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 번역은 다른 사람이 씹어 토해낸 음식물 같은 것

[최재천의 책갈피]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중생(衆生)'이라는 단어는 유교 경전의 하나인 <예기>에 '중생은 반드시 죽고, 죽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쓰여 있는 것처럼 불교 전래 이전부터 사용한 말이다. 불전에서는 범어 '사트바'의 번역어로 사용하고 후대에는 '유정(有情)'으로 바꾸어 말하게 된다. '사트바'는 '존재하는 것, 살아 있는 것, 생명 있는 것'을 의미하고, 깨닫지 않는 한 윤회전생 하는 존재를 표현한다."

성경의 번역보다 방대한 규모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한역 불전은 산스크리트어·팔리어·간다라어 등 인도어로 쓰인 원전을 고대 중국의 문자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성전을 인도의 말 그대로 전승하는 것이 아니라 한어로 바꾸고 한자로 사고함으로써 원래는 외래 사상이었던 불교는 한자 문화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갔다. 인도의 '수트라(sūtra)'가 중국에서 '경전(經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일본 교토대학 후나야마 도루 교수의 <불전은 어떻게 한역되었는가-수트라가 경전이 될 때>가 번역됐다. 한국어판 제목은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한자 문화권에서의 '불교'의 탄생>(푸른역사 펴냄).

역자 이향철에 따르면 "한역 불전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대학원 시절 읽었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이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던 시절 도올 선생의 책을 접하곤, 완벽하게 몰입했다.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사고체계는 온전히 도올 선생의 덕이다.

불교 전래 이전에 '세계(世界)'라는 단어는 없었다. '세'와 '계'를 합해 숙어로 사용한 예는 불전이 처음이다. 범어 '로카 다투'의 역어로 사용했다. '선(禪)'이란 단어는 본래 천자의 '선양(禪讓)'이나 '봉선(封禪)'과 같이 하늘에 제사 지낸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불교에서는 범어 '드햐나', 팔리어의 대응어 '쟈나'의 음역으로 사용한다. '선정(禪定)'이라고도 하는데, '선'은 음역이고, '정'은 마음을 하나에 집중한다는 의역이다.

음역하려고 해도 적절한 음을 한자어로 나타낼 수 없는 경우는 어떻게 했을까. 예를 들면 '탑(塔)', '승(僧)', '살(薩)', '발(鉢)', '가사(袈裟)' 등은 불교 경전의 번역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글자들이다. 불교 전래 이전의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대한 번역자 구마라집은 "(불전 번역이란) 다른 사람이 씹어 토해낸 음식 같은 것"이라 했다. 궁극적으로 번역은 불가능하다는 것. 한자 문화권에서의 불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후나야마 도루 지음, 이향철 옮김) ⓒ푸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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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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