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의 일대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한반도 비핵화 협상, 동남아시아의 경제적 약진, 남중국해 분쟁 등이 채우고 있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중국과 미국의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이 되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거대 통합경제권 형성을 목표로 하는 일대일로에 협력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추구할 것인지, 기존의 동아시아 해상권과 안보 질서를 유지하던 미국의 편에 설 것인지 갈등하면서 어느 편에 서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있다.
여기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자유무역과 이익공유를 앞세운 경제통합을,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은 보호무역과 안보를 내세우고 있어 동아시아 국가 이익에 대한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의 부활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잇는 거대 경제통합 프로젝트인 일대일로 정책을 주창한 이래 세계 곳곳에서 철도, 도로, 항만, 댐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대일로는 정책구통(政策溝通), 시설연통(設施聯通), 무역창통(貿易暢通), 자금융통(資金融通), 민심상통(民心相通)등 5통을 기본 이념으로, 공상(共商 : 공동 협상), 공건(共建 : 공동 건설), 공향(共享 : 공동 향유)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이러한 형태의 경제협력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성장을 돕고 침체된 세계 경제에 신(新)성장동력을 제공하여 이익공동체, 운명공동체, 책임공동체를 실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 일대일로가 발표됐을 때만 해도 이는 세계 경제 변화의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됐다. 세계의 많은 국가가 앞다퉈 중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공동 사업에 착수했으며, 현재 참여 국가와 국제기구가 100여 개에 이른다.
2017년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일대일로 관련 총 61개국 8157건의 건설을 수주하였고, 20여 개국에 56개 경제협력구(經濟協力區)를 건설했으며 18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북방·남방정책과 중국 일대일로의 연계를 통해 한중 경제협력을 강조했고 한국 정부도 협력사업 모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급속한 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중국의 지역패권주의, 중화사상의 부활과 중국몽(中國夢)의 실현, 둔화된 중국 경제의 활로 모색, 국내 과잉생산 해소, 안정적인 에너지 루트 확보, 해상실크로드 권역의 해상권 장악 등 중국이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는 전략적인 과정이라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특성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실제 최근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대일로의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처음 각국의 협력을 얻어낼 때 설파하던 일대일로의 이념과 현재의 패권주의적 성향이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의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패권주의, 중국식 경제 질서의 확산, 중국 자본에 의한 시장 잠식 등에 대한 우려와 일대일로 협력 국가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경제 주권 침해, 불공정 계약, 반중 감정 확산, 환경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일대일로 사업관련 피해 소송이 2만 건이 달하며, 사업 중단, 지연, 전면 재검토 등 협력 국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2017년 12월, 스리랑카는 운영적자와 부채로 인해 함반토타 항만 운영권(99년)을 중국에 양도했고, 파키스탄의 과다르항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이라 예상된다. 파키스탄 바샤댐, 네팔 부디 간다키 수력발전댐 건설이 중국의 이익 독점 논란으로 중단됐고, 인도네시아 첫 고속철(자카르타-반둥)은 2년 동안 공사가 10% 진척된 데 그쳤다.
2018년 5월 정권교체를 이룬 말레이시아는 14조 원에 달하는 고속철도 사업을 중단했고, 인도는 중국이 협력 국가의 주권, 영토 등에 관한 핵심이익 침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일대일로 협력을 거부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러시아도 중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세계 경제를 재구성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2018년 6월 베트남 하노이, 호치민 등에서 중국 투자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경제특구 건설에 반대하는 반중 시위가 격화되기도 했다.
글로벌개발센터(CGD) 자료에 따르면 2017년까지 중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68개국에 지원한 자금은 총 8조 달러(한화 약 8552조 원)에 달한다. 대부분의 일대일로 협력국은 사업 참여 후에 부채 비율이 35%에서 126%로 급증했고,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하며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저개발 국가는 금융 취약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부티, 파키스탄, 라오스, 몽골, 몰디브,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몬테네그로 등 8개국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이 자금을 지원해 아시아와 유럽 34개국에서 추진하는 교통 인프라 사업 89%가 중국 기업들을 시공사로 선정하여 계약했으며 현지 국가나 제3국에 배정된 몫은 11%에 불과했다.
일대일로 사업자금 조달도 원활하지 못하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중국개발은행(CDB) 등이 자금 조달에 힘쓰고 있지만 실제 필요 자금과 조달 자금 간의 격차가 한 해에 최대 5000억 달러(한화 약 530조 원)에 이른다. 이러한 자금 부족은 중국의 과도한 투자와 낮은 수익률로 인한 민간 금융기관과 투자자의 참여가 저조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일대일로에 대한 우려와 사업 중단은 현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스스로 주장하는 '화평발전'의 가치 아래, 이익 공유를 바탕으로 한 일대일로 이념을 실천하고 창출된 이익을 협력국가와 공정하게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경제발전, 한반도 비핵화 등 경제·외교·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직면한 주요 현안과 중국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과의 지속적인 경제 협력과 발전, 중국의 산업 고도화에 따른 새로운 경제협력모델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의 일대일로 참여는 동남아시아나 동유럽 국가들과는 다른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일대일로의 문제점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관련된 협력 사업 참여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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