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의 핵심 현안인 새만금 개발이 현대자동차그룹의 9조 원대 투자 협약을 계기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지만, 정작 첨단산업을 이끌 청년과 핵심 인재들이 가족과 함께 뿌리내릴 생활 터전 설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새만금에 1000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공장 부지를 닦고 전력과 용수를 끌어오는 물리적 기반 구축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정주 여건을 완성하는 삶의 질 혁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정주 여건이란 사람이 한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거와 교육, 의료, 문화 등의 종합적인 생활 환경을 말한다.
새만금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공장을 짓고 기업을 유치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자녀를 교육하며 아플 때 적기에 치료받고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산업을 유치하는 도시에서 사람이 정착하는 도시로의 전환, 그것이 현대차그룹의 투자를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는 출발점이다.
그동안 <프레시안> 기획 시리즈는 특성화고에서 지역 대학을 거쳐 국립 전북과학원 설립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공급망을 촘촘하게 제안해 왔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고 외부에서 최고급 두뇌를 영입하려 해도 이들이 머물 도시가 매력을 갖추지 못하면 모든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난다.
실제로 국내 여러 지방 국가산업단지와 혁신도시들은 대기업 공장과 공공기관을 유치하고도 정주 환경을 제때 갖추지 못해 직원들이 가족은 수도권에 남겨둔 채 홀로 내려와 지내는 주말부부 단지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는 구체적인 정부 통계로도 입증된다. 국토교통부의 전국 혁신도시 정주여건 통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이전 완료 후 10년이 지났음에도 전체 이전 인력 중 가족과 함께 이주한 비율은 평균 60%대에 그쳤고, 단신 이주나 수도권 통근 비율이 여전히 3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주 직원들이 가족 동반 이주를 주저하는 핵심 요인으로는 배우자의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경력 단절 우려와 함께 자녀 교육 환경 미흡, 병원 및 문화시설 부족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각종 국책연구기관의 이공계 청년 인력 실태조사에서도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임금 및 일자리 격차 못지않게 교육과 의료, 문화 등 생활 인프라의 열악함이 결정적 장벽으로 꼽힌다.
현재 매립을 마치고 본격적인 조성을 앞둔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위험이 크다. 스마트 수변도시는 새만금 복합개발용지 안에 총사업비 약 1조 3000억 원을 투입해 6.6㎢ 규모로 조성되는 첫 번째 자족형 복합 도시다. 자족형 도시란 외부 도시에 의존하지 않고 도시 안에서 일자리와 주거, 교육과 소비가 조화롭게 해결되는 도시를 뜻한다.
당초 계획 인구 2만 5000명(약 1만 1000세대) 규모로 설계된 뒤 최근 기업 유입에 맞춰 4만 명 수준으로 확대하는 통합개발계획 변경이 추진되고 있지만, 지금 논의되는 개발 계획은 과거의 관성대로 땅을 구획해 아파트와 상가 용지를 분양하는 부동산 개발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시계획 분야의 한 원로 전문가는 "과거에는 공장을 먼저 세우면 사람이 따라왔지만 첨단기술 산업 시대에는 매력적인 도시 공간이 있는 곳으로 인재와 기업이 이동한다"며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가 단순한 산업단지 배후 베드타운이나 택지 분양 사업에 머문다면 수도권의 젊은 엔지니어들을 절대 불러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평균 연령 30대 초반에 높은 연봉을 받는 수도권 판교 테크노밸리의 로봇 공학자와 인공지능 연구원들이 전북 새만금을 선택하게 만들려면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선 치밀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젊은 고급 인력들이 지방 이전을 주저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자녀 교육을 책임질 명문 교육 시스템의 부재 △응급 상황과 중증 질환에 대처할 의료 안전망 부족 △퇴근 후와 주말을 즐길 복합 문화와 여가 공간의 결핍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다만 계획 인구 4만 명 규모의 수변도시에 수백만 명의 배후 인구가 필요한 초대형 인프라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것은 재정적 타당성이 떨어질뿐더러 새만금개발공사의 독립채산제 수익 구조상 실현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새만금의 규모와 법적 여건에 맞는 실효성 있는 맞춤형 정주 전략이 요구된다.
우선 교육 분야에서는 막대한 건축비 지원이 수반되고 내국인 입학이 제한되는 초고가 해외 사립 국제학교 유치에 매달리기보다, 내외국인 연구원 자녀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공교육 혁신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 산업단지가 자리 잡은 충남 아산 탕정이나 경북 포항이 기업 출연 특목고와 명문 학군을 통해 젊은 엔지니어 가족의 정착률을 높인 것처럼, 새만금 역시 교육부의 자율형 공립고 2.0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자율형 공립고 2.0이란 지자체와 대학, 기업이 학교 운영에 참여해 특목고나 자사고 수준의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공립학교를 말한다. 현대차 등 입주 대기업과 지역 거점 대학이 연계한 과학·인공지능 영재 특화 자율형 공립고를 신설하고, 공립학교 내에 국제바칼로레아(IB) 이중언어 인증 과정을 도입하면 외국인 엔지니어와 귀국 과학자 자녀의 교육 수요까지 합리적인 비용으로 흡수할 수 있다. 국제바칼로레아는 스위스 비영리 교육재단이 운영하는 국제 공인 교육과정으로, 토론과 탐구 중심의 수업을 통해 세계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산업인력 정책을 연구하는 수도권의 한 대학 교수는 "판교에 근무하는 3040세대 핵심 연구원들이 지방 이전을 거부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배우자의 일자리와 자녀의 대입 및 교육 문제"라며 "새만금 수변도시에 기업 연계형 명문 공립학교와 글로벌 이중언어 교육 시스템을 먼저 구축해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도 새만금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환경 또한 규모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마트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보건복지부의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에 따르면 새만금 권역인 군산과 김제, 부안은 중증 응급환자가 골든타임 내에 최종 치료 기관에 도달하는 비율이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도는 대표적 의료 취약지다.
인구 4만 명 도시 안에 당장 80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 분원을 새로 짓겠다는 비현실적인 구상 대신, 수변도시 내부의 1차 필수의료와 권역 상급 의료망을 촘촘하게 잇는 이중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수변도시 안에는 정부와 지자체, 입주 기업이 공동 기금을 출연해 24시간 소아청소년과 야간·휴일 진료센터와 심뇌혈관 및 산업재해 초기 응급처치 클리닉을 갖춘 공공형 스마트 메디컬 센터를 우선 설립해야 한다.
동시에 중증 질환과 고난도 수술은 현재 건립 공사가 한창인 500병상 규모의 군산전북대병원과 원광대병원, 전북대병원 본원 등 도내 권역 거점 병원과 연계해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군산전북대병원의 조기 개원과 중증·응급의료 기능 확충에 속도를 내고, 수변도시에서 거점 병원까지 15분 내에 주파할 수 있는 응급 의료 전용 도로망과 닥터헬기 이착륙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수는 "젊은 부부들이 지방 신도시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밤중에 아이가 아플 때 찾아갈 응급실이 없는 상황"이라며 "수변도시 내부에는 수익성 논리를 떠나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24시간 소아·응급 특화 스마트 의료원을 도입하고, 건립 중인 군산전북대병원과 실시간 원격 협진 및 초고속 이송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의료 대안"이라고 제언했다.
나아가 수변도시가 고립된 섬이 되지 않으려면 모든 기능을 작은 도시 안에 가두려는 폐쇄적 자족도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변도시는 청년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수변 테라스형 복합 상권과 해양 레포츠, 스마트 주거 공간 조성에 집중하고, 대규모 문화·상업 인프라는 인접한 군산과 전주, 익산의 기존 도시 자원을 20~30분 내에 공유할 수 있도록 광역 급행 교통망으로 직결해야 한다.
사람과 일자리, 교육과 의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광역 네트워크 도시를 완성할 때 비로소 새만금은 청년과 인재가 모여드는 살아있는 미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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