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웨이퍼를 만드는 공장에서도 백혈병이 발병한다

[클린룸 밖의 사람들] 웨이퍼 생산 엔지니어 강세진 이야기 ① 원기둥을 절단해 원판 형태의 웨이퍼로 만드는 일

대기업 반도체 공장에 납품되는 웨이퍼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질까? 시작은 그 궁금증이었다. 클린룸에서 이루어지는 웨이퍼 가공 공정, 그 이전 단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반올림이 산재를 신청한 피해자 중 웨이퍼 제조 공장에서 일을 하신 분이 계셨다. 연락을 드렸고, 가을 저녁 천안의 한 호수 옆 카페에서 일을 막 끝내고 오신 강세진님(가명)을 만났다. 웨이퍼 제조와 관련해 이것저것 여쭤봤는데 말, 그리고 표정에서 본인의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담뿍 묻어났다. 만성 백혈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아 일을 하지 않으면 휴업 급여를 받을 수도 있지만 본인의 의지로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중이다.

세진은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말의 억양이 강할 뿐 아니라 다양한 경상도식 표현을 사용했다. 개성 있는 말투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그대로 전사와 인용을 했다.

▲웨이퍼 형태로 절단하는 장비를 바라보는 강세진 ⓒ 박정원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오는 시골에 살던 소년의 눈에 대구는 큰 도시였다. 이사 온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적응하고 학교생활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세진은 대학에 간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형, 누나들도 다 대학에 가지 않았고 곧바로 취업 나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곤로(こんろ)는 우리말로 풍로, 화로를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곤로는 석유, 가스 등을 연료로 열을 발생시켜 음식 조리를 하거나 난방하는 데 사용됐다. 1980년대까지 가정집에서 흔하게 사용되었으나 가스레인지의 등장으로 점차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게 됐다.

곤로 난로 회사에서 3년을 일한 후 세진이 발을 들이게 된 산업은 이름조차 생소한 반도체 산업이었다. 돌아보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용이 줄어 저물어가던 사양산업에서 오늘날까지도 미래 기술로 각광받는 성장산업으로 발 빠른 이동을 한 셈이다.

1986년 11월, 반도체가 뭔지, 웨이퍼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진은 S사에 들어갔다.

반도체 웨이퍼는 반도체 소자, 집적 회로를 만드는 원료로서 반도체 산업의 기본이 되는 재료이다. 가장 일반적인 웨이퍼는 실리콘(Si)을 통해 만들어지며 실리콘 대신 갈륨아세나이드(GaAs), 사파이어(Al2O3)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본 재료를 고온에서 녹여내어 일정한 방향으로 성장시킨 원기둥을 잉곳(Ingot)이라고 하며, 이를 얇은 박판으로 자르면 웨이퍼가 만들어 진다. 이것이 절단 공정이다. 절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결정방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엑스레이(X-ray) 장비를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절단 후에는 모서리 연마(Edge grinder), 웨이퍼 표면 연마(Lapping), 식각(Etching), 세정(Cleaning) 등의 후 공정을 거쳐 웨이퍼가 완성된다.

▲웨이퍼 제조 공정 ⓒLX 세미콘

백혈구 수치의 정상 범위는 혈액 1μL(마이크로리터)당 4,000-10,000개이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는 것은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징조였겠지만 당시에는 수치가 떨어지면 후공정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대처했다. S사에서는 15년 정도 일을 하고 나오게 됐다.

S사 퇴사 후 세진은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작은 사업체들을 옮겨 다니며 새로운 도전을 했다. 실리콘 반도체가 아닌 화합물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참여한 것이다. LED를 제조하는 데에는 웨이퍼 재료로 실리콘 대신 갈륨아세나이드(GaAs), 사파이어(Al2O3)가 사용된다. 갈륨아세나이드는 붉은색 LED 소자이고, 사파이어는 청색, 백색 LED 소자이다. 원재료만 다르고 잉곳을 키우는 방식과 절단하여 웨이퍼를 만드는 방식은 유사하다. 그 이후 중소업체 규모의 T사에서는 SiC(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와 SiC 링의 세정을 주로 담당했다.

회사 이름은 달라졌지만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웨이퍼, 부품을 생산하는 사업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진은 S사에서 제대로 배운 하나의 기술을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접목과 응용을 시도했다.

※ 2편에서 계속됩니다.(이름은 인터뷰이의 요청으로 가명으로 처리)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