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남구 구룡포 아라광장과 일본인 가옥거리 일원에서 ‘2026 포항 해뜨면 국수축제’를 개최했다.
포항시는 이번 축제를 구룡포의 음식문화와 관광자원을 결합한 미식축제로 기획했다.
모리국수와 꽁치당구국수, 회국수, 홍게국수 등 포항을 대표하는 국수부터 제주 고기국수, 부산 밀면, 춘천 막국수, 일본 사누키우동, 중국 양춘면 등 국내외 다양한 면요리를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공연과 국수대전,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지역의 대표 먹거리를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방문객을 유치하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먹거리와 관광을 결합한 축제를 추진하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축제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왜 하필 구룡포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단순히 ‘구룡포에 모리국수가 유명하기 때문’이라면, 구룡포가 가진 역사와 관광자원을 지나치게 좁게 바라본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더구나 포항시는 행사에 앞서 각종 홍보자료를 통해 구룡포의 역사와 지역적 의미를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축제 현장에서는 국수와 먹거리 천막, 공연 무대가 눈에 띄었을 뿐, 구룡포가 어떤 역사를 가진 곳인지,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콘텐츠는 충분히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 행사를 위해 포항시가 행사대행 용역 기초금액으로 책정한 금액은 4억 원 규모다.
적지 않은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행사라면 단순히 사흘 동안 많은 사람이 찾아와 음식을 먹고 공연을 즐기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지역에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
⏹특히 구룡포라면 더욱 그렇다.
구룡포는 다른 지역과 달리 축제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미 풍부하다.
동해안 어업의 역사가 있고, 일본인 이주어촌이라는 근현대사의 흔적이 있다. 광복 이후 우리 어민들이 삶의 터전을 이어온 역사도 있다.
무엇보다 수십 년, 아니 수세대에 걸쳐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어민들의 이야기가 있다.
20세기 초 일본 어선의 진출과 함께 근대적인 항구로 발전한 구룡포는 1923년 방파제와 항만시설이 조성되면서 본격적인 항구의 모습을 갖춰갔다.
이후 동해안의 주요 어업기지로 성장하면서 항구를 중심으로 일본인 이주어촌과 상업시설 등이 형성됐다.
물론 구룡포항의 정확한 역사적 연혁을 이야기할 때는 보다 세밀한 고증이 필요하다.
한동안 ‘1920년 구룡포항 개항’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됐지만, 항만행정상 지정항의 시점과 실제 항만시설 조성 및 항구 기능의 형성 시점을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연도를 반복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구룡포항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동해안의 대표적인 어항으로 성장했는지를 정확한 자료와 사진으로 정리해 시민과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100년 전 구룡포항의 모습은 어땠는가.
⏹당시 어떤 어선들이 드나들었고 누가 항구에서 일했는가.
⏹어떤 수산물이 거래됐으며 항구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가.
⏹일제강점기 일본인 이주어촌은 어떻게 형성됐으며 광복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우리 어민들은 어떻게 항구를 다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갔는가.
이런 이야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가 충분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관광객이 구룡포에 도착해 일본인 가옥거리를 걷고 항구를 바라보면서도 ‘왜 이곳이 중요한 역사적 공간인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면 축제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구룡포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번 국수축제가 아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리국수는 분명 구룡포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그러나 모리국수를 단순히 ‘구룡포에서 유명한 음식’으로만 소개한다면 구룡포의 이야기를 절반도 설명하지 못한다.
모리국수에는 항구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구룡포에서 모리국수는 특별한 관광상품이 아니었다. 비교적 구하기 쉬운 생선과 밀가루 등을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었던 서민적인 음식이었고, 조업을 마친 어민과 항구 노동자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렇다면 국수축제에서 가장 먼저 던졌어야 할 질문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왜 구룡포 사람들은 모리국수를 먹었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하면 이야기는 음식 하나를 넘어선다.
어민들은 무엇을 잡아 생계를 이어갔는가. 구룡포항은 어떻게 동해안의 주요 어항으로 성장했는가. 항구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일제강점기의 흔적은 광복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가. 그리고 오늘날 구룡포의 수산업은 어떤 현실에 놓여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다른 지역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구룡포만의 축제 콘텐츠’다. 국수 한 그릇을 팔더라도 그 안에 어민의 삶과 항구의 역사를 담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관광객에게 국수 한 그릇을 먹이고 돌려보내는 것과, 국수 한 그릇을 통해 구룡포의 100년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광정책이다.
구룡포의 자산은 모리국수 하나로 끝나지도 않는다. 대게가 있고 과메기가 있다. 구룡포항과 대게거리, 수산물 유통 현장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바다가 있다.
대게가 어디에서 잡히는지, 어떤 어민들이 바다로 나가는지, 잡힌 대게가 구룡포항에 들어와 어떻게 유통되는지, 수산업이 지역경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
과메기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완성된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왜 구룡포와 과메기가 연결됐는지, 바닷바람과 겨울이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과메기가 지역 어민과 수산업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구룡포의 가장 큰 자산 가운데 하나인 어업의 역사와 현재의 삶은 음식과 공연 뒤로 밀려난 모습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번 축제의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축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축제를 ‘사람을 모으는 행사’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지역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지역에 새로운 자산을 남기는 콘텐츠’로 볼 것인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구룡포가 가진 자산은 국수 몇 종류가 아니다. 대게가 있고 과메기가 있고 모리국수가 있다.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들어낸 바다가 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어민들이 있고, 항구에서 생선을 나르고 가공하고 판매했던 사람들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있고, 광복 이후 다시 항구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모든 것이 구룡포의 콘텐츠다.
그런데도 수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축제에서 이런 이야기가 충분히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면 이제는 축제의 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역사 콘텐츠라고 해서 거대한 박물관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다. 항구 곳곳에 옛 사진과 현재 사진을 나란히 세워놓을 수도 있다. 1920~30년대 구룡포항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도 있다.
옛 어선과 어민들의 사진, 수산물 거래 모습, 항만시설의 변화, 일본인 이주어촌의 형성과 광복 이후의 변화 등을 설명하는 작은 전시공간도 만들 수 있다.
항구를 걷는 관광객이 QR코드 하나를 통해 100년 전 구룡포의 사진과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모리국수 한 그릇을 놓으면 된다. 그러면 음식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관광이 된다. 그러기에 구룡포의 경쟁력은 새롭게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이미 그곳에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발굴하고, 정확하게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기억될 이야기로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4억 원 규모의 공공예산이 들어가는 축제라면 더욱 그렇다. 국수축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먹거리 축제를 없애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구룡포만의 먹거리를 살리는 축제라면 더 크게 키울 필요가 있다. 다만 방향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국수는 왜 생겼는가.’ ‘누가 이 음식을 먹었는가.’ ‘어떤 시대와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졌는가.’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들어낸 구룡포라는 항구는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수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구룡포의 문화가 된다. 그래야 축제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는 콘텐츠가 된다.
무엇보다 그래야 시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예산이 행사장 안에서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룡포라는 지역에 오래 남는 관광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다.
구룡포에는 이미 100년 넘는 이야기가 있다. 바다와 항구가 있고, 어민이 있고, 대게와 과메기 고래가 있고, 모리국수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도 있고 광복 이후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군 사람들의 역사도 있다.
이 정도의 이야기를 가진 지역이라면 축제의 주인공은 단순히 ‘국수’가 아니라 ‘구룡포 그 자체’여야 한다. 다음 축제에서는 국수 한 그릇을 먹는 데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그 음식을 만들고 먹었던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고, 항구를 걸으며 100년 전 이곳을 오갔던 어선과 어민들을 기억하고, 대게 한 마리를 맛보며 오늘도 바다로 나가는 어민들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축제였으면 한다.
구룡포에 필요한 것은 국수 한 그릇을 더 파는 축제가 아니다. 구룡포가 가진 100년의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고, 그 역사를 오늘의 관광으로 연결하며, 다음 세대에 제대로 남기는 축제다.
⏹4억 원의 예산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축제가 끝난 뒤 구룡포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은 행사장의 무대와 현수막만이 아니다.
구룡포를 다시 찾게 만드는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게 하는 지역의 정체성이 남아야 한다.
결국 이번 국수축제에서 국수보다 먼저 이야기했어야 할 것은 구룡포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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