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인종은 영원한 아동?"…입양과 식민주의

[해외입양인, 말걸기]<인종간 입양의 사회학> 서평

해마다 5월이면 우리 사회는 가정에 관련된 각종 기념일들을 지키느라고 분주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부부의 날 등등. 그런데 지난 해부터 귀환입양인단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TRACK)>과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한국한부모연합회>와 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 집>이 공동으로 "싱글맘의 날"을 선포하여 지키고 있다. 한 달을 온통 가정의 의미를 새기는 날들로 채우고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가정을 그 본의대로 지켜가는 일이 간단치 않은 사회임을 반증하는 일이리라.

그런데, 다른 기념일들과 다르게 "싱글맘의 날"은 소위 정상가족의 강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날 혹은 가부장제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위 정상의 범주로부터 비껴나 있기 때문에 편견과 차별에 노출된 미혼모와 그 자녀들의 권리옹호의 목소리를 내는 날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싱글맘의 날"의 공동 주창 기관 중의 하나인 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 집>은 5월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을 <싱글맘의 날 기념 국제컨퍼런스>의 사전행사의 하나로, 저명한 미국의 인종간 입양인들의 저작집 『Outsiders Within』을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고 오는 5월 3일 출판기념회를 연다. 이 출판기념회의 연사로 참가하는 미국 오하이오주 위튼버그 대학 여성학 교수인 로리 아스크란드(Lori Askeland)가 이 책의 서평을 본지에 보내왔다. 이 글은 『함석헌 평전』 저자인 김성수 씨가 번역했다. 편집자


▲얼마전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던 한 스튜어디스가 입양아를 업고 있는 사진. ⓒ뉴시스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은 미국의 언론들, 특별히 '입양관련 온라인 블로그들'에서, 가장 논쟁적인 책 중의 하나다. 논쟁의 한 축을 이루는 사람들은 해외입양 아동의 입양부모나 예비 입양부모들이다.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종종 이들은 이 책에 대해 방어적으로 접근한다. 그들의 방어적 태도는 자신들이 입양과정에서 진정으로 수고에 찬 감정적 투자를 하는 일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결국 그들은 해외입양 혹은 인종간의 입양의 문제를 개인적인 사랑의 수고라는 지평에서 이해하고 바로 그 점이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지렛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소설가이자 입양부모인 타마 야노위츠 (Tama Janowitz)는 2007년 <뉴욕타임즈>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하여 못마땅한 심사를 드러내었다.

"(이 책을 쓴) 중서부(Midwest)의 많은 아시아계 입양인들은 지금 30-40대 에 들어섰고 입양에 대해 비통한 마음으로 불평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자신의 입양부모를 원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야노위츠 이러한 언급은 훌륭하고 다양한 글이 실린 이 책의 내용뿐 아니라 필자들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필자들은 20대에서 50대이며, 아시아계 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군을 망라하고 있다. 아울러 필자들 전부가 입양인도 아니며 미국인만도 아니다. 그러니 "중서부의 많은 아시아 입양인들"이라는 야노위츠의 기술은 심각하게 이 책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들 대부분은 이 책에서 입양에 대해 비판적인 표현을 하지만, 그 비판의 초점이 입양부모 자체에게 집중해 있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자신의 입양부모나 입양가족에 대한 것도 아니다. 필자들의 비판은 국가간 입양에 관여한 입양기관들이 종종 지니고 있는 비윤리성과 착취, 막대한 이윤, 크게 방치된 다국적기업으로서의 특성 등과 관련한 국가간 입양 제도 그 자체의 본질과 문제점을 향하고 있다.

많은 입양인들은 오늘날의 국가간 입양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지만 그로 인해 마치 자신들이 입양부모를 '미워'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개한다. 야노위츠의 칼럼은 그래서 입양부모인 나를 포함한 많은 입양인들로부터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나는 입양부모이며, 입양기관들에 대해 비판적이며, 미국 중서부 사립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나는 학생들에게 입양의 역사와 문학에 대해 가르칠 때, 특별히 이 책『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을 사용한다. 내 학생들은 대부분 미국문화언론을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 전문직 출신자녀이거나 장래 그렇게 되기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이다. 이 학생들의 계급적 인식이 의미하는 것은 향후 이들 중 다수가 언젠가는 입양할 가능성을 꿈꾸면서 수업에 참여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은 내 삶의 컨텍스트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찬자와 필자의 다수가 인종간 입양인 당사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권위와 진정성에 기초해서 전문적인 발언을 한다. 이 책은 또 나와 같은 입양부모와 연구자들, 그리고 나의 학생 중 일부와 같이 잠재적 입양부모들에게 큰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입양산업과 제도에 연루된 입양문제의 복합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결국 국가간 입양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의 삶의 전기는 이러한 과업을 위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첫 장인 "마늘과 소금"에서 수나(Soo Na)는, 친모가 그녀에게 첫 6년을 한국에 살았을 때의 사진을 보내 준 일에 대한 감사로 글을 시작한다. 그녀는 상실감 때문에 겪는 외로운 느낌을 묘사한다. 그녀의 입양부모가 미국 주류사회의 입양문화에 깊이 젖어 있었고 그녀가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을 위협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회상한다. 한국가족과의 즐거운 그녀의 백일잔치 사진은 자신이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이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고, 그녀는 자신의 상실감을 예민하게 느낀다.

이 상실감은 자기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한국가족의 결정에 대한 분노나 혼돈이 아니다. 개인 체험담을 넘어서, 내 학생들은 이 책에서 김박넬슨(Kim Park Nelson)이 주의 깊게 학문적으로 보여준 해외입양에 있어서 "아동 쇼핑"과 "장터"라는 언어와 특별한 씨름을 해야 했다. 미국인들은 아동을 구입한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인간을 매매하는 것은 노예제도와 같고, 그것은 불법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입양이 노예제도나 인신밀매와 유사하다는 것에 대해 당황해 한다.

150년 전, 남북전쟁 이전에는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합법이었고 이 노예제도는 인종차별주의와 식민주의를 바탕으로 구조화된 것이었다. 백인들은 유색인종을 노예로 만들거나, 차별하거나, 심지어 죽여도 될 권리가 있다고 믿었고, 유색인종은 아동으로 있을 때가 최고로 좋으며, "야만인인 성인"으로 있을 때가 최악이라고 여겼다. 백인들은 노예제도를 통해서 야만인들을 "문명화" 시키는 것이라고 믿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노예제도의 본질은 백인들의 이익을 위한 무료노동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주에서 노예들에게 글읽기를 가르치는 것을 불법화 한 것을 주목해보라.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서양 문명의 본질에 접근 할 수 있었겠는가? 인종간 입양은 유색인종을 영원한 아동으로 보고 이 아동을 조정하고 이끄는 것은 서구인들만이 할 수 있다는 식민주의 유산이다. 이 책이 인종간 입양이 노예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드러내어 주고 있는 바,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내가 가르치는 초기 미국문학 강좌의 교제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나는 종종 첫 흑인 미국 작가로 1773년 책을 발간한 필리스 위틀리(Phillis Wheatley)의 작품을 통해서 내 학생들의 현재 삶과의 연관성 찾기를 시도한다.

필리스 위틀리는 7살 때 아프리카 흑인가족의 품에서 납치되었고 노예선에 실려 메사추세츠주로 끌려갔다. 거친 항해로 인해 그녀는 거의 죽을 뻔 했고, 그 결과 그녀 건강은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그녀는 신동이었다. 영어에 대해 완전 문맹자였던 그녀가 미국에 도착한지 16개월 만에 어려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1살의 나이에 영어로 첫 시를 썼고 라틴어를 배웠다. 미국을 만든 많은 선조들은 그녀가 쓴 시를 즐겨 읽었다. 외교관, 발명가, 미국헌법 작성자의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런던에 갔을 때 마침 그곳을 여행 중인 그녀를 몹시 만나고 싶어 했다. 프랭클린은 필리스 위틀리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을 위해 시를 썼을 때 많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를 직접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독립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은 그녀의 작품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노예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논쟁할 때 그녀 이름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그녀가 미국의 독립이라는 혁명기의 흑인여성시인으로 살았지만, 미국학생들에게 필리스 위틀리는 대단한 "혁명론자"로 비쳐지지는 않는다. 미국학생들은 흑인 작가들이 노예제도에 대항해 싸운 사람일 경우에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강하고 반란적인 언어를 쓰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나 말콤 엑스를 존경한다. 필리스 위틀리의 언어는 반란적이지 않다. 사실 그녀는 한 시를 통해, 아프리카 가족의 품에서 그녀를 노예로 데려 온 것은 백인들의 "자비"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종종 백인 가족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는 반면 아프리카는 어둡고 미개한 "이교도"의 나라로 표현한다. 마치 그녀는 노예제도를 좋은 것으로 찬양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필리스 위틀리에 대해서 가르칠 때,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에 나오는 스웨덴학자 토비아스 휘비네트(Tobias Huebinette)의 글을 인용하는 데, 휘비네트는 노예제도와 입양제도의 근본적, 구조적 유사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의 다른 필자 존 레빌(John Raible)은 인종간 입양을 통해서 입양인이 백인 입양부모의 보호구역인 가정을 떠나서 성인의 세계로 들어가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도전과 어려움에 대해 논의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필리스 위틀리가 쓴 대부분의 시들은 10대의 나이에 쓴 것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당시 그녀는 노예의 신분으로 위틀리 가족의 집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위틀리 가족은 그녀에게 가정, 의료지원, 좋은 교육은 물론, 런던에서 책을 출판 할 수 있도록까지 지원을 베풀었다. 위틀리 가족은 그녀가 런던에 가서 의료 진단을 받고 그녀의 시집을 출판할 의도가 있는 출판사와 만날 수 있도록 모든 여행비용도 지불했다. 당시 미국 출판사들은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하더라고 흑인여성이 쓴 글을 출판 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위틀리 가족이 필리스를 노예신분에서 해방시키고 나서, 필리스가 성인이자 자유인이 되어서 쓴 글들 몇 편은 더욱 복잡하고 과격하다. 그녀는 미국인들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자유와 사랑을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은 특별히 위선적인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노예무역업자들이 자신을 부모의 품에서 빼앗아 데려온 것은 가장 잔인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자기 친부모의 슬픔과 고통을 상상하며, 이러한 체험으로 인해 자기가 노예제도를 지긋지긋하도록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변화된 이러한 시각은 그녀가 위틀리 가정을 떠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그녀가 위틀리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었을 지를 짐작하도록 이끈다. 그녀가 어떻게 자기를 아프리카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폭력적으로 훔치고 납치해서 노예상인을 통해 자기를 말 그대로 사들인 것을 알면서 위틀리 가족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위틀리 가족은 심지어 그녀를 아프리카에서 납치해서 데리고 온 배의 이름을 따서 그녀 이름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위틀리 가족을 사랑하지만 자기를 폭력적으로 친부모 품에서 데려온 것을 사랑의 행위로 정당화 해주는 기관을 미워할 수 있을까? 그녀가 아프리카에 있는 친부모의 상실에 대한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동시에 어떻게 위틀리 가족의 친절을 거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많은 저자들은 입양에 대해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위틀리의 성인기는 비극적으로 짧았고 거의 침묵으로 일관 했는데, 그녀가 고등 교육을 받은 흑인 성인으로 백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인종간 입양인들도 직면하는 문제다. 백인 출판사들이 그녀의 작품을 출판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집필활동으로 더 이상 생계를 유지 할 수 없었고, 그녀의 계속적으로 약한 건강상태는 다른 흑인여성들이 하도록 기대되는 중노동을 할 수가 없도록 했다. 더욱이, 가장 비극적인 바, 그녀는 다른 흑인들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었는데 그것은 미국북부의 노예들은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특별히 적절한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시 백인 남성들은 흑인여성과 결혼하지 않으려 했고 그녀가 살고 있던 보스톤 지역에 사는 흑인남성 중 그녀만큼 교육 받은 자유인은 극히 드물었고 종종 변변한 직장도 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경험은, 현재 입양인들의 모습과 똑같지는 않지만, 미국에 사는 인종간 입양인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의 필자들이 쓴 체험담을 통해서, 나는 비로소 필리스 위틀리가 겪은 삶을 내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이 책이 없었다면 필리스 위틀리의 삶과 문학을 생생하게 내 학생들에게 전달 해 주는 일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나에게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은 단순히 "입양에 대한 불만"을 수집한 책이 아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입양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도구이며, 동시에 과거의 "죽은" 문학의 내용을 생생하게 살려내서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이었다.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 몇몇은, 다른 대륙의 가난한 엄마를 지원함으로써 대륙간 인종간 입양으로 그들이 그들의 자녀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실천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봉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제 대부분의 해외입양을 더 이상 고귀한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울러 해외입양이라는 것이 입양인들을 제대로 성장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선택처럼 여기지도 않는다.

# 제2회 싱글맘의 날 기념 국제컨퍼런스는 5월 1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중강당 규모의 시설)에서 "새롭게 쓰는 모성권과 아동인권: 입양을 넘어 싱글맘 가족 보호로!"라고 하는 주제로 열린다. 독자 제위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 제2회 싱글맘의 날 기념 사전행사로 열리는 『인종간 입양의 사회학』출판기념회는 5월 3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은평구에 소재한 인수원에서 열린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집> 전화 02 3210 2451로 연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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