서 일한 베테랑 여성노동자다. 김명순 씨는 플라스틱부에서 범퍼를 가공하는 공정에서 12년차 일하고 있으며, 박찬진 씨와 최정은 씨는 PDI에서 검사업무를 14년차 일하고 있다. 김점순 씨는 10년째 플라스틱부 프론트리어에서 랩을 부착하는 일하고 있으며, 권연옥 씨는 운송반에서 완성된 자동차운송을 15년 동안 하고 있다. 김영화 씨는 PDI 15년차로, 검사업무를 하다 지금은 비검사업무를 일하고 있다. 그녀들에게 물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특별채용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아니라고 했다.

김명순 : 저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한다는 얘기를 정식으로 통고받은 적이 없어요. 주변에 소문으로 돌고 돌았어요. 몇 사람들한테 문자가 돈 것을 봐서 알았어요.
박찬진 : 일부 언론에서 대문짝만하게 정규직 전환이라고 나왔어요. 법원 판결이나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에서 현대기아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나왔을 때는 아주 조금 보도되더니 이번에 대대적으로 보도했어요. 근데 특별채용은 정규직 전환이 아니에요.
최정은 : 정말 황당해서 우리가 서울고용노동청에 올라온 거예요. 그렇게 방송이 나가면 사람들은 우리가 다 정규직 전환되는 걸로 오해할 거 아니에요.
김명순 : 특별채용에 응시 안 해도 정규직 전환되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정규직화시키겠다는 공식 문서도 없어요. 그러면 우린 잘리는 겁니까? 특별채용 안하면 잘리는 거냐? 응시해야 하는 거냐?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었어요.
김점순 : 우리가 노예도 아니고 왜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정규직과 협의를 하냐는 거지요, 사내비정규직 지회와는 협의를 안 했잖아요. 주체가 우린데 왜 정규직들이 마음대로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와 협의를 하냐고요. 행정개혁위에서 비정규직 지회랑 직접 교섭하라고 했는데 왜 기아차랑 정규직노조가 그렇게 하냐고요. 그리고 여성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법원 판결대로 하면 고용이 다 보장되는 거고 근속도 인정이 다 되는 건데, 우리가 근속도 다 반으로 깎아먹는 특별채용에 응시 할 필요는 없지요. 몇 달만 있으면 대법원 판결이 나올 텐데요. 그래서 특별채용에 반대하는 거죠.
박찬진 : 14년 일한 자리가 정규직이라고 판결이 났는데, 굳이 특별채용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특별채용은 경력 14년을 전부 인정하지 않고 일부만 인정하거든요. 게다가 소송도 넣었는데 특별채용 되려면 소송을 취하해야 해요. 소송을 취하하면 격려금을 준대요. 예전엔 500만 원인가 했는데 최근엔 150만 원이란 말도 있어요. 기아차에서 비정규직들이 소 취하하면 얻는 돈만 2000억이 넘는다고 해요.
최정은 : 14년 근속 인정이 안 되는 것만이 아니라 불법파견으로 받지 못했던 임금도 포기하라는 거예요. 호봉도 다 포기하고 특별채용으로 가라는 거에요. 김영화 대의원 같은 경우는 15년을 일하고 소송을 했기 때문에 받아야할 체불임금만 1억원이 넘어요.
김영화 : 근속만 반토막 내는 게 아니에요. 예전에는 야간근무가 있어서 심야수당까지 있었어요. 지금은 주간교대근무인데 근속 인정이 달라지니 퇴직금도 달라지는 거죠.

ⓒ명숙

특별채용은 해고 아닌 해고

특별채용은 비정규직들이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기아차가 하는 특별채용 방식은 비정규직들이 일하는 공정을 정규직 공정으로 바꾸고 거기서 일하던 비정규직들은 다른 곳으로 밀어내는 방식, 즉 강제전적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정규직 공정으로 바꾸겠다는 공정에는 다수의 여성비정규직들이 일하고 있어 사회의 관심이 매우 많았다. 정규직 남성들이 여성비정규직을 내쫓고 그 자리에 가려고 하면서 더 논란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박찬진 : 특별채용은 강제전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10여 년 동안 한 업체에서 일했는데, 그래서 나이가 50세가 넘은 분들이 새로운 곳에 들어가서 신입사원으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지난번에 점거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 공정은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공정이었어요. 파업을 끝까지 지킨 100명의 조합원 중 70%가 여성이었어요. 그런데 600명이 넘는 남성 정규직 구사대가 몰려 왔어요. 정규직 지부가 강제전적을 하지 않는 방안을 협의하자는 중재안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특별채용이 진행되면 그 합의도 깨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거지요.
김명순 : 10년 넘게 일해서 프로로 일을 잘할 수 있는데 생판 모르는 곳에 옮겨가지고 어찌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회사도 손해일 텐데. 저는 플라스틱부에 범퍼를 가공하는 후처리업무를 하는데, 범퍼가 틀에 내려오면 ‘리브가 부러졌네. 수축 왔네’ 콘베어어벨트 내려오기 전에 이미 눈에 보여요. 생판 모르는 곳에서 일하라니 저희들 내보내려는 것밖에 안 되잖아요.
박찬진 : 저도 PDI 업무만 14년을 해서 지나가도 봐도 '이건 사양이 틀렸다', '이건 핸들이 고급사양이니 어느 나라로 가는 구나'를 사양표를 보지 않아도 알아요. 오랫동안 숙련돼서 알 수 있는 거죠.
최정은 : 저도 PDI에서 오래 일해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어요. 제가 일하는 SJ아이테크는 검사와 비검사로, 외관과 실내만이 아니라 공정이 엄청 많아 복잡해요. 터치, 자재, 모형, 전산, 시핑, 투입 6개 공정이라 배울게 많아요. 그걸 다른 곳에서 오래 일했던 비정규직이 와서 배우려면 한참 걸려요. 그건 차를 대충 검사보고 내보낸다는 거나 다름없어요. 기아차 품질은 박살내겠다는 거죠. 특히 제가 하는 QC, 품질 검사는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이 돼요. 지금 손가락, 손목, 어깨 다 나가서 산재가 나왔어요. 이렇게 몸이 부셔질 정도로 일했는데 다른 데 가서 또 망가지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박찬진: 검사는 체력소모가 많은 공정이에요. 그래서 연세가 있으면 힘드니 50세 이상인 분들은 비검사 공정으로 하자고 협의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특별채용과정에서 SJ아이테크 20명 정도가 채용돼서 TO가 생긴 거예요. 이 자리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올 수 있는 자리가 된 거예요. 그런데 비정규직들도 10년 이상 일해서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아요.
최정은 : 일단 글씨가 안 보여요. 저희 검사지를 시트지에 글씨도 작고 영어로 돼있고 사양표를 보려면 영어로 돼있고.
권연옥 : 저는 15년 동안 완성차 운전을 했어요. 기아에서 나오는 전 차종을 다 운전해봤어요. 정년이 2년 남았어요. 2년 남겨두고 딴 데로 가서 일하라고 하니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김명순 : 보통 사람들이 다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은 배제가 되고, PDI 가려면 또 나이에서 배제가 돼요. 이렇게 어려운 절차를 왜 밟으려고 하는 거죠? 알 수가 없어요. 불법파견에 대해 1심, 2심 승소해서 일하던 자리에서 그냥 정규직화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이건 해고 아닌 해고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명숙

저희들도 라인 타며 정규직 남자들하고 같이 일했어요

기아차 비정규직 문제는 여성비정규직 차별로 유명해졌다. 그럼에도 여성비정규직들이 강제전적에 반대하는 이유가 마치 쉬운 공정에서 일하려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성비정규직들이 일하는 공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오랜 동안 숙련공으로 일한 여성노동자들을 몸이 병들 정도로 써먹고는 나이가 드니 다른 공정으로 보내는 것이다. 사실상 공장 밖으로 내쫒는 행위다.

박찬진 : 댓글 보면 가장 속상한 게 여성들도 라인타고 힘든 곳에서 일하라는 거예요. 저희도 콘베어벨트 타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성비정규직들이 쉬운 일하려고 전적하지 않는 거라고 하는데 사실과 달라요. 이미 우리들도 라인타며 정규직하고 남자하고 혼재돼서 일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김명순 : 저희도 정규직 남자랑 같이 일해요. 사내협력업체와 정규직이 붙어서 한 범퍼를 만들어요. 정규직 기사가 범퍼에 조건을 잡아줘요. 어떻게 보면 쉬운 공정은 정규직, 힘든 공정은 비정규직인데요. 그런데 임금은 정규직이랑 차이가 나요. 65% 정도만 받아요.
박찬진 : 제가 입사하기 전에 남자들이 일했던 곳이에요. 그러다가 제가 입사할 쯤에 여자들이 세심하니 검사하는 게 낫겠다고 여성들만 채용했대요. 엔진검사라고 원래 정규직 남성이 하던 건데 힘들다고 우리보고 넘겨준 거예요. 그런데 정규직이 자기 일자리 없어진다고 다시 이걸 뺏어가는 거야.
김영화 : 검사가 50세 정년이어서 검사로 일하다가 비검사로 내려왔는데 이것도 힘든 거예요. 체력이 막노동이에요. 체력이 좋아야 해요. 문도 열어봐야 하고, 수출도 늘어나면서 안내책자도 넣어야할 게 많아요. 자재 박스가 20킬로가 돼요. 매뉴얼이 든 안내책자가 든 박스예요. 수출차에는 넣어야 하거든요. 자재창구에서 라인별로. 콘베어 띄워주면 넣어줘야 해요.
최정은 : 비정규직이 하는 일들은 원청사람들이 하던 일 중 하기 싫어하는 거, 힘들고 지저분한 것들을 대부분 넘겨받은 거예요. 그러다가 기계화가 돼서 좀 편해지면 다시 정규직이 뺏고 있어요.
김명순 : 진짜 정규직을 시키려면 조건이 그대로여야지요. 저희가 싸워서 여성샤워장, 휴게실, 화장실 만들었는데 새로운 데 가면 여자화장실도 제대로 없어요. 그리고는 우리가 일하던 자리에 있던 화장실을 깨부수고 다시 남자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누가 봐도 이건 말도 안 되는 방법이죠.
박찬진 : 반면에 전적돼서 갈 곳에는 제반 시설이 없어요. 샤워기도 없고 여자화장실도 없고.
최정은 : 이전에 특별채용으로 간 여자들은 물도 못 마시고 있대요. 화장실 가려면 멀어서요. 여성들이 소수니까 남성들한테 성희롱 발언 들어도 말도 못하고.

특별채용, 줄이면 특채다. 특채라면 특혜를 조금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이건 노동자들에게 손해투성이다. 반면 현대기아차그룹은 소송취하로 막대한 돈을 벌수 있고, 불법파견에 따른 처벌도 피할 수 있다. 법원판결에 따라 지급해야 할 임금체불과 근속에 따른 각종 임금 수천 억 원을 떼먹을 수 있다. 노동부가 직접고용 이행명령을 내리면 사업주는 평일 기준으로 25일 안에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노동자 1명당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누가 봐도 현대차 재벌에게 일방적인 이익을 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정규직화라고 거짓선전을 한다.

이렇게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현대기아차 비정규직들만 특별채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전적과 임금삭감, 근속삭감의 위협에 처한 것이다. 이미 노동부는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 9200여개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데다, 법원 판결까지 나오고, 최근 행정개혁위 권고까지 나왔으니 ‘직접고용 이행명령’을 해야 마땅하다. 이제라도 노동부가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들이 집에 가서 명절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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