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과 홍세화, 그리고 예멘 난민

[기고] 우리는 모두 난민의 후예들이다

꼬마가 시멘트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멍하니 앉아있다. 잔해 속에서 막 구조된 피투성이 아이가 사지를 늘어뜨린 채 구조대원의 손에 옮겨진다. 생후 1년 남짓한 아이는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링거 주사를 손에 달고 울부짖는다. 유투브에 'Syrian children'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 속에 비쳐진 모습이다.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는 폭격이 끝나고 나면 잔해더미 속에 사채들이 뒤엉켜 있다. 거리엔 부모 형제를 잃은 아이들이 불탄 자동차를 놀이터 삼아 위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영상은 참혹해서 성인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시리아 땅에서 벌어진 참상이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말만 들어도 끔찍한 "인종청소"란 단어가 외신면을 차지하고 그 대상자들의 처지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혀를 차고 측은함을 느낄 수 있다. 단, 지금 한국의 분위기를 보면 그들이 멀리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불쌍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정우성과 홍세화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우성의 발언과 홍세화의 칼럼에 달린 댓글 때문이다. 제주도에 피난 온 예멘 난민들의 처지를 이해하자는 두 사람의 말과 글에 달린 댓글에는 저주와, 혐오가 넘쳐나고 있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쫒아내자는 청와대 청원 인원은 진즉에 6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난민을 추방하자는 의견에는 기존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야기 했던 사람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도 무서운(?) 난민들을 내보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 배우 정우성은 5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무한경쟁에 내몰린 한국 사회의 현실이 여실히 투영되고 있다. 직장을 잡기도, 사랑을 하기도, 집을 사기도, 노후를 지내기도 만만치 않은 현실은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깊은 상처를 받는 구조가 되었다. 정상이라 여겨지는 틀에서 자칫하면 떨어져나갈 위험에 처해 있는 사회다. 이런 곳에서 공포가 지배자로 등장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숱하게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타자는 공포를 해소하거나 그 원인으로 누명 씌우기에 딱 알맞은 무력한 대상이다.

1929년부터 1939년까지는 대공황시기였다. 실업자가 넘쳐났고 거지들이 거리를 메웠다. 독일에서 이 원죄를 유태인이 뒤집어썼다. 히틀러는 절망에 빠진 대중들에게 독일 사회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유태인에게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대중들은 표적으로 몰린 유태인에게 돌진했다. 대공황 뒤 1939년 발발한 2차 대전은 홀로코스트란 참혹한 살육극을 만들어냈다.

1923년 일본을 뒤흔든 관동대지진의 희생양은 조선인들이었다. 조선인들이 대지진의 혼란을 틈타 도둑질을 하고 일본 여자를 강간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군대와 경찰이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민간인들은 자위 목적이라며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들을 색출했다. 외모로 구분이 안 되는 탓에 잡혀온 사람들은 심문을 받았다. 심문자들은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말을 시켰고 서툰 일본어로 대답하는 사람들의 배에는 죽창이 꽂혔다.

실제로 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주류 사회의 언저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들은 일상적 편견 속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들어내기 보다는 감추는데 익숙하다. 지옥 같은 삶을 피해 도망쳐온 난민도 마찬가지다. 말도 음식도 생활방식도 다른 낮선 땅에 도착한 이들은 경계심 가득한 길고양이들처럼 움츠리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난민들이 공포를 확산시킨다는 것은 남성 주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자유가 넘쳐나고 있다는 푸념과 다르지 않다.

500여명의 예멘 난민들이 한국 사회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양산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타자화 시킬 수 있는 대상 모두에게 적용가능하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지방대 출신이라고 무시하고, 고졸이라고 업신여기고, 비정규직이라고 내몰고, 탈북자라는 꼬리표로 얼마든지 가둬둘 수 있는 사회는 지금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숨통이 막힌 것은 1%만 행복한 세상을 위해 치달은 결과이다. 최근 두 항공사가 보여주듯 재벌들의 갑질이 횡행하고 똑똑한 20억 짜리 아파트 한 채가 칭송받는 사회에서 노량진 거리 컵 밥을 먹는 이들의 꿈은 유린당할 수밖에 없다.

근대 한국 사람들의 상당수는 난민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낮선 땅 만주를 향해 달리는 경의선 열차 안이나 상해 행 배안에는 식민지배의 폭압을 피해 탈출하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만약 중국이 일본 개입 명분을 준다며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폐쇄시키고 조선인들을 내쫒았다면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을 지원했다. 마오저뚱과 홍군은 조선의용군으로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포용해 공동 항일 투쟁을 했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조선 진격작전도 벌였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과 우스리스크, 하바롭스크에 정착한 한인들은 가장 열성적인 항일 지원 세력이었다.

삶의 터전을 떠나온 사람들에 손을 내미는 것은 인류애라는 가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류애가 숭고한 이유는 인종도, 지역도, 종교도, 사상도 초월하기 때문이리라. 동시대 지구상에 생존하는 인간으로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그 어느 것 보다 인간다운 일일 것이다. 예멘 난민들의 손을 잡아주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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