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권력'과의 긴 싸움, 노회찬은 전사했다

[장석준 칼럼] 우리 모두 노회찬이 되자

때로는 말 하고 글 쓰는 직업이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 세상에는 말문이 막히고 글월 한 줄 적기 힘든 때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글과 말보다는 신음과 비명이 인간에게 더 어울리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노회찬 의원이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고 갔다. 청천벽력 같은 죽음과 이 마지막 말 앞에서 나는 그저 신음을 토할 뿐이다. 비명을 더하지 못함은 오직 그의 부재가 아직도 실감나지 않아서다.

그래도 나는 글이란 걸 써야 한다. 그가 없는 세상도 일주일을 넘긴 지금, 그의 삶과 죽음을 쓰기도 참으로 어렵지만, 쓰지 않기도 불가능한 탓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노회찬이라는 큰 강 중 단지 한 지류만을 골라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하지만 한갓 지류라 하더라도 이는 그의 돌연한 죽음, 아니 차라리 장렬한 전사(戰死)와 직결된 이야기다.

고단했던 정치 역정과 '법제사법위원회'라는 운명

이 나라에서 진보 정치인의 길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노회찬의 정치 역정은 이런 일반론보다 훨씬 더 고달팠다. 웃는 얼굴과 보기 드문 유머에 가려 잘 안 보였어도 실로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세 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임기를 제대로 마친 적은 단 한 번밖에 없다. 다들 2004년 이후의 노회찬을 '국회의원' 노회찬으로 기억하나 정작 그 14년 동안 그가 현직 의원이었던 시기는 얼마 안 된다.

운명은 노회찬이 국회에 처음 입성해 상임위원회를 정하며 시작됐다. 그가 속하게 된 상임위는 흔히 법사위라 줄여 부르는 법제사법위원회였다. 모든 법률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거쳐 가는 곳이자 법무부, 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 기능 관련한 국가기구 일체를 다루는 곳이다. 당연히 법무부 산하인 검찰청도 포함된다.

얼핏 보면 막강한 상임위 같다. 실제 그런 측면이 있기도 하다. 법사위에서 옥신각신하면 본회의에서 법률안을 심의할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 안의 또 다른 국회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국회의원들은 법사위를 기피한다. 대다수 국회의원은 상임위 활동을 통해 지역구나 이익집단에게 선심 쓸 예산을 뽑아내길 바라는데, 법사위는 그럴만한 곳이 아닌 탓이다.

반면에 부담은 막중하다. 감시해야 할 대상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검찰이다. 노회찬이 처음 법사위에 배정받은 2004년 무렵에 이미 검찰은 가장 막강한 국가기구였다. 다들 민주화 이후 군부의 뒤를 검찰이 이었다고 했다. 대통령을 앞에 두고도 오만하기 이를 데 없던 TV 속 젊은 검사들의 모습이 이를 여실히 증명했다. 그런 검사 중 하나가 나중에 무능한 다른 대통령을 앞세워 국정을 주무르기 전에도 검찰은 엄연히 핵심 '권력' 기관이었다.

그런데 노회찬은 하필 이들을 상대하는 상임위를 택했다. 집권당이나 보수정당처럼 검사 출신 의원을 내세워 유착할 게 아니라면, 지극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한 검찰과 척을 질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핵심 권력 기관과 맞붙는 최전선이었다. 하지만 노회찬은 이곳에 뛰어들었고, 더구나 본연의 임무에 더없이 충실히 임했다. 이로써 그의 기구한 정치 역정은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회에 들어간 지 1년밖에 안 된 2005년에 벌써 비극의 첫 막이 시작됐다. 노회찬 의원은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에서 삼성의 '떡값(뇌물)'을 받았다고 언급된 전현직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 혹은 '삼성 X파일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자본권력과 결탁한 법복권력의 추악한 낯짝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떡검'이라는 유명한 속어가 바로 이 사건에서 유래했다.

그러자 법복권력의 반격이 시작됐다. 검찰은 노회찬 의원이 실명을 폭로한 '떡검'들을 기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노 의원과 또 다른 폭로자 MBC 이상호 기자를 명예훼손과 통신기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그들에게 도려내야 할 것은 자신들의 썩은 치부가 아니라 성역을 건드린 무엄한 좌파 야당 국회의원이었다. 어렵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에는 법률 기술자가 마음만 먹으면 무기로 쉽게 써먹을 수 있는 엉성하거나 부조리한 법률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재판은 장장 8년간 계속됐다. 반전에 반전도 거듭했다. 1심에서는 유죄였으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다 다시 2013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장은 양승태였다. 법원을 청와대의 시녀로 만들며 헌법질서를 교란한 그 양승태 말이다. 재벌과 손잡은 검찰이 시작한 보복극을 양승태의 대법원이 이렇게 마무리해주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저 '사법 적폐'란 노회찬이 맞서 싸우고 노회찬을 물고 뜯은 자들의 긴 목록에 다름 아니다.

2012년에 어렵사리 국회에 복귀했던 노회찬은 이 판결로 임기를 1년도 못 채우고 다시 야인이 됐다. 그러고 나서 다시 4년을 기다린 뒤에야 노회찬은 국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거의 10여 년 세월을 '삼성 장학생' 검사, 판사들의 그림자 속에서 고투했던 셈이다. 2004년 첫 당선 이후 그의 정치 이력 중 거의 전 기간이라 해도 좋을 기나긴 시간이었다. 법복권력에 정면으로 맞선 결과는 이토록 무시무시하고 참혹한 것이었다.

실은 이번 사건도 이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바라보기 힘들다. 허익범 특검팀이란 무엇인가? 결국 한 무리의 전현직 검사들이다. 그들이 다시 정치자금법이라는 손쉬운 수단을 동원해 노회찬 의원을 옥죄고 들었다. 애초 특검 임무와는 상관도 없는데도 드루킹 일당의 입에서 일단 '노회찬'이라는 이름이 튀어 나오자 만사 제치고 노회찬 수사에 달려들었다. 마치 노회찬은 그렇게 다뤄도 된다는 듯이 그들은 10여 년 전에 시작했던 그 수난극을 다시 시작하려 들었다.

특검팀에게 어떤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권력 집단과 연관 짓는 설명들은 지금으로서는 다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 없이도 사태는 이미 명명백백하다. 더 사악할 수가 없다. 법복권력 엘리트들에게 노회찬 의원은 딱 '삼성 X파일 사건'식의 대우가 맞는 대상이었다. 그들 집단의 권력에 감히 맞서기에 항상 그런 식의 대우를 통해 세상의 권력 우열이 어떠한지 만방에 증명해야 할 그런 대상이었다.

노회찬 의원은 이런 권력과 14년간 피 말리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너무도 낙천적이고 재기 넘치는 모습 때문에 우리는 그가 걷는 길이 근본적으로 비극의 색조에 더 가까움을 미처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가 둔감한 와중에 그는 바짝 조인 팽팽한 첼로 현처럼 일상을 살아가야 했다.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쪽에 내기를 걸며 이빨을 드러내는 자들에게 둘러싸여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죽음을 자결이라 하지 못한다. 그는 최전선에서 전사했다. 그가 마지막 서 있던 그곳은 그가 결코 후퇴를 용납 못한 최전방이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노회찬 의원의 비보가 전해지자 온 국민이 곧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장례 기간 내내 전국에서 긴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그가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거목이었음이 새삼 확인되는 장면이었다. 이와 함께 언론 지면과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는 이런 정치가를 너무 빨리 떠나보내게 만든 우리 안의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정치 후원금을 내는 문화가 더 확산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부조리한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 옳은 말이고, 반가운 각성이다. 그러나 아직도 뭔가 부분에만 맴도는 느낌이다. 전체 그림은 훨씬 더 심각하고 절박한 사태를 보여주지 않는가? 마치 기무사의 계엄령 준비 문건이 한국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위태로운 지반 위에 서 있음을 드러낸 것처럼, 노회찬 의원의 비극 역시 승리의 노래를 구가하던 이 나라 민주주의의 초라한 맨 얼굴을 폭로한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대중이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력이란 대의권력, 즉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위임된 권력뿐이다. 대통령, 자치단체장,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이 수행하는 권력 말이다. 헌법은 마치 이것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유일한 권력인 듯 서술하며, 그래서 선거를 통한 공직자 선출로써 주권자의 힘이 충분히 발휘되는 것 같은 착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현실에는 헌법 조문과는 상관없는 다른 막강한 권력들이 존재한다. 국가기구 바깥에는 자본권력이 있다. '재벌 공화국', '삼성 공화국'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염두에 두는 그 권력이다. 또한 국가기구 안에도 비선출직 공직자들의 권력이 있다. 위에서 '법복권력'이라 칭한 검찰과 법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마도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으로는 '제복권력'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대의권력 말고 다른 여러 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이들 권력 사이의 우열이 헌법의 약속과는 정반대라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물론 두 가지 서로 다른 경우가 있다. 하나는 대의권력이 자본권력, 제복권력과 화합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대의권력이 나머지 권력들과 긴장하거나 대립하는 경우다. 노회찬 의원의 정치 역정은 후자의 상황에서 권력들 사이의 위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대의권력은 자본권력과 결탁한 제복권력에 무참히 짓밟혔다. 헌법이 정한 대로 '대의'에 충실하고자 한 선출직 공직자는 국가기구 바깥의 더 큰 권력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를 맺은 비선출직 공직자들에게 포위되고 탄압받고 함정에 내몰렸다. 이를 위해 법복 엘리트들이 동원한 무기 중에는 선출직 공직자와 주권자의 이러저런 연결을 규정하는 법들, 즉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도 있었다. 비선출직 권력에 맞서 감히 대의정치의 영토를 넓히려 드는 정치가의 싹을 자르는 데 이보다 더 모양새 좋은 수단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자금법을 다시 봐야 하지만, 각성이 여기에 그쳐서도 안 된다.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등이 저 모양이 된 데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정치관이 커다란 몫을 했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대의정치란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권력들 중에 그나마 자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권력, 다른 권력들을 제압할 수 있는 하나뿐인 수단이 아니다. 단지 다른 권력들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권력, 그래서 '활성화'하기보다는 '규제'해야 할 무엇일 뿐이다.

물론 자유한국당 같은 세력이 오랫동안 대의정치의 주된 행위자였으니 이런 정치관이 자생적으로 뿌리내릴 만도 하다. 그러나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환멸 때문에 정치의 영역을 축소하자는 정치관은 가장 무시무시한 권력자들을 위한 백지 수표였을 뿐이다. 대의정치 공간이 줄어들수록 그곳을 채운 것은 자본권력과 제복권력의 굳건한 동맹이었다. 약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하나뿐인 무기를 불태우는 곳에서 강자들의 독재가 번성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 선 곳에서 끝까지 깊은 절망 하나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중의 이 자기파괴적인 정치관이 아니었을까. 이것이야말로 그가 빠져나올 수 없었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덫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애도는 애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 아쉬움과 미안함, 절망과 체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집단적인 깨달음이 일어나야 한다. 자본권력과 제복권력의 실상을 깨닫고, 대의권력을 이들에 맞설 우리의 무기로 만들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개혁이란 국회 의석을 한 석이라도 줄이거나 선출직 공직자들의 손발을 묶을 장치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노회찬'들로 국회를 채우고 이들 '제2, 제3의 노회찬'들이 제대로 '대의'하는 정치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을 제압해가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깨달음 속에서 노회찬은 살아 돌아올 것이다. 그가 "당당히 나아가라"고 한 그 방향, 더 이상 자기경멸과 자기파괴의 수렁에서 헤매지 않는 민주공화국, 어떤 엘리트도 주권자 위에 서지 못하는 그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노회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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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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