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장은 파괴를 동반해 왔다. 농지가 에너지 단지로 바뀌면서 농지와 농민의 수가 꾸준히 줄었다. 개발에 반대하는 농민은 삶터를 빼앗겼다. '농사보다 돈이 된다'는 말에 에너지 기업에 땅을 빌려준 이는 약속만큼 돈을 벌지 못했다. 기업과 정부가 던져 놓은 '에너지 수익금'은 주민 간 찬반 갈등을 촉발했고, 오랜 공동체는 파괴됐다. 태양광·풍력 단지가 조성된 농어촌에서 수십 년 간 반복돼 온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은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가로 떠안았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더 빠르고 일방적인 재생에너지 단지 조성이 몰고 올 갈등을 비롯해, 물과 전력, 토지 등 자원의 편중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작물값이 똥값'이라며 매년 밭을 갈아엎고 광화문 앞에 양파를 쏟아붓고 와도, 농민들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농업 진흥 정책은 부재하다.
3대 메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희생자로 농민과 농촌이 지목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엄청나(47)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3대 메가 프로젝트 내 농민의 입지를 "바닥" 한 단어로 일축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전농 사무실에서 엄 정책위원장을 만나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재생에너지는 농어촌 희생을 밟고 확대된다
- 재생에너지 필요성에 그 뒤의 희생은 가려져 온 것 같다. 농촌은 무엇을 목격하고 있나?
"재생에너지 확장에 따른 무분별한 농지 파괴, 주민 수용성 무시를 정말 오래 지켜봤다. 대표 입지가 간척지다. 국내 농지의 24%가 간척지인데, 여기에 태양광 단지를 무리하게 세우려다 보니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가짜 염해 판정'이 한 예다. 간척지의 염분이 높아 농사에 부적합하다고 억지로 증명해 단지를 세운다.
최근 들은 해남 사례가 정말 황당한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척지가 근래 염해 농지로 판정됐다. 그럼 개발업자는 '여기 농지 가치가 없으니 태양광 설치하겠다'고 전용 신청을 할 수 있다. 100년이 지난, 이미 오래 농사를 잘 지어온 농지가 갑자기 쓸모없는 땅이 됐다. 이게 맞냐는 거다."
- 가짜 염해 판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
"간척지 벼는 20cm(센티미터) 정도까지 뿌리가 자란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심토(30~60cm)로 염도를 측정하고, '소금기가 많아 농사가 안 된다'고 결론짓는다. 가짜 염해 판정은 오래전부터 하도 문제가 많아,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연구 뒤 '표토가 문제지, 심토는 제외해야 한다'는 개선 방향까지 결과로 냈다. 그런데 이 보고서를 낸 정부가 관련 규정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보고만 있다. 해남, 진도, 영암, 당진, 서천 등 간척지 있는 지역에 태양광 분쟁이 없는 곳이 없다."
- 그래도 재생에너지 단지가 농가 소득 증대로 이어지진 않나?
"농가에 임대농이 많다. 농지를 에너지 기업에 임대하면 임대농은 밀려난다. 약속된 소득도 제대로 얻지 못한다. 요새는 보통 쌀농사로 '평당 1000원 번다'고 한다. 임대업자들은 '평당 6000~9000원 임대료 준다'며 밀고 들어온다. 그렇게 땅을 임대하고 갈아엎는데, 그만큼 이익이 들어오지 않는다.
최근 진도 농민에게 들은 이야기다. 처음엔 업자가 월 30여만 원씩 주민에게 준다고 했는데, 10년이 지났는데 받은 돈이 총 100만 원도 안 된다. 대부분 초기 업체가 파산하고 제3자에게 사업을 넘기면서 애초 약속이 파기되는 일이 발생한다. 업체가 파산해도, 이미 그 땅은 태양광 단지가 됐으니 다른 걸 할 수가 없다. 임대료 등을 제대로 받았다는 농민을 거의 본 적 없다."
- 풍력단지는 어떤가?
"오늘 출근길에 강원도 양양 송이 경매가 시작됐다는 기사를 봤다. 앞으로 이곳 송이를 볼 수 있을지, 거기 동식물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됐다. 양양 산림은 환경보호구역인데, 이제 어마어마한 송전탑이 우후죽순 깔릴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 육상풍력이 들어선다.
풍력단지 인근 농민의 고충은 전농에 자주 보고된다. 바다 위 흔들리는 배에서 우리는 안정적으로 잘 살 수 있나? 이런 문제다. 프로펠러가 돌면서 땅이 흔들리고, 저주파와 소음이 발생한다. 이 영향을 동식물들이 받는다. 꿀벌이 사라지고, 염소·송아지 등 축사 동물 폐사, 뱀·야생동물 민가 출몰 등의 고충을 계속 듣고 있다."
- 풍력 진동이나 저주파에 의한 동식물 영향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풍력단지 환경영향평가서에 '일정 반경 내 가구는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권고가 아니라 이주해야 한다고 정한다. 평가서에 동물 사육, 생활 환경에 미치는 위험 요소도 다 적시돼 있다. 전농엔 풍력발전기 소음, 진동, 그림자 등의 피해를 호소하는 농민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꿀벌과 가축 폐사 사례도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다. 농지나 면에 건설한 도로, 4호 이하 가구 밀집 지역은 이격거리(발전소와 떨어진 거리) 규제 대상도 아니다. 겨울 동안 풍력 날개에 쌓인 눈, 얼음이 이후 바람이 불면 다시 돌아가면서 주변 농지, 농가에 떨어지는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시대의 과제인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핵심은 정부 정책에 '어떻게 하면 재생에너지를 많이 설치할까'만 있다는 것이다. 농촌, 지역, 농민의 희생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 안에 매몰돼서, 농민의 삶과 안전, 그리고 경자유전의 헌법 원칙조차 무시된다. 농촌은 희생해도 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송전탑을 세우는 방식이 이를 잘 보여 주지 않나."
희생 필연인데…'전력 증대'만 말해도 되나
- 송전탑을 세우는 방식이 뭘 보여 주나?
"'도시, 반도체가 중요하지. 농촌은 괜찮아. 희생해도 돼.' 이 인식이다. 그 큰 탑이 지역 사회에 들어서는데, 주민과 충분히 협의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없다. 그냥 어느 날 설명회 열고 '여기 송전선로 들어옵니다' 하고 밀어붙인다. 매우 폭력적이다. 지역을 깔보고, 농민을 깔보고, 농촌을 깔보는 인식이다.
지난 15일 기후에너지환경부 발표만 봐도 보인다. 주민 수용성 고려한다며 신설 송전탑을 최대 40% 줄이고, 주민 밀집 지역에선 전선을 땅속에 묻어 지중화한다고 밝혔다. 지중화는 인구가 많은 도시 얘기지, 농촌은 대상이 아니다. 대체 이만한 전기가 꼭 필요한지, 이 전기를 이런 방식으로만 생산·송전해야 하는지 논의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국가 계획으로 희생되는 것이 농민의 처지다."
- '이만한 전력이 꼭 필요한가'란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기후위기에도 여전히 전력 생산을 늘리려고만 하는 시대다.
"폭우, 가뭄, 병충해 등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농민이 더 잘 안다. 벼멸구는 농민에게 재앙과 같은데, 원래 그리 자주 나오지 않았던 벼멸구가 이젠 매년 발생한다.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기후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정 정도 우리도 함께 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고 감내해 왔다. 그런데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이 모든 걸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농민들이 아무리 재생에너지 늘리는 데 동참한들, 정부가 이렇게 전력 수요를 급격하게 늘려 버리면 농민은 그저 반도체 산업의 일부가 될 뿐이지, 탄소 중립을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다. 이 어마어마한 전력 수요와 개발은 탄소 중립 역행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농민 희생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은 다 허구의 문구다."
-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용수 공급도 논란이다. 정부의 물 관리 계획을 어떻게 보나?
"농민은 물에 엄청 민감하다. 농어촌공사가 (농업용수로의) 물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내려줄까, 이게 최고의 관심사다. 그리고 농업용수는 항상 부족했다. 올해는 더 했다. 지금 경남이 가뭄이다. 농업용수 저수지가 말라비틀어져, 포클레인으로 땅까지 팠다. 판 땅에 고인 물을 썼다. 전부 삽까지 들고 갈 판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어떤가?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3대 메가 프로젝트 용수 공급을 위해 발의한 '물 관리 3법' 개정안 핵심은 첨단전략산업의 물 공급이 가장 우선된다는 내용이다. 대만에는 이미 선례가 있다. 2021년, 2025~2026년 가뭄 때 농업용수를 끊고 반도체기업 TSMC에 물을 공급했다. 정부는 아예 나주댐 농업용수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로 전용하겠다고도 했다. 나주댐은 농업용으로도 부족하다. 여기에 농민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 종합하면 농지와 농민이 줄고, 농업에 필요한 자원의 분배도 뒷전으로 밀린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과 식량의 보호는 정말 중요한데, 한국만 아무것도 안 한다. 발 등에 떨어진 불 앞에 국가가 태만하다. 지금 한국 곡물자급률은 21%다. 세계 평균은 100%가 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대부분이 70%를 넘는다. 식량의 중요성은 이미 코로나19 당시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했을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했을 때 눈으로 확인했다. 미국은 이 중요성 때문에 최근 농업법을 '농업·식량 및 국가안보법'으로 개명도 했다.
'반도체를 씹어 먹고 살 건가?' 농민들이 하는 얘기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돈만 있으면 식량을 다 사 올 수 있다'는 태도를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반도체가 대기업의 이익 문제라면, 식량은 서민의 생존 문제다. 부자들은 식량이 부족해도, 비싸져도 다 잘 산다. 식량은 부족하면 큰 일이 나지만, 남으면 누굴 줘도 되고, 다른 용도로 써도 된다. 농지와 농업의 문제는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농사 수익 안 나니 농사 접고 태양광 하세요'
- 전농 차원에선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어떻게 평가하나?
"결국 농업의 모든 자원을 수탈해 반도체와 AI 같은 산업 발전에 쓰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 프로젝트를 지역 균형 개발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지역에서 시작된 요구가 아니었다.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AI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지역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지, 지역 고유의 산업과 삶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하면 균형성장을 이룰 것인지란 고민에서 나온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수도권의 확장일 뿐, 지역 균형 발전이 아니라고 본다."
-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주장엔 무엇이 빠져 있나?
"지역이 지속가능해지려면, 그 지역을 지탱해 온 근간산업인 농업이 튼튼해야 한다. 농업 없는 지역 균형 발전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K-컬처, K-푸드 등 한국 문화와 사회의 근간도 사실 농업이 기반이다. 농업과 연관 산업을 어떻게 연결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육성할지 등 농업 자체의 필요에서 균형발전의 내용이 메워져야 한다. 이를테면, 단순히 거대 공장 유치가 아니라, 지역 농가와 계약 재배하고, 이를 또 지역 내에서 가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그 과정에서 부산물, 폐기물 등을 업사이클링(새활용)하는 자원 순환형 모델 등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농가를 대하는 태도는 '농사지어봐야 수익이 안 나니까, 태양광 해라' 이런 식이다. 재생에너지와 농업의 결합 또한 농업 자체의 필요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순서가 바뀌면, 태양광 확대의 설계도 달라진다."
-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의 중요성은?
"지금 벼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고온이 너무 심하니, 알이 차기도 전에 겉이 익어 쌀알이 차질 않는다. 철원, 경기, 예산, 전남 등 곳곳에서 보고된다. 수확량이 10% 정도는 줄지 않을까. 기후 재난에 식량 문제는 심화하고, 이는 다시 기후 재난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농사는 기반이 한 번 파괴되면, 다시 복구하는 게 어렵다. 농지 상황, 설비, 종자 등의 조건이 다 확보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로 전기만 만들면 되는 게 아니라, 꿀벌이 죽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생태계와 환경을 산업적 관점으로만 보는 국가의 인식이 문제를 방조해 왔다. '우리는 자연에 기반하고 살아간다'는 생태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심각히 고민하고 해내야 할 때다. 이를 무시한 인간의 오만함이 지금의 기후 재앙을 만들었다. 농업은 탄소 중립과 지속가능성에 가장 걸맞은 대안이 될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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