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탈국가주의? 탈핵부터 지지하라!

[초록發光] 국가주의 비판하며 핵발전 옹호하는 모순

김병준 교수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 청와대 정책실장과 국무총리까지 했던 인물이, 반대편 정치 진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놀랍지 않다. 참여정부 시절 황우석 박사를 옹호하고 진실 규명을 거부했던 '황금박쥐 김병준'의 변신은 예고되었던 것이다. 당시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자신도 속았다며 발을 뺀 수많은 인물들과 비슷하게, 유리한 쪽으로 언제든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다.

그 김병준 위원장이 '탈국가주의'를 외치면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내려온 국가주의 전통을 이제는 우리가 떨쳐내야 한다"며, 그 예로 '먹방 규제'나 '원가공개'를 들었다. 그러자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아동·청소년 건강을 지키고 비만관리 대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노력"을 국가주의라면, 동일한 정책은 가진 유럽과 미국도 모두 문제될 것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당대표에 출마한 이해찬 의원도 방송 토론에서 이를 두고 사회자와 격론을 벌이는 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쨌든 '(탈)국가주의'가 화두가 되었다.

난데없어 보이는 김병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 주장은 본인에게는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의 구원 투수로 등판하기 전부터, 비대한 국가와 강력한 관료 지배를 '국가주의'로 비판하면서 이를 대신할 '자율주의'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율주의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는데, 해석에 따라서는 '국가 대신 시장'을 앞세우는 시장주의일 수도 있고 '그 둘 모두를 견제할 시민사회 혹은 공동체의 강화'를 말할 수도 있겠다. 자유한국당의 시장주의로 쉽게 경도되지 않을까 싶지만.

김병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 비판은 처음에는 제법 개혁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에 자리잡은 개발국가에 대한 비판도 잠시 담았기 때문이다. 당 내부를 향해 "박정희식 국가 개입에 동의하는 사람은 같이 갈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 강력보수 세력들이 반발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의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어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발 물러났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 다시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국가주의의 오랜 전통 계승자인 자유한국당의 우두머리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김병준 위원장의 '국가주의' 비판은 이제 그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할 때만 빼어드는 칼이 되고 있다. 지난 9일 그는 경주를 방문하여 한수원 노조들와 간담회를 가졌다. "세계적으로 이제는 원자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데 실패한 길로 가겠다는 정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한수원 노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탈핵정책은) 결국 국민들에게 부담이 증가될 텐데 대체 국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이래도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탈핵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약점이라 생각하고 공세를 취하는 기존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김병준 위원장의 '국가주의' 비판에서 보자면, 핵발전만큼 국가주의적인 것이 또 있겠나?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개발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겠다며 고리 1호기를 건설하여 시작한 핵발전 사업은 국가 기구를 체계적으로 동원하여 만들어내고 법제도에 의해 보호한 산업이다. 기술과 차관 도입을 위해 국가적 외교 수단이 동원되었으며, 핵발전소 부지 확보를 위해서 각토지를 강제로 수용했다. 또한 국가가 소유․투자한 한전(과 그 자회사인 한수원)이 그 건설과 운영을 맡았으며, 만약의 사고시에 발생할 피해 보상 책임을 줄이는 법률도 제정되어 있다. 시장 경쟁도 없고 국회와 시민사회의 감시로부터도 거의 벗어나서 있는, 국가의 의한 독점 산업이었다.

핵발전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여러 대형 사고를 거치면서 해외의 핵발전소 안전 비용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처럼 그 비용을 면제하거나 대신해주는 국가의 역할이 없다면 결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일부에서는 그것이 값싼 전기를 공급한다는 '에너지 공공성'을 위해서 필요한 국가 개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만 박정희식 국가개입에 비판적인 김병준 위원장이 자신의 소신을 꺽지지 않는다면, 문제인 정부의 탈핵 정책도 지지해야 올바른 것이다. 국가가 보호해오던 핵발전산업에서 이제 손을 떼자는 것이니까. 박정희 국가주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유한국당 우두머리에게는 어려운 일일까?

이제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지만, 김병준 위원장의 '탈국가주의'는 나름의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와 '강남 세모녀' 사건으로부터 '국가의 부족'을 절실히 느꼈지만, 또 '4대강'과 '밀양 송전탑' 사건에서 '국가의 과잉'도 뼈저리게 체감했다. 김병준 위원장이 '탈국가주의'로 동원하고 문제인 정부에 맞세우려고 했던 것은 '국가의 과잉'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과 저항심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과소'로 겪는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은 외면하는 대신, 국가에 의해서 보장된 값싼 전기료의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의 행복이 그의 '탈국가주의'의 목표일지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김병준의 '탈국가주의'가 아니라, '국가기구의 민주화'(장석준)다. 민주화해야 할 대표적인 국가기구가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다. 그 핵발전소를 세우려는 노력은 국가의 부당한 개입이 아니고, 꼭 필요하지만 방기해왔던 국가의 역할이자 민주화 방안이다. 오히려 위험을 숨기고 시민들을 억압해온 핵발전소를 국가의 보호 아래에 계속 확대해온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김병준의 '탈국가주의' 논쟁에서 그나마 얻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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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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