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고혈압 약은 누가 책임지나?

[서리풀 논평] "영리형 '의약품 체제', 발암물질 스캔들은 계속된다"

이젠 "잊을 만하면 터지는"이라는 표현도 물릴 정도다. 화학물질이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문제가 일상화되는 중이다. 종류가 많아지고 범위도 점점 더 넓어지니, 이번에는 고혈압 약 원료에 포함된 발암물질이다.

먼저 내용을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 중국 회사에서 고혈압 약 원료(발사르탄)를 만들어 공급하는데, 유럽의약품안전청이 이 원료 안에 불순물로 발암물질이 들어있는 것을 밝혔다. 이 회사 원료로 만든 회사는 판매가 금지되었고 약을 복용하던 환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 약을 쓰던 사람도 곧 암이 생길 것처럼 지나치게 겁낼 필요는 없다는 것부터 명확히 해둔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 분류 방법으로는 이 발암물질(NDMA)이 '2A'에 속하는데, 이는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발암추정물질)을 뜻한다. 발암물질이라 해서 '내일' '모두'가 암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이 군에는 동물에서는 발암 증거가 명확하나 사람에게는 증거가 부족한 물질들이 포함되는데, 교대근무, 기름으로 튀긴 음식,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은 붉은색 살코기도 여기에 속한다. 참고로 흡연이나 가공육(햄, 소시지)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증거가 확실한 '1군' 발암물질이다.

교대근무와 같은 수준이니 마냥 안심하거나 잊어버리자는 뜻은 아니다. 마땅히 정밀 분석을 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이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 혼자 알아서 약을 끊고 암을 걱정할 정도로 지나치게 겁에 질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7월 15일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 첫머리에 올라 있는 정보를 참고하면 되겠다(☞바로 가기).

건강 효과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명되더라도 책임 문제는 남는다. 이 약을 복용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더 건강하자고 먹던 약이 암의 원인이 될지 모른다니. 누가 잘못해서 생긴 일인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보상이나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건은 책임을 가리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생기지 말아야 할 사건인 것은 분명하나,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잘못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외국에 있는 한 회사에서 원료물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것도 공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지 아닌지, 책임을 지는 방식이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것까지 모니터링하고 관리하지 못 했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외생적' 사건에 대해 공식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혈압액 원료 이외에도 수많은 원료의약품이 수입되고 약으로 만들어진다. 2017년에만 18억 달러가 넘는 원료의약품을 수입했고, 국가별로는 중국산 의약품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관련 기사 : 의약품 수입 1위, '완제는 영국, 원료는 중국').


액수도 액수지만, 종류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원료 생산에 들어가는 또 다른 원료와 생산 과정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수입되는 의약품과 원료를 제조과정부터 낱낱이(한 가지 한 가지) 통제·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암물질을 비롯한 화약물질의 위해는 한 가지 어려움이 더해진다. 그동안 괜찮다고 쓰다가도 과학과 지식이 발전하거나 여건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위험이 되기 때문이다. 위험은 불확실하고 지식은 불완전하다. 결국, 정도 차이는 있을망정 약품(또는 식품)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스캔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결국, 완전과 무결, 위험의 박멸과 소거가 아니라, 위험과 그 가능성, 그리고 피해 정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과제다. 사고가 생길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위험을 피하고 줄이는 것이 현실 과제이자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한다.

위험을 줄이는 것도 물론 간단하지 않다. 위험의 원인은 환원주의적으로 한 가지에서 유래한다고 단순화하기 어려우며, 감소의 방법 또한 어느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다. 원인이 복잡한 만큼 대책과 정책도 다면적이고 중층적이다.

복잡한 위험에 대해서는 구조와 시스템이라는 키워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다른 무엇보다, 여러 원인에 두루 걸쳐 있으면서 원인들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핵심 또는 심층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구조와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것은 여러 원인을 더 잘 이해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여러 개별 원인들에 한꺼번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초래한 근본 구조 또는 시스템의 하나로 한국의 영리형 '의약품 체제'를 지목하고자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는 개발과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모든 관련 당사자가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는 동기와 동력으로 작동하는 의약품 시스템을 가리킨다.

체제의 측면에서 이번에 드러난 것 한 가지는 한국에서 이 약을 만드는 회사 숫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해당 혈압약을 생산하는 국가와 제약사는 영국이 2개사 8개 제품, 일본은 1개 회사, 미국은 5개 품목 정도인 것과 비교하여, 한국은 54개 회사에 115개 품목이나 된다(관련 기사 : 고혈압약 원료 파문 1주일…유독 국내만 시끄러운 이유는?, 美FDA, 발암물질 고혈압약 회수 개시…"안전기준 미달").


이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공통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이 약만 그런 것도 아니고, 고혈압약만 해당하는 상황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2017년 기준으로 성분은 같은데 회사와 상품명이 61가지(!)가 넘는 약이 무려 59개 성분에 이른다(관련 기사 : 61개이상 등재 동일성분제제 4972개…전체 23.3% 점유). 타이레놀, 서스펜, 타세놀, 세토펜, 대웅아세트아미노펜,. 이름(상품명)은 모두 다르지만, 이 약 모두 '아세트아미노펜'(성분)이다.


이와 같은 한국적 구조, 의약품 체제가 만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고, 팔 수 있으며,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건강보험이 의약품의 가장 큰 재원 노릇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약품을 생산하면 대부분 의약품이 건강보험 대상이 되고, 제품마다(성분이 아니라) 일정한 과정과 평가, 심사를 거쳐 '보험약가'를 받는다. 그 다음부터는 적어도 건강보험 안에서는 이 가격대로 돈을 받게 된다. 보험약가에 대해서 환자는 (본인부담을 내야 하므로) 그래도 조금 신경을 쓰지만, 의사와 병원, 약사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 생산자(제약사)는 자신의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움직인다. 일단 건강보험 약가가 정해지면 어떻게든 원가를 낮추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성의 요체다. 2012년과 비교하여 2017년에 같은 성분의 품목 수가 대폭 늘어났다고 하니(관련 기사 : 61개 이상 등재 동일성분제제 4972개…전체 23.3% 점유), 이 합리성과 그 행동은 분명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원가 절감의 동기는 또 있다.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지만, 건강보험 '시장'에서 이 많은 의약품들이 경쟁하는 데는 가격과 품질이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제약사로서는 영업활동에 의존할수록 더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 2012년 4월에 보건복지부가 낸 약가 인하 설명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바로 가기).


"생산원가 대비 복제약값이 높게 책정되어 있는 현행 제도 하에서, 제약사는 굳이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위험부담도 큰 신약개발에 힘쓸 유인이 없습니다. 이보다는 판매관리를 통해서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쪽으로, 즉 연구개발보다 영업활동을 잘하는 것이 기업이익을 실현하는 가장 손쉽고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내가 생산자라면 어떤 원리에 따라 행동할까? 원료의약품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어려우면 수입하는 쪽으로, 그중에서도 더 싼 원료의약품으로, 그리고 구입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물론, 보험약가는 처음 수준을 유지하거나 인상되는 쪽이 유리하다.

이렇게 시장이 돌아갈 때 그 바탕이 되는 힘과 방식이 의약품의 품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원료의약품을 만드는 쪽에서도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제적 분업·하청 구조의 작동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지금 한국의 의약품 체제는 건강과 보건의료에 필요한 안전과 품질 보장에 아주 불리하다. 언제라도 질을 희생하거나 숨기는 동기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번과 같은 발암물질은 극단적 경우지만,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안전한(?) '저질' 의약품이 쓰일 위험은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약과 화학물질의 위험을 줄이려면 의약품 체제의 개혁을 피할 수 없지만, 오늘은 체제의 성격을 드러내는 정도로 멈추고 본격적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체제 수준에서 개혁의 대상과 목표, 방법을 논의하는 것은 의약품 품질이나 화학물질의 안전성 관리의 범위를 훌쩍 넘기 때문이다. 다만, 개별 문제나 정책을 넘어 의약품 체제 또한 중요한 개혁 대상이라는 것을 거듭 명확하게 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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