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회적 대화 참여'가 아니라 '전략 없음'이 문제다!

[홍명교 칼럼] 피지컬 AI 대응이 협상 카드? '디지털 테일러주의'에 맞서야

지난 2월 24일 밤으로 돌아가보자. 그날 MBC <100분 토론>은 “AI 로봇 확산, 내 일자리는?”이라는 첨예한 이슈를 다뤘고, 노동계에선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하 양경수)이 출연했다.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가 ‘아틀라스’ 로봇의 기술적 성취를 선전하며 화제를 일으키고, 현대차 자본이 몇 년 안에 공장에 로봇을 투입할 수 있을 것처럼 공표하자, 현장 노동자들의 경계심은 높아지고 있었다. 더구나 1월 말 청와대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로봇을 생산 현장에 못 들어오게 하겠다고 어느 노동조합이 선언한 것 같다”며, “투쟁 전략의 일부이겠지만, 빨리 적응해야 한다”, “과거에 증기기관, 기계가 도입됐을 때 그 기계를 부수자는 운동이 있었다”고 훈계조의 말을 쏟고 있었다. 치솟는 지지율에 기세등등해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자본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날 출연자 중 한 명인 한재권 교수(한양대 로봇공학과)가 "로봇에게 작업을 가르쳐줄 현장 숙련 노동자가 너무나 귀하고, 이들이 로봇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멘토가 되는 재취업·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연착륙할 수 있다"고 발언하자, 양경수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전 동의하는데요. 피지컬 AI 같은 경우는 인간의 운동, 특히나 노동자들의 미세 작업, 섬세한 작업, 또 압력이 필요한 작업들에 대한 어떤 학습들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국내 완성차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숙련 노동은 굉장히 큰 재산이 될 수 있죠. 그리고 사실 지능형 AI 같은 경우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들이 학습한 내용은 다 생산자는 국민 아닙니까? 국민들이 생산한 내용들을 학습하고 저작권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런 것들을 인정해서 국민도 우리 노동자도 AI 로봇의 소유권까지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은 이 재부를 나눌 수 있는 권한이 있다라는 것을 사회가 인정하고, 이 재원을 가지고 양질의 일자리를 정부가 만들 수 있는 종자돈으로 활용할 수 있다라고 보는 거예요.”

이어서 현대차가 2028년 부품 서열 작업, 2030년 조립 공정에 피지컬 AI 로봇을 투입할 것이라는 언론보도와 관련해 양경수는 이렇게 말했다.

“구체적이고 미세한 작업이 필요한 조립 공정의 투입이나 이런 것들은 아마 학습 속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런 영역에서부터 노동자들이 학습하는 역할을 해 주고, 이 재원을 또 환원도 하고, 노동자들한테 재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고 하려면, 노사 간의 대화, 노정 간의 대화, 노사정이 함께하는 대화 이런 논의체가 지금보다는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양경수 위원장은 노동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했나? 이를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이 가질 수 있는 비전이라고 봐도 될까? 애석하게도 양경수의 위와 같은 인식은 인공지능(AI)이 모든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환상을 극복하지 못한다. ‘어차피 피지컬 AI 도입은 피할 수 없으니, 도입을 수용하는 대신 사후적인 대가를 챙기자’는 전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수십 년간 땀 흘려 체득한 암묵지와 미세 작업 노하우는 노동자의 인격이나 신체와 분리될 수 없다. 이를 로봇 학습을 위한 ‘재산’이자 ‘데이터 저작권’으로 규정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현장에서 퇴출할 대체물(로봇)의 원료를 판매하는 기괴한 소외를 낳는다. 이미 많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자신의 상담 데이터가 머신러닝에 쓰인다는 걸 알고 있으며,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이윤 극대화와 노동통제를 위한 자본의 정치경제적 기획이고, ‘거스를 수 없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노동조합에게는 기술 도입의 속도, 배치 방식,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방적 투입 자체를 거부하고 통제할 권리가 있다. 한데 양경수는 이 권리를 협상용 카드로 축소시키고 말았다. 인공지능 문제에 대한 노동의 관점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숙련 노동과 암묵지를 AI 학습을 위한 “재산”으로 포장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가로 재원을 환원받자는 발상 역시 문제다. 인간 노동자의 신체 움직임과 노하우를 센서와 카메라로 추출해 로봇에 학습시키는 행위는, 노동자 자신이 쌓아온 숙련으로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내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노동권은 집단적 단결과 실력 행사를 통해 쟁취하는 기본권이지, 사적으로 사고파는 지식재산권이 될 수 없다. 노동자를 ‘저작권자’로 위치시키는 순간, 노동운동은 일터의 주도권을 다투는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내 숙련을 사측에 얼마에 팔 것인가”를 흥정하는 시장주의적 거래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뿐이다.

자본과 주류 언론이 이야기하는 ‘AI 시대’는 무엇을 가리키나?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삶의 개선과 만인의 풍요를 지향하는가, 아니면 노동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를 초 단위로 감시·통제하는 ‘디지털 테일러주의’를 꿈꾸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자본의 배타적 이윤 축적을 위해 일터의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지는 않나?

양경수에게는 이런 문제에 대한 질문과 인식이 부재하다. 그가 가장 앞장서서 피력했어야 할 의제는 노동권 포기를 통한 재분배가 아니었다. 현장에서의 작업 데이터 수집에 대한 제한과 거부할 권리를 명시하고, 알고리즘 도입 시 노동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모든 일터에서 ‘영향받는 사람’으로서 노동자들이 기술에 대한 접근권과 통제할 권리가 주어져야 함을 보다 강력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러려면 노동 과정의 재설계나 기술 통제에 노동자가 어떻게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 전략을 갖추었어야 했다. 그래야 모처럼의 TV토론에서 110만 조합원을 넘어 모든 노동자들이 AI에 대한 신화 속에서 빼앗기고 있는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터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본이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여 일자리가 영구히 사라질 것”이라는 종말론적 신화를 퍼뜨리는 진짜 목적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고용 불안에 짓눌려 스스로 노동조건 후퇴와 임금 억제를 받아들이도록 길들이는 데 있다. 특정 일자리는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일자리는 늘어난다. AI는 바둑이나 체스, 정형화된 데이터 계산, 단순 반복 행정 사무 등 ‘고도의 논리적·추론적 과업’은 쉽게 대체하지만, 청소·조경·요리·설비·유지보수·돌봄·보건·간병 등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이나 미세한 손재주, 복잡한 물리적 환경 적응이 필요한 ‘신체 노동’은 높은 비용 혹은 기술적 문제 때문에 대체하기 훨씬 어렵다.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방대한 경험 데이터와 암묵지, 그림자 노동을 먹고 자란다. 자동화 시스템이 일상화될수록 그 이면에서 오류를 바로잡고 데이터를 라벨링하는 노동은 계속 필요하다. 그렇기에 실제 일터에서 관철되는 현실은 노동의 완전한 퇴출이 아니다. 즉, 피지컬 AI는 노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기계의 연장선으로 편입시켜 쥐어짜내는 노동 강도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린다. 가령 카메라, 웨어러블 기기, 각종 센서를 통해 노동자의 모든 손짓과 시선, 동선, 휴식 시간을 초 단위로 측정·기록·분석하여 통제를 극대화하는 ‘디지털 테일러주의’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그렇게 파괴되는 노동권을 지키고, 일터의 민주주의를 사수하는 것에 있다. 기술 발전을 자본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극소수의 부자들이 이윤을 늘리는 것에 쓰이도록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을 진정으로 개선시키고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줄이며,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싸우는 것에 있다. 불행히도 민주노총 지도부에겐 그러한 전략도, 격변의 시대에서의 담론적 능력도 없다.

노동운동가 양경수의 진심과 진정성을 의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6년 간 과연 비전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 참가와 관련한 안건이 대다수 중집의 반대로 부결되자, 대의원대회에 직권으로 해당 안건을 상정했다. 그러나 최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일부 대의원의 이석으로 안건 통과가 유예됐다. 양 위원장은 다가오는 11월 민주노총 선거에서의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이것을 묻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 대화 참가 여부가 3년만에 치러지는 총연맹 선거의 최대 이슈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허구적 쟁점이다. 민주노총이 극복해야 할 진짜 문제는 ‘전략 없음’ 상태 그 자체이며, 인공지능 시대에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현 집행부는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는 일에는 매우 열중이지만, 정작 대통령을 만나서는 지금 민주노총이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의례적인 만남에 그친다. 그런 방식으로 대체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민주노총은 110만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고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변하겠다고 말한다. 개별 기업이나 자본가 이익단체들만이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정부 기구들에서 투쟁하고 협상한다. 그리고 이런 협상들은 모두 일터에서의 단단하고 넓은 투쟁으로부터 힘이 나온다. 따라서 인공지능 문제나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면, 그 힘을 충분히 조직해나가는 과정과 전제 속에서, 조합원과 노동자들의 충분한 인식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주주의이고, 제대로 된 합의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양경수 집행부는 이런 모든 과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사회적 대화’만 부르짖고 있다. 이는 본말전도이자 공중누각이다.

노동자들의 힘과 단결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일터의 구체적인 모순을 마주하며 사측에 직접 맞서보고, 작더라도 의미 있는 물질적 변화를 스스로 쟁취해본 집단적 갈등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벼려진다. 기업들이 AI를 앞세워 노동자들을 디지털 테일러주의의 부품으로 편입시키려는 ‘지금 이 순간’에 싸우지 못하는 노동조합이, 훗날 상층의 대화가 결렬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강력한 투쟁을 할 수 있을까? 투쟁을 지연시키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현장의 무장해제를 낳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피지컬 AI와 알고리즘 경영이라는 자본의 공격에 맞서 현장에서부터 ‘불씨’를 지피는 일이다. 현장에서의 작업 데이터 수집을 단호히 거부하고, 감시 알고리즘의 도입에 대한 노동자의 사전 동의권을 쟁취하며, 기계와 자동화의 배치를 멈춰 세울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는 투쟁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민주노총 선거는 결코 ‘사회적 대화 기구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찬반 투표에 갇혀서는 안 된다. 자본과 정권이 설계해 놓은 덫과 AI에 대한 신화를 깨부수고, 일터의 최전선에서 노동권을 되찾아올 현장 중심의 리더십을 어떻게 세워낼 것인가를 묻는 노선의 경연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협상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교차로 인근에서 열린 양대노총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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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사회운동이 마주한 곤경을 실천적으로 돌파하기 위해 플랫폼C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동아시아 사회운동과 교류·연대하고 있고,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에 함께 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와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역서로는 <고양이 행성의 기록>,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공동역서로 <아이폰을 위해 죽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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